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우리가 키웠다' 말라"..新舊충돌 격화

머니투데이 박진영 기자, 김성은 기자 2015.01.0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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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인구절벽-한국사회 뒤흔든다]<1>세대갈등 본격화

"대한민국 '우리가 키웠다' 말라"..新舊충돌 격화


#"우리 세대가 과연 정년 연장의 수혜를 누릴 수 있을까요?"
박모씨(29·회사원)는 시행이 1년 앞으로 다가온 정년 연장 정책에 불만을 갖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 60세 정년 연장이 시행돼도 '2030 세대'의 일자리만 줄어들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3년차 직장인인 박모씨는 '지금 장년층'이 정년 연장의 덕을 다 볼 것이라고 판단한다. 자기 같은 젊은 세대는 60세까지 직장에서 버텨낼 수 있을까 의문이다. 그는 "노인과 장년층의 재취업을 모색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정년 연장은 결국 한정된 안정적인 일자리를 놓고 다투는 방식으로 세대 갈등의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취업난을 겪고 있는 젊은 세대의 고충을 개인의 탓으로 치부하는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도 크다. 그는 "'젊은이들의 눈이 높아서 취업을 안 하는 것이다' '우리가 고생하며 대한민국을 키웠는데 지금 젊은이들은 너무 나약하다'는 식의 발언도 거부감이 든다"며 "한국의 성장기를 겪으며 살아온 과거에 집착해 지금 청년들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태도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아버지가 무너지면 한국이 무너진다."
2년전 20년 넘게 몸 담은 대기업에서 퇴직하고 '2번째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이모씨(58)는 정년 연장에 반대하는 젊은이의 목소리에 고개를 내젓는다. 그는 "정년 연장은 고령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구조적 선택"이라는 것.



이씨는 "베이비붐 세대로 불리는 우리 세대야말로 부모는 물론 미취업 자녀 부양까지 돈이 가장 많이 필요한 상황에서 회사를 나와야 하는 세대"라며 "아버지들이 무너지면 대한민국이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임금 피크제를 실시하는 등 장년층의 양보도 필요하지만 향후 장년층의 고용 보장을 위해서라도 정년 연장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우리가 키웠다' 말라"..新舊충돌 격화
취업난에 시달리며 연애, 결혼, 자녀는 물론 인간관계까지 포기한다는 2030세대와 한국의 경제 성장기를 이끌고도 쳐진 어깨로 물러나야 하는 5060세대가 '일자리'를 두고 부딪히는 세대갈등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세대갈등이 문화적, 정치적 성향 및 이해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지금의 세대갈등은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경제적 요인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젊은층 인구가 줄면 경제활력이 떨어져 생산가능인구가 주는데도 오히려 좋은 일자리는 부족한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인구구조 변화서 비롯된 '세대간 경쟁론'= 신광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고령 인구가 늘어나면서 이들의 일자리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며 "평균 퇴직연령이 53세 정도로 빠른데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고령 인구의 신체적, 정신적 능력은 과거보다 개선되다 보니 퇴직이 연장되길 바라거나 퇴직하고 나서도 재취업을 원하는 인구가 늘게 됐다"고 말했다. 반면 "청년층들은 윗세대가 빨리 빠져나가야 일자리가 생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년 연장과 청년층의 취업이 상충된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들의 불만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발표된 통계청의 '임금근로 일자리 행정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임금근로 일자리는 총 1649만6000개로 직전 년에 비해 3.7% 증가했다. 눈에 띄는 부분은 50대 일자리 수(302만7000개)가 20대 일자리 수(300만1000개)를 처음으로 넘어섰다는 점이다. 고령화가 진행되고 정년 연장 등의 제도가 시행되면 젊은이들의 취업난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부양은 또 다른 압박이다. 김현식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고령 세대는 그나마 자녀들이 많지만 향후 저출산으로 젊은 세대들의 부양 부담은 급증할 것"이라며 "세대 갈등이 증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인구추계(2013~2040년)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지난해 614만명(12.2%)에서 2040년 1650만명(32.3%)으로 크게 증가할 전망이다. 이와 함께 생산가능인구 100명당 유소년·고령인구 총부양비율은 2013년 36.8명에서 2040년 77명으로 2배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개인' 아닌 '구조적 시각'서 해법 찾아야= 한국보다 앞서 저출산 고령화가 시작돼 정년 연장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국가들은 한번쯤 세대간 이해관계의 충돌로 홍역을 겪었다. 프랑스에서는 2010년에 60세인 정년을 62세로 연장하는 정부 법안의 철회를 요구하며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300만여명의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일본에는 '단카이세대'와 그 자녀 세대를 나누는 세대론이 존재한다. 문제는 한국에서 유독 '세대간 경쟁' 양상이 강하게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서이종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58년 개띠생'들, 즉 베이비붐 세대들의 쓸쓸한 은퇴를 다룬 기사가 있었는데 젊은이들의 댓글에 적잖게 놀랐다"고 말한다. 기사에 '그래도 누릴 것은 누린 세대' '젊은 우리는 취업도 못하고, 아이도 낳지 못한다' '우리가 그 세대에 태어났어도 이 정도 성장은 이뤘을 것' 등의 냉담한 반응이 잇따랐다는 설명이다.

서 교수는 "국내 기성세대들은 젊은층이 겪고 있는 현실적 어려움을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개인적 차원에서 위로한다거나 '너무 나약하다'는 식으로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며 "구조적 측면에서 비롯된 문제에 진지하게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는 베이비붐 세대의 태도에 젊은이들이 분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자리를 둘러싼 '기회의 박탈감'과 '부양 부담감'으로 대표되는 경제적 고충이 심화되면서 고령층 전반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확대되는 움직임도 있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향후 노인이 인구의 1/3을 차지하는 20여 년 뒤엔 노인에 대한 테러나 욕설, 불만의 노골적 표현 등 노인 공격이 사회 전면에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인구구조적인 문제를 지나치게 세대간 '밥그릇' 싸움으로 몰고 가는 것은 세대갈등을 극대화시킬 뿐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중앙대 신 교수는 "5060세대와 2030세대는 같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이고 단적으로 이야기하면 결국 한 가정 내에 있는 사람들"이라며 "일자리를 비롯한 세대갈등이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함께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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