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이'는 왜 무조건 '네'라고만 대답하는 걸까

머니투데이 유효상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2014.11.24 06:34
글자크기

[유효상 교수의 직장남녀탐구]<28>남성중심 조직체계에 대한 인식차이

편집자주 여자와 남자는 업무를 처리하는 방법이 다르다. 의사소통하는 방식도 다르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결정하는 방식, 갈등 해결방식도 다르다. 우선순위를 정하거나 감정을 처리하거나 스트레스를 다루는 방법도 모두 다르다. 이는 남녀의 차이는 능력에서 나온 결과가 아니다. 서로 다른 시각과 경험을 갖고 있기에 근본적으로 다른 렌즈로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각각 다른 렌즈로 세상을 보기에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직장에서 남녀간에 사각지대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성별이해지능(Gender Intelligence)'이라 한다. 과연 직장 내에는 어떠한 사각지대가 존재할까? 어떠한 문제점이 발생할까? 이러한 사각지대를 모두 해결한다면 과연 우리의 조직은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성별이해지능을 갖춘 남녀가 모든 리더 자리에 그리고 사회 모든 계층에 포진되어 있다면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안영이'는 왜 무조건 '네'라고만 대답하는 걸까


"가서 구두 좀 닦아 와"
"네"

"갔다 올 때 나는 담배, 내가 피우는 담배 이름 알지?"
"네"

"책상도 좀 닦아 놓고, 이것도 치우고…"
"네"



스펙과 실력이 뛰어난 갓 배치된 여자 신입사원에게 같은 팀의 남자 상사나 선배들이 업무와는 무관한 자신들의 사소한 잔심부름을 시도 때도 없이 시켜댄다. 험한 말은 물론 심지어는 욕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신입사원은 묵묵히 온갖 치욕과 모멸감을 참아가며 꿋꿋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미생'의 여자 주인공인 '안영이' 이야기다.



우리의 '안영이'는 아무리 힘들어도 불평불만이 없다. 무거운 짐을 나르면서 다치더라도 혼자서 해 보려 한다. 심지어는 경험이 없는 대형트럭도 업무를 위해서라면 위험을 무릅쓰고 운전을 한다.

남성평등과 여성문제를 다룬 많은 드라마나 책들의 대부분은 비즈니스 세계에서 얼마나 여성들이 불이익을 당하고, 오해 받고, 능력이나 성과에 비해 저평가되는 지에 관해 이야기한다. 여자들이 당면해 있는 이 불평등에 대해 남자들이 무관심하다거나 여성들의 성공을 방해하려고 남자들이 일부러 이런 격차를 만든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영화나 책에서는 남자들의 생각이 어떤지, 남자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그런 행동들이 의도된 것들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들도 모르게 몸에 밴 습관 때문인지 등 남자의 속마음에 대해서는 그다지 이야기하지 않는다. 단지 남자는 능력 있고 연약한 여자를 괴롭히는 아무 생각 없는 악당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금까지 수십 년 간 이어온 남성위주의 조직체계에 익숙해진 남성들도 너무나 당황스럽다. 급속도로 늘어나는 여성 인력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떻게 일을 시켜야 할 지 사실 막막하다. 사전에 어떤 지침이나 아무런 교육도 없이 여성들이 어느 날 같은 팀으로 배치가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남성 위주의 조직체계에 적응해야 하는 여자들뿐만 아니라 사실은 남자들도 혼란스럽고 괴롭다.

남자들은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대로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행동을 하고 있지만 그런 방식들이 이제는 신세대 사원들이나 특히, 여성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준다고 공격을 받기 때문이다.

글로벌화, 다양화, 경쟁심화 등 세계경제 환경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힘과 스피드로 무장한 남성들이 세상을 주도했다면, 이제는 다양성과 공감력이 뛰어난 여성들과의 협업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기가 됐다. 여성들과의 오해와 갈등을 최소화 해야만 조직의 최고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들은 여성들을 진정한 파트너로 인정하고 남자들과는 어떤 점이 다르고, 왜 다른지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또한 남자들이 여자들의 생각과 행동방식을 이해해야 하는 만큼, 여자들도 남자들의 생각과 행동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오히려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러한 방식으로 조직이 운영돼 왔으며, 세계적인 기업도 그러한 조직문화에서 탄생했기 때문에 남자들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특별히 새로운 시각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대학을 졸업한 후에 여자들에게 차갑고 힘든 현실이 시작된다. 대학시절에는 남자 동창들과 진정한 팀이 돼 협력하고 공유하는 분위기에서 작업했으나 실전에 들어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취업을 하면 빠르고 자연스럽게 기업 세계에 적응하는 반면, 여자들은 자신의 타고난 성향에 어울리지 않는 매우 부자연스런 세상에 들어서게 된다. 자신도 남자들처럼 받아들여지고 인정받고 싶은데 왠지 그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스펙을 쌓기 위한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정작 입사 후에 겪게 될 조직생활에 대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고, 남자들의 조직체계에 대한 학습이나 교육이 전혀 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터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하고, 가치 있게 여겨지지 않을 때, 조직의 리더를 탓하거나 동료들을 흠잡게 되는 것은 남녀 모두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남자들이 만든 남성 위주의 작업환경에 여자들이 들어가는 것이니만큼, 자신이 선택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가치관에 따라야 하는 하급자처럼 느껴지는 쪽은 주로 여성들이다. 무시당하고, 소외되고, 시험당하고, 의심받는다고 느끼는 쪽도 주로 여성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비난은 주로 남자들에게 향한다.

상황이 변하지 않으면 여자들은 자신이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더 많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할 것이다. 자신이 좋아했던 일적인 측면에 집중하기보다 불만스러운 규칙, 일과, 행동들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시간이 흐르면 처음 그 직업이나 회사에 대해 가치 있게 여겼던 부분, 그들에게 성취감과 행복을 가져다주었던 부분들이 점점 희미해져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에 회사를 떠나는 이들이 생겨나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애정이 사라져버린 상태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무조건 '네'라고 대답하기 보다는 '왜 남자들은 이렇게 행동하는 걸까'를 고민하는 우리의 '안영이'를 기대해 본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