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 세모녀는 5만원…전직 건보공단 이사장은 0원"

머니투데이 김명룡 기자 2015.01.3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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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양자 신분만 유지하면 재산 아무리 많아도 건보료 안내, 관련 민원만 연간 5700만건

"전셋집에서 살고 소득도 없는 송파 세모녀의 건강보험료는 매달 5만원이었다. 하지만 퇴직 후 수 천 만원의 연금소득과 수 억 원의 재산이 있는 전직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의 건강보험료는 0원이다."

지난해 11월 퇴임을 앞두고 김종대 국민건강보험공단 전 이사장이 개인 블로그에 올린 자신의 이야기다. 김 이사장의 이 글은 현재 건보료 부과체계가 얼마나 문제가 많은 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제 생활고를 겪다가 자살한 송파 세모녀는 월세와 가족수에 따라 보험료가 부과되기 때문에 매달 5만원씩 건보료를 냈다.



그러나 김 전 이사장은 5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갖고 있고, 퇴임 후 매년 2000만원이 넘는 연금을 받지만 직장인인 가족이 있어 피부양자 신분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건보료를 한 푼도 안 낸다. 만약 김 이사장이 피부양자가 자격을 유지하지 못하고 지역가입자로 전환된다면 매달 19만원씩 건보료를 내야 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한국의 건강보험은 혜택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데 건보료 부과체계는 ▷보험료 부담 기준은 4원화, ▷부담하는 사람은 7가지로 복잡하게 구분해 놓았기 때문이다. 가입자의 직장 유무, 자식의 직장 유무, 소득과 재산의 정도에 따라 기준이 제각각이어서 이에 따른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건보료가 어떻게 책정되는지 건보공단 직원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건보료 관련 민원이 해마다 5700만건에 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 직장을 잃은 후 소득이 없는데도 건보료가 되레 늘어나는 황당 사례도 많다. 같은 은퇴자라도 자녀가 직장에 다니고 있다면 피부양자로 등록해 건보료를 한 푼도 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자식이 직장에 다니지 않아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은퇴자는 직장 시절보다 건보료를 더 많이 내야 한다.

정부가 당초 건보료 부과체계를 손보겠다고 나선 것도 이런 대목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을 연기해 이 같은 혼란은 계속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웃지 못할 건보료 부과체계의 황당 사례들을 정리해본다.

#1. 실직했는데 건보료 3배 폭등 = 두 자녀를 둔 35세 직장인 A씨는 월 200만원을 받는 직장을 다니다가 실직했다. 직장시절 그가 낸 건보료는 6만원이었지만 실직 후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면서 18만원으로 3배가 늘었다. 2억원 짜리 아파트와 중고차 1대를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건보료 부과기준이 '소득'에서 아파트와 차량 같은 '재산'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만일 아내의 피부양자 됐다면 A씨는 건보료를 1원도 내지 않아도 된다.


#2. 소득 비슷해도 건보료 5.5배 더 많아 = 직장인 B씨(48)는 월급 240만원과 연간 1900만원의 금융소득이 있다. 3억5000만원 규모의 주택과 1억5000만원 짜리 건물, 자동차 1대도 소유하고 있다. 자영업자 C씨(52세)는 개인 사업으로 연간 4800만원을 벌고 있으며, 주택·건물·자동차 등 재산도 B씨와 엇비슷하다. 그런데 C씨의 건보료는 39만원으로 B씨의 건보료 7만원 보다 5배 이상 많다. 직장인 B씨의 금융소득이 건보료 산정기준에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3. 직장 다니는 자식 없어 건보료 폭탄 = 50대 남성 D씨와 E씨는 연간 870만원 정도의 소득을 올린다. 두 사람 모두 2억3000만원 짜리 주택을 갖고 있다. D씨는 직장에 다니는 딸의 피부양자로 등재돼 건보료를 전혀 내지 않는다. 하지만 자녀가 직장에 다니지 않는 E씨는 매달 19만원씩 건보료를 낸다.

#4. 자녀가 태어나도 건보료는 차별 = 직장가입자는 자녀가 태어나도 보험료가 늘지 않지만, 지역가입자는 자녀가 태어나면 보험료가 더 늘어나는 모순도 있다. 월급 150만원을 받는 직장인 F씨(전세 보증금 1억원, 차량 1대 소유)는 자녀가 태어나도 건보료는 월 4만5000원으로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F씨와 재산이 똑같고 한해 500만원을 버는 자영업자 G씨의 건보료는 9만780원에서 9만3060원으로 2.5%(2280원)더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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