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책통]스토리텔링에서 스토리두잉으로

머니투데이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2014.12.13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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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의 책통]스토리텔링에서 스토리두잉으로


버트런드 러셀은 ‘왜 사람들은 싸우는가’(비아북)에서 충동은 “남과 공유할 수 없는 것을 손에 넣거나 계속 보유하고자 하는 소유의 충동과 사적 소유의 개념이 없는 지식, 예술, 선의 같이 가치 있는 것을 이 세계에 내놓으려는 창조의 충동”의 둘로 나뉜다고 말했다. 그는 소유욕을 희생해서라도 창조성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토리두잉(storydoing)’(김일철·유지희, 컬처그라퍼)의 저자들도 “물질의 대척점은 무소유가 아닌 도덕성 내지는 창의성”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는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스토리텔링으로도 버틸 수 있었지만 이제 스토리텔러가 성공하려면 자기가 다루는 스토리에 자기 삶을 녹여내야만 한다. 고전에서는 이를 ‘솔선수범’이라 했고, 타이 몬태규는 ‘스토리두잉’이라 정의 내렸다. 따라서 이야기 속 주인공의 삶을 사랑하고 닮아 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스토리두어’다.



2014년 6월 개최된 ‘서스테이너블 브랜즈(Sustainable Brands) 회의’에서 제창된 슬로건은 ‘스토리텔링에서 스토리두잉으로’다.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스마트폰을 비롯한 디지털 디바이스의 보급으로 ‘체험형 콘텐츠’의 소비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또한 다양화된 미디어는 기업의 일방적인 접근이 아닌 쌍방향 소통을 지향하고 있다. 따라서 기업들은 자사의 브랜드 스토리에 사용자의 참가를 유도하고 체험하게 하는 체험형 콘텐츠로 소비자와 브랜드의 연결고리를 더욱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그런 기업들이 테크놀로지에 아이디어를 결합시켜 브랜드를 체험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스토리두잉’이다.

올해 질문을 많이 받았던 것 중에 하나가 지금 종합베스트셀러 1위를 달리고 있는 컬러링북인 ‘비밀의 정원’(조해너 배스포드, 클)이 팔리는 이유였다. 이 책은 주로 검은 선을 이용한 세밀한 밑그림에 직접 색을 칠해 그림을 완성하는 색칠놀이 책이다. 일본에서는 2000년대 중반에 색칠공부, 본떠쓰기, 종이접기, 퍼즐, 퀴즈, 엔딩노트 등이 시니어층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그때 일본에서는 “일에서 은퇴한 사람들에게는 청춘을 돌아보게 해주어 인생의 활력을 만들어 주고, 손자세대에게는 좋았던 옛 시절을 체험할 수 있게 해 준다”는 분석이 있었다.



이런 흐름이 우연일까? 이제 인간은 컴퓨터와 차별화되는 자신의 능력을 찾아내야 한다. 정보의 저장, 보관, 이동에서 컴퓨터를 이길 수 없는 인간은 폭발하는 정보 중에서 불필요한 정보를 ‘삭제’하고 핵심만 남겨놓는 능력, 즉 자신들이 컴퓨터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을 키워나갈 것이다.

다른 하나는 ‘손’의 참여를 강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기획자는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소비하지 않고 손을 이용해 직접 참여해 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반영한 체험형 콘텐츠를 만들어내야만 한다. 어쩌면 그게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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