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 1800만$ 보다 값진 구로다의 약속

스타뉴스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2015.01.0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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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다 히로키가 일본으로 돌아왔다. /AFPBBNews=뉴스1<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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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다 히로키가 일본으로 돌아왔다. /AFPBBNews=뉴스1



일본인 오른손 선발투수 구로다 히로키(39)가 메이저리그를 떠나 고국 일본으로 돌아갔다. 지난 2008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뒤 LA 다저스와 뉴욕 양키스에서 7년간 뛰며 빅리그 통산 79승79패, 방어율 3.45의 성적을 기록한 구로다는 지난 연말 옛 친정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 계약하고 일본 무대 복귀를 선택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만 40세를 눈앞에 둔 선수가 선수 커리어를 마무리하는 단계를 밟기 위해 고향 회귀를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다른 선수들의 케이스와 다른 점이 있는데 그것은 구로다는 메이저리그에서 더 이상 뛰기 어렵게 돼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메이저리그 팀들의 구애를 뿌리치고 복귀를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4년간 메이저리그에서 계속 1년 계약으로 뛰어온 구로다는 이번 오프시즌에도 친정팀인 양키스와 다저스는 물론 샌디에고 파드레스로부터 뜨거운 러브콜을 받았다. 특히 파드레스로부터는 1,800만달러짜리 1년 오퍼를 받았다는 보도도 있었다. 1,800만달러는 구로다가 지난해 양키스에서 받은 1,600만달러를 넘어서는 액수로 사실이라면 구로다의 메이저리그 커리어 중 최고액 연봉이 된다. 하지만 구로다는 이를 거부하고 자신이 프로생활을 시작한 고향팀인 히로시마와 연봉 4억엔(330만달러)에 1년 계약을 체결, 고향 복귀를 선택했다.

왜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는 기회, 그것도 생애 최고 연봉을 받으며 빅리그 생활을 이어갈 기회를 마다하고 4분의 1도 안되는 액수에 고향 행을 선택했을까. 다음 달이면 만 40세가 되는 그지만 메이저리그 팀이 1,800만달러급의 거액 계약을 제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가 기량쇠퇴로 메이저리그에서 밀려나는 것이 아님은 알 수 있다. 그의 선택은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일본으로 돌아가 히로시마에서 보내겠다”고 했던 자신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그의 선택이 특히 감동을 주는 것은 그가 더 이상 빅리그에 설 자리가 없어 돌아간 것이 아니라 비록 불혹의 나이에도 불구, 생애 최고 연봉을 주겠다는 팀이 나섰는데도 이를 뿌리친 것이라는 데서 비롯된다.



사실 그는 지난 4년간 메이저리그에서 계속 1년 계약으로 선수생활을 해 왔고 매년 시즌이 끝날 때마다 일본 복귀여부를 심각하게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그동안 여러 팀이 다년 계약을 제시했음에도 불구, 언제라도 결심만 서면 일본에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난 4년간 계속 1년 계약만을 고집해 왔다. 그리고 이번에 마침내 돌아갈 때가 됐다는 결정을 내렸다. 1,800만달러라는 생애 최고 연봉 오퍼조차 그의 의리와 신념을 꺾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렀다면 구도다가 만 40세의 나이에 메이저리그에서 이런 엄청난 계약오퍼를 받을 만큼 깊은 신뢰를 받고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 비결은 무엇보다 ‘꾸준함’(Consistency)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구로다의 7년간 메이저리그 성적을 살펴보면 이중 6번의 시즌에서 그는 31회 이상 선발로 등판했다. 특히 지난 5년간은 총 160게임에 선발로 나섰는데 팬그라프닷컴(fangraphs.com)에 따르면 이는 같은 기간 모든 메이저리그 투수를 통틀어 공동 9위에 해당된다.

이들 ‘철완’투수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당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나이다. 5년간 총 169회의 선발등판으로 1위에 오른 제임스 쉴즈(32)를 비롯, 저스틴 벌랜더(31, 166회), 펠릭스 에르난데스(28, 165회), C.J. 윌슨(33, 165회), 이안 케네디(29, 162회), 맥스 슈어저(29, 161회), 존 레스터(30, 161회), 댄 해런(33, 161회)까지 지난 5년간 구로다보다 많은 선발등판 횟수를 기록한 8명의 나이는 구로다(39)보다 최소한 6세, 많게는 11세나 어리다. 다시 말하면 구로다는 자신보다 6~11세 젊은 리그 초특급 투수들에 버금가는 내구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이야기다. 툭하면 부상으로 등판을 거르는 일이 다반사인 요즘 세상에, 그것도 만 40세를 눈앞에 둔 선수가 이 같은 철완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실로 경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더 인상적인 것은 구로다가 꾸준하게 경기에 나섰을 뿐 아니라 투구내용도 매우 좋았다는 사실이다. 사실 구로다는 메이저리그에서 엘리트 반열까지는 오르지 못했다. 지난 5년 연속으로 두 자리수 승리를 기록했지만 지난 2012년(16승11패)과 지난해(11승9패) 외에는 승률 5할을 넘긴 적이 없다. 하지만 이는 구로다가 마운드에 올랐을 때 팀의 타선 지원이 너무도 박했던 이유가 크다. 실제로 빅리그 7년 커리어동안 그의 투수 WAR(Wins Above Replacement)는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17위(방어율 기준)에 오를 정도로 뛰어났다. 그의 나이를 감안하면 놀라울 수밖에 없는 수치다.

메이저리그 역사를 통틀어보면 구로다의 성적은 더욱 인상적이다. 구로다는 35세 이후에 1,000이닝 이상을 던졌는데 이는 메이저리그의 라이브볼 시대(1940년 이후) 단 46명만이 달성한 기록이다. 팬그라프닷컴은 메이저리그 역사를 통틀어 만 35세 이후 구로다보다 뛰어난 커리어를 보인 선수가 단 28명뿐이라고 평가할 정도다. MLB닷컴의 브라이언 호크는 “구로다가 양키스에서 97차례 선발 등판해 38승33패, 방어율 3.44를 기록했다”면서 “양키스에서 최소한 50게임에 선발로 나선 투수 가운데 구로다의 커리어 방어율은 란 기드리가 1975~88년 사이 3.32를 기록한 이후 가장 낮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로다는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구단 양키스에서 단 3년을 몸담고도 뚜렷한 ‘족적’을 남긴 것이다.

구로다의 꾸준함은 다른 수치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가 다저스에서 4년간 기록한 방어율 3.44는 이어 다음 3년간 양키스에서 기록한 방어율 3.45와 거의 똑같다. 7년간 꾸준하게 3점대 방어율을 유지했고 FIP(Fielding Independent Pitching)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7년간 메이저리그에서 ‘꾸준함’이라는 단어를 대표하는 선수를 찾는다면 그가 바로 구로다였다.

특히 그가 30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커리어 말년에 그처럼 꾸준한 성적을 올렸다는 사실이 더욱 인상적이다. 이 숫자들을 보면 구로다는 만 40세인 내년에도 두 자리수 승수에 3점대 방어율은 거의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파드레스가 나이 40세 투수에게 1,800만달러라는 엄청난 오퍼를 내밀며 붙잡으려고 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로다에게 꾸준함은 필드에서의 퍼포먼스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인생 전체가 꾸준함이었다. 8년전 일본을 떠날 때 선수 생활의 마무리는 히로시마에 돌아와서 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킬 때가 됐다는 판단이 서자 그는 미련없이 메이저리그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메이저리그에서 화려하게 출발했다가 초라하게 사라진 많은 일본 출신 투수들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선택이다. 아직도 충분히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더 뛸 수 있다는 사실보다는 자신의 신념을 따르며 의미있게 커리어를 마치는 것이 그에게 더 중요했던 것이다. 화려함에 앞서 꾸준함을 추구한 구로다는 정말 위대한 선수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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