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엘라 초콜릿박스]무의식, 그 비밀의 숲 (2)

머니투데이 노엘라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가 2014.12.03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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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라 초콜릿박스]무의식, 그 비밀의 숲 (2)


오이 공포증을 가지고 있던 그녀가 보았던 것은 결국 오이가 아니었다. 그녀의 눈은 오이를 보지만 정작 그녀는 오이를 통해 죽음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가 "나는 실제로 테이블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내게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그린다”라고 말하고 파이프를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한 것처럼 그녀에게 오이는 단순한 야채가 아닌 죽음의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이었던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르네 마그리트가 사과 하나를 방 크기만큼 크게 부풀려 그려낸 것처럼 내게 고가도로는 실제 그것보다도 훨씬 더 크게 느껴지는, 꿈에서 본 것처럼 하늘에 닿아 있을 만큼 높은, 나를 추락시켜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존재로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의 잠재의식은 현실과 상상을 구별하지 못하며 진담과 농담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현실이 아닌 꿈에서 경험했음에도 실제처럼 받아들이고 현실의 감정을 바꾼다. 나쁜 경험 한번 없는 고가도로를 보며 가슴을 뛰게 만들고 오이를 보며 죽음의 공포를 경험하게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무의식의 힘은 강하다.

다큐멘터리의 끝은 그녀가 오이를 덤덤하게 대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녀가 죽음과 오이의 상관 관계를 알아내고 오이와 언니의 죽음을 분리시키면서 그녀의 공포증은 치료가 되었다. 이성이 무의식 속 비밀을 알아내는 순간 원인을 알 수 없었던 공포를 밀어내게 된 것이다.



세상에는 이성만으로 풀어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논리적, 합리적 사고만으로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무의식은 끊임없이 의식에게 사인을 보냄에도 의식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현실에 머문다. 하지만 마침내 무의식을 알아내는 순간, 우리는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된다.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도처에 일어나고 있는 요즘이다. 이성으로, 합리적인 방식으로 접근해 보지만 끝없이 높은 벽처럼 느껴지기 일수다. 노력을 하다 지쳐 그저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체념하고 살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비밀스럽게 저 깊숙이 숨어있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무의식, 그 속엔 어쩌면 풀리지 않는 수많은 의문에 대한 해답이 들어있을 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요즘 우리 사회의 소위 ‘이성적인 판단’이 아쉽기만 하다.

“무의식을 의식화하지 않으면, 무의식이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는데, 우리는 바로 이것을 두고 '운명'이라고 부른다.” - 칼 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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