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아이들은 우리가 비정규직인 줄도 몰라요"

모두다인재 정봄 기자 2014.11.20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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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비정규직 총파업 현장…"16년째 일하는데 월급 130만원…정규직 반토막"

전국 학교비정규직노동자 상경 총파업대회가 20일 서울역에서 진행됐다. /사진=정봄 기자전국 학교비정규직노동자 상경 총파업대회가 20일 서울역에서 진행됐다. /사진=정봄 기자


전국 학교비정규직노동자 상경 총파업대회가 20일 서울역 앞에서 진행됐다. '투쟁'이라고 부르짖는 외침소리가 다른 시위현장의 목소리보다는 다소 어설펐다. 구성원들도 한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줌마'들이 대부분. '정액 급식비 쟁취', '교육공무직 쟁취'라는 표어가 보이지 않았더라면 별다른 차이가 없는 우리네 아줌마들이다.

◇비정규직 급식 조리원="급식 쪽에서 15년째 일하고 있는데 5년차 정규직과 급여가 똑같아요."



"퇴직하고 나면 저마다 병원에 가서 누워 있댑니다."

"일하면서 부닥쳐서 멍이 안든 곳이 없어요. 목욕탕 가면 신랑에게 맞고 다니냐 그런다니까."



비정규직 조리실무사 한 명이 대뜸 바지를 걷어 올려 맨 살의 얼룩덜룩한 멍자국을 보여줬다.

창원의 한 고등학교에서 16년 넘게 급식실 업무를 해온 조혜진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경남지부 부지부장은 급식실 조리실무사의 무거운 업무강도에 대해 토로했다.

그는 "그래도 관공서나 국공립 기관은 50명 당 1명의 조리원이 맡는데, 학교는 150명 당 1명이 음식을 만든다"고 말했다.


또한 조 부지부장은 "예전에는 석식 근무시간을 4시간을 달아줬는데, 요즘은 연봉제로 바뀌면서 3시간만에 석식을 만들어야 했고, 작년부터는 주 12시간 초과근무는 안되니 2.5시간으로 또 줄었다"고 전했다.

16년 넘게 근무한 조 부지부장의 월급은 실급여 130만원 수준. 같은 경력 정규직 급여는 평균 310만원 정도로, 반토막 수준이다.

밥값도 못받는 학교비정규직이라는 의미로 총파업대회에서 밥그릇을 엎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사진=정봄 기자밥값도 못받는 학교비정규직이라는 의미로 총파업대회에서 밥그릇을 엎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사진=정봄 기자
경기도 의정부에 위치한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근무하는 김미원 공공운수노조 의정부 지회장은 들쑥날쑥한 위생점검 기준에 대해 비판했다.

그는 "위생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사실에는 동감하지만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계속 바뀌는 기준 때문에 일이 더욱 버겁다"며 "위생점검 기간도 지나치게 길어 그 시간 내내 초비상 체제다"고 말했다. 이어 "조리실을 독한 약품으로 청소하는데 바쁘다보면 장갑도 안 끼고 맨손으로 작업하는 경우도 있다"며 "손에 화상도 입고 눈에 튀기라도 하면 실명 위험까지도 있다"고 덧붙였다.

“2인 1조로 청소작업을 하면 나을 텐데, 바쁘다 보니 혼자서 높은 선반이며 천장이며 다 닦아야 해요. 조리대를 밀면서 혼자서 청소하다 보면 미끄러질 뻔할 때도 있어서 아찔하지요.”

그러면서 아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보람은 놓칠 수 없다고. 김미원 지회장은 한 교사가 학생들에게 발송했다는 문자 메시지를 자랑스레 보여줬다. ‘그 동안 그분들의 노고로 불편 없이 먹어왔던 것에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맛나게 점심을 먹도록 파업기간 동안은 도시락을 준비하도록 하자’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 이런 지지자 덕분에 힘낼 수 있었다고 그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비정규직 방과후보육교사="아이들 안전이 제일 걱정이에요."

강원도에서 방과후보육교사 업무를 하고 있는 김모 씨(32∙여)는 "예산문제로 방학기간 동안은 아이들이 먹는 급식·간식을 전부 보육교사가 만들어야 한다"며 "유기농 백설기를 직접 만들기위해 조리실에 혼자 들어가 조리하기도 하는데, 그 시간 동안은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이 방치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교육청에 시정을 요구해도 정교사가 책임질 거라고 하는데 방학기간에는 정교사가 근무하지도 않는다"며 "아이들 22명 안팍을 비정규직 보육교사 한 명이 담당해, 안전문제로 걱정 안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또한 김 씨는 “교사자격증을 갖고 있지만 같은 업무를 해도 기타 잡무나 청소는 비정규직이 전담하는 등 차별도 받는다”고 말했다.

/사진=정봄 기자/사진=정봄 기자
◇비정규직 사서=“우리만 밥값 안 나오는 줄은 최근에야 알았어요. 너무 치사하지 않나요?”

경기도에서 초등학교 비정규직 사서로 근무 중인 서 모씨는 "다른 정규직 교사들도 돈 내고 밥을 먹는 줄 알았다"며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 할 때도 밥값은 나왔는데"라고 말을 흐렸다. 정규직의 경우, 월 13만원의 식대가 나오지만 비정규직은 본인의 돈을 내고 급식을 먹어야 하는 상황.

또한 사서의 업무를 보고 있지만 분명한 업무분장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교사의 보조수준의 업무를 도맡아서 했다. 서 씨는 "사서의 업무가 제대로 명시됐음 좋겠다"며 "PPT, 엑셀, 타이핑, 심지어 교사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교과서 선정 및 구입도 사서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 씨는 최근까지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는 "이전 학교에서 근무할 때는 학교 선생님들이 아이들 앞에서 아르바이트 직원 취급하거나 ‘누구 씨, 도와줘요’라고 부르는 등 호칭이 엉망이었다"며 "아이들이 자신을 아줌마나 언니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기도 했지만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너무 예뻐서, 선생님들도 좋고 학교가 너무 좋아 그만두지 못했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아이들이 내년에는 담임을 맡아주면 안되겠냐고 물을 때, 할 말이 없더라구요. '얘들아, 선생님은 정규직이 아니야, 비정규직이야'라고 말할 수가 없었어요. 아이들은 모르거든요. 제가 비정규직인지."

서 씨는 이번에 처음 파업에 나섰다. 그는 "우리들이 바라는 것은 고용안정과 수당 지급이다. 내가 부당한 처우에 물러나 잘리면 또 다른 비정규직이 차지하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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