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그래 아닌 단그래·중그래?'… 비정규직 개선, 정치권 해법은?

머니투데이 김경환 기자 2014.12.26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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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2014 근로자 리포트-⑧비정규직]국회계류 처우개선 방안 어떤 것들?

편집자주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보호에 관한 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 근로자에 관한 법은 많습니다. 이 법들은 근로자의 근무시간, 임금, 휴가 등 근로자들의 일상생활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은 잘 갖춰져 있지만 근로자들의 삶은 팍팍하기만 합니다. 법과 동떨어진 현실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이지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은 1) 근로자 관련 법과 현실의 괴리를 확인하고 2) 원인을 추적하고 3)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연재기간 동안 임금, 근로시간, 휴가, 정년 같은 직장인 이야기에서부터 알바생, 인턴, 비정규직, 파견근로자 등 다양한 근로 현실을 살펴볼 예정입니다.

'장그래 아닌 단그래·중그래?'… 비정규직 개선, 정치권 해법은?


#. A씨는 한 공공기관에서 비정규직(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18개월째 일하고 있지만, 지금껏 반복적으로 2개월, 3개월, 4개월 단위로 퇴사와 입사를 반복하는 이른바 '쪼개기 계약'을 맺었다.

'쪼개기 계약'은 지속적인 근무를 단절시켜 퇴직금 지급, 정규직 전환을 막는 수단이다. 현행법으로는 이러한 쪼개기 계약을 처벌할 규정이 없다. 이에 따라 쪼개기 계약은 학교, 공공기관 등에서도 만연하고 있다. 비정규직법안의 허점이 이러한 편법을 양산하고 있는 셈이다.



#. B씨는 2012년부터 정부가 고용한 계약직 방문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정부는 당시 어려운 사람들의 의료 지원을 돕겠다면 간호사 등 4000명을 방문건강관리사로 고용했다. 그리고 보건복지부는 이러한 방문 간호사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을 정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C씨는 최근 계약 만료를 앞두고 해고 통지를 받았다. 상당수 지방자치단체가 총액인건비 등 예산부족을 이유로 해고 통보를 한 것.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지자체는 C씨를 다시 계약직으로 고용키로 결정했다. 무기계약직 전환을 꿈꾸던 C씨는 어쩔 수 없이 울며겨자먹기로 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정부 마저도 무기계약직 전환을 꺼리는데 민간에서는 오죽하겠나"라고 토로했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선장이 책임감 없이 나홀로 도망치기 급급했던 것은 비정규직이기 때문이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만큼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사회 문제 중 하나다.

정부도 오는 29일 '비정규직 대책'을 내놓고 현재 2년까지 허용하는 계약기간을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계약기간을 지금보다 늘린 3년 내지 4년으로 연장해 2년만에 비정규직들이 해고되는 것을 막자는 취지다.

그러나 이 같은 방안에 대해 취업준비생과 노동계 등은 2년뒤 정규직 전환이 아니라 2년 뒤에도 또 비정규직으로 남게 된다는 점에서 '개악'이란 비판론이 쏟아지고 있다.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중규직'이라는 어정쩡한 근로형태만 정착될 것이라는 비난이다.


특히 취업준비생들은 온라인에서 이 법안을 최근 인기를 끈 드라마 '미생'에 등장하는 비정규직 주인공 장그래의 이름을 따서 '장그래 양산법'이라고 비판한다. 일각에선 '장그래'가 아닌 단시간근로자 '단그래', 중규직근로자 '중그래'만 남는 이상한 근로 문화가 자리잡을 것이란 우려도 크다.

◇'비애·설움'이란 단어 뒤따르는 비정규직 600만명 시대=인터넷에서 '비정규직'을 검색하면 '비애'나 '설움'이란 단어가 뒤따른다. 그만큼 비정규직으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게 현실이다.

비정규직은 근로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상시 근로자와 달리 근로기간이 정해져 있는 계약직, 일용직, 시간제 근로자를 일컫는다. 쉬운 해고와 낮은 인건비(임금) 때문에 최근 기업들은 비정규직 고용을 선호하는 추세다.

그 결과 비정규직 근로자수는 사상 처음으로 지난 8월 600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달 28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근로자수는 607만7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3만1000명 증가했다.

비정규직 근로자가 600만명을 넘어선 것은 2002년 조사 시작 이후 처음이다. 특히 시간제 근로자수의 증가가 두드러졌다. 시간제 근로자수는 203만2000명으로 1년전 보다 14만8000명 증가했다.

비정규직이 늘고 있는 것과 동시에 정규직과의 차별도 확대되고 있다. 올해 6~8월의 비정규직 월평균 임금은 145만3000원인 반면 정규직 월평균 임금은 260만4000원에 달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월평균임금 차이는 10년 전과 비교해 격차가 1.7배 가량 벌어졌다. 지난 2005년 월평균임금의 차이는 69만원에 불과했지만 올해의 월평균 임금차이는 115만1000원이었다.

국회나 정부 등이 비정규직 보호 대책에 관심을 쏟고 있지만 오히려 비정규직의 삶의 질은 악화되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난 셈이다.

'장그래 아닌 단그래·중그래?'… 비정규직 개선, 정치권 해법은?
◇2년후 정규직 전환 비정규직 법안, 실효성 글쎄=국회는 지난 2006년 12월21일 비정규직 근무자가 2년 근무하면 무기계약직이나 정규직으로 전환토록 하는 등 비정규직 보호를 골자로 하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 법안은 기간제 근로자 및 단시간 근로자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을 시정하고 기간제근로자 및 단시간 근로자의 근로조건 보호를 위해 만들어졌다. 회사가 정규직을 고용하고자 할때는 해당 사업장내 비정규직 근로자를 우선 고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상여금, 성과금, 그 밖에 복리후생에 관한 사항 등에 대해서도 차별적 대우를 할 수 없도록 법적으로 명문화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2년이 지날 경우 해고하는게 대부분이다. 비정규직과 정규직간의 임금차별도 엄연한 현실이다. 사실상 편법과 탈법이 난무하고 있다.

기간제법상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기 위해 이른바 '쪼개기 계약'도 만연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행 기간제법에 따르면 한 사업장에서 2년 이상 일하면 정규직(무기계약직)으로 전환돼야 한다. 하지만 1년 혹은 이보다 짧은 수개월 단위로 계약해 퇴직-재입사를 반복하는 식으로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는 편법으로 삼고 있는 것.

국회에서는 이에 따라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한 법안들이 잇달아 발의된 상황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은 지난 2012년 5월 30일 2년 기간제한 방식으로는 비정규직 남용을 규제할 수 없기 때문에 기간제 사용사유 제한방식을 도입하는 내용의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보호법'을 발의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도 2012년 7월 3일 기간제근로자의 사용사유를 △근로자의 출산·육아 또는 질병·부상 등으로 인해 발생한 결원을 대체할 경우 △계절적 사업 △일정한 사업의 완료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에만 기간제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내용의 같은 법안을 발의했다. 또 심 의원은 같은날 상시적 업무에 대해서는 직접 고용을 원칙으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은 지난 8월 14일 비정규직 근로자가 임신으로 실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비정규직 근로자의 출산휴가 기간을 계약기간에 포함하지 않도록 규정해 근로계약을 이어갈수 있도록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회내 노동 전문가로 꼽히는 은수미 새정치연합 의원은 비정규직 대책과 관련, "상시·지속업무는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는 원칙을 확고히 하고 이를 추진할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와 함께 인건비 절감, 정리해고, 비정규직 등을 쓰는 것을 맨 마지막으로 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이 사회적 기준선을 맞추도록 큰 틀에서 합의(사회적 협약)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새정치연합, 정의당을 비롯한 야당은 정부의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장그래 양산법'이 국회로 넘어올 경우 이를 처리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강하게 피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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