[뉴스&팩트]"무대 세울까 말까 고민할 판에 감독이라니…"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5.02.04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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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진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사진=국립오페라단 홈페이지.한예진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사진=국립오페라단 홈페이지.


"제가 갓 태어난 아이인데 지켜봐 주지 않고 평가하는 것은 유감이에요."
한예진(44) 신임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이 3일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의 요약이다. 시작하는 사람에게 화살을 겨눌 마음은 없다. 그런데 묻고 싶은 건 많다. 그만큼 잘못된 팩트, 확인해야할 팩트가 많다는 뜻이다.

예술계는 다른 분야와 달리, 자신이 맡고 있는 분야의 전문가를 믿고 따르려는 경향이 강하다. 성과만큼 일의 과정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번 신임 예술감독에 대한 ‘현장 예술인’들의 한결같은 반응은 ‘누구?’이다. 이 의문만큼 당사자를 당황케하는 표현이 있을까. 대한민국 오페라계에서 나름 이름을 날린다는 몇몇 성악가에게 물어봐도 ‘금시초문’이라는 답변이 대다수다.



성악가 A씨는 “국내든, 국외든 활동만 하면 이름 한번쯤은 들어보는 게 이 세계”라며 “처음 이름을 듣고 누군지 한참 기억을 찾아 헤맸다”고 말했다. 올해 13년째 성악가로 활동해온 B씨는 “성악가로 활동하면 아무리 작은 행사에서도 마주칠 수밖에 없다”며 “40대 중반쯤 되면 ‘선생님’하고 알아보는 후배들이 꽤 있을텐데, 내 주변 후배들은 한 번도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한국성악가협회·대한민국민간오페라연합회 등이 비상대책위를 꾸려 신임 예술감독의 임명 철회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럴싸한 논거는 없었지만 청와대 낙하산 인사라는 말도 끊이지 않았다. 김희범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이 갑자기 사임한 것도 문화부 산하단체 기관장 임명에 대한 잡음이 끊이지 않은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문체부는 신임 예술감독을 임명하면서 “국제 무대에서 큰 호평을 받고 현장 경험이 많아 세계오페라 흐름 파악에 안목과 기량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같은 경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시도를 통해 대한민국 오페라를 한층 더 발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관련 업계 예술인들은 즉각 전문성과 경험 부족 논란을 제기했다. 신임 예술감독은 경력 조작 의혹에 확실한 해명을 못한 채 검찰에 고발까지 당했다. 한예진 신임감독은 이날 간담회에서 “오페라를 직접 제작해본 적이 없다”고 실토했다.

국내 학력과 경력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이탈리아 밀라노베르디국립음악원으로 유학을 가기 전 충남대 성악과를 잠시 다녔으며, 이탈리아에서는 카스텔란자 등 주로 작은 지역에서 야외 페스티벌이나 독창회 등 무대에서 활동했다고 밝혔다.


경험과 이력이 중요한 것은 이 자리가 ‘예술감독’이기 때문이다. ‘서울시향’ 대표는 예술과 관계없는 경영인이 맡을 수 있어도, ‘서울시향’ 예술감독 자리는 예술인이 맡아야하는 것과 같은 이치인 셈이다.

한예진 신임 감독이 예술인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예술인으로서 충분한 검증과 이력이 담보되지 않아 지금의 논란이 불거진 것이라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신임 예술감독에 대한 문체부 이력은 예술감독에 걸맞은 이력이 아니고, 세계 무대 경험 역시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과연 한예진 신임 예술감독은 이 자리에 어울리는 인물이 아닌가? 취재 도중 만난 성악가 C씨는 이렇게 말했다.

“정부 산하기관이니, 1년 예산이 나올 것이고 이 예산으로 무엇을 기획할지 폭넓게 잘 짜야합니다. 외국의 프로그램은 어떻게 구성할 것이며, 한국의 기획프로그램은 어떻게 짤 것인지 모두 직접 경험에 의존해야하는 일들이에요. 열심히 해서 구색을 맞추는 것과 내실있는 콘텐츠를 짜는 일의 차이는 그런 데서 나오는 겁니다. 무대 경험이 거의 없는 신임 예술감독에게 지금 어떤 무대에 세울까 말까를 고민해도 모자랄 판인데, 갑자기 예술감독을 맡긴다고 하니, 우리로선 황당할 뿐이죠.”

한예진 신임 예술감독은 편이 갈리는 인물이 처음부터 아니었다는 점에서 이해관계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아무도 모르니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 자체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는 인물인 셈이다. 그런 인물에게 다들 ‘안된다’고 난리법석이다. 자격이나 경력같은 아주 기본적인 요건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예술인은 알고, 청와대와 문체부만 모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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