低유가, 세계경제에는 '득'이지만…금융시장은 아직 '공포'

머니투데이 주명호 기자 2014.12.2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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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가 하락이 세계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지만 금융시장은 여전히 유가 공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저유가가 소비를 진작시켜 둔화 우려에 빠진 글로벌 경기를 일으킬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상황에서도 당장은 유가와 연계된 투자 불안감이 금융시장 전반에 자리잡은 까닭이다.

지난 19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1월 인도분 선물가격은 전거래일 대비 4.4% 급등한 배럴당 56.52달러로 책정돼 최근 2년 중 가장 큰 일일 상승폭을 기록했다. 북해산 브렌트유도 같은 날 3.6% 오른 배럴당 61.38달러에 거래됐다.



반발매수로 반등세를 펼쳤지만 올해 전체로 보면 여전히 최저수준이다. 브렌트유는 올해 고점인 6월 115달러에서 현재까지 47% 급락했다. WTI 가격도 최근 6개월간 46% 이상 떨어졌다.

다른 금융시장들도 최근 유가 하락에 동조화를 보이고 있다. 에너지 관련 자산들의 투매가 전방위적으로 이뤄지면서 전체 금융시장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9월 유가가 올해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선을 하회하자 에너지기업들을 중심으로 주식 및 채권시장은 하락세를 펼쳤다. 11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불발에 유가가 또다시 폭락하자 에너지 관련 자산들 역시 요동치며 불안감을 나타냈다.



12얼 초 이후 현재까지 MSCI유럽지수는 4% 하락했다. 미국 S&P500지수도 같은 기간 1% 떨어졌다. 지난주 미국 연방준비제도(FRB)가 기준금리 인상에 관련해 "인내심을 가질 것(be patient)"이란 입장을 밝히며 증시에 힘을 불어넣었지만 상승세로 돌려세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에너지기업 뿐만 아니라 셰일가스 운송인프라 사업에 투자하는 마스터합자회사(MLP)도 유가 하락에 직격탄을 맞았다. 대표적인 MLP인 에너지파트너스의 경우 주가가 31% 급락했다.

영국 FTSE100지수는 이번 달 2.7% 하락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로열더치셸 등 대형 석유회사들의 부진 영향이 컸다고 진단했다.


고수익(high yield) 채권펀드 시장도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에 따르면 지난주 고수익 채권펀드에서 유출된 자금 규모는 38억달러에 이른다. 바클레이스가 집계하는 미국 고수익 회사채 지수는 지난 16일 7.3%까지 상승했다. 미국 고수익 회사채 시장에서 에너지기업들의 비중은 17%에 이른다. 투자적격등급 회사채 시장에서도 12%를 차지한다.

UBS 자산운용의 마크 해펠레 최고투자책임자(CIO)는 WTI가 배럴당 60달러를 하회할 경우 미국 고수익 회사채의 연체율은 현 2% 수준에서 5.5% 위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심지어 저유가 수혜자로 지목됐던 신흥시장에도 통화 급락이라는 악재가 나타났다. 12월 초 이후 중순까지 인도 루피화 가치는 달러화 대비 2.7% 하락했다. 터키 리라화의 경우 7.2% 추락했다. 인도와 터키는 대표적인 원유수입국가다.

전문가들은 저유가로 인한 금융시장의 이 같은 혼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이웬 캐머런 와트 글로벌부문 최고투자전략가는 "경제적 수혜가 나타나기 앞서 시장은 저유가 충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리드니들의 토비 냉글 다중자산투자부문 수석은 "현 저유가 상황에서 경제적 수혜보다 금융시장 혼란이 더 큰 기간이 어느 가격시점까지 지속될 것인가가 최근 몇 주간 시장이 고민하는 바"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저유가가 실물경제에 미칠 긍정적 영향에 대한 기대감이 큰 상황이다. 소비 수요 증가 뿐만 아니라 에너지분야 외 기업들의 수혜가 더 클 것이라는 이야기다. 크레디트스위스는 저유가로 얻을 세금절감 규모는 미국에서만 1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모건스탠리 역시 에너지 관련 투자손실보다 미국 소비자들이 얻을 수혜가 더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크레디트스위스의 릭 데브렐 글로벌 채권 및 리서치부문 수석은 "지역에 따라 영향이 있겠지만 저유가는 경제성장에 매우 긍정적"이라면서도 "수혜가 고르지 않다는 것은 문제로 지적된다"고 말했다. 그는 "(저유가로) 미국 소비자들이 매주 10달러씩 주유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반면 고수익 채권시장은 더 즉각적인 손실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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