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가계부는 정부 출범 전 한 약속의 이행 계획에 가깝다. 새로운 내용보다 공약의 재정리와 재원 마련 계획이 주다. 이에반해 3개년 계획은 1년을 지낸 박근혜 정부가 하고 싶은, 그리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계획을 모두 담았다. 3대 추진전략, 94개 실행과제다.
3개년 계획이 탄생한 다음날인 2월 26일. 정부는 ‘서민·중산층 주거안정을 위한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을 발표한다. 그 첫머리에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내수기반 확충 분야 핵심 정책의 일환으로’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달았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첫 번째 대책이라는 의미도 부여했다.
하지만 이 흐름은 곧 끊긴다. 세월호 참사가 기점이다. 굵직한 정책을 내놓지 않은 탓도 있지만 수식어처럼 따라붙던 ‘3개년 계획의 중점 과제인~’이란 표현은 슬쩍 사라졌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취임한 이후엔 더 그랬다. ‘새 경제팀’이 ‘3개년 계획’의 자리를 대신했다. 새 경제팀의 경제정책방향(7월23일)엔 자료 맨 끄트머리에 딱 한번‘3개년 계획의 힘찬 추진’으로 언급된 게 전부였다.
공공기관 1차 평가를 진행하고 워크숍을 진행한 7월31일 자료엔 아예 ‘3개년 계획’의 표현조차 없다. 세법 개정안, 예산안 등의 기조 설명에도 3개년 계획은 없었다. ‘3개년 계획’이란 단어 뿐 아니라 3대 전략인 △튼튼경제 △역동경제 △균형경제 등의 내용도 찾기 힘들다. 최 부총리 취임 후 나온 ‘새 경제팀 정책방향’이 ‘초이노믹스’로 명명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시각 인기 뉴스
이런 흐름이 최근 또 바뀌었다. 계기는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10월29일)이다. 박 대통령은 예산에 국한하지 않고 경제 전반에 대한 구상을 밝혔다. 8개월전 ‘3개년 계획 담화문’을 뼈대로 풀어갔다. 잊혀진 ‘3개년 계획’을 제작자가 상기시키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정부는 깜짝 놀랐다. 부랴부랴 3개년 계획 틀에 맞춰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 보충 자료를 내놓았다. 예산사업이 3개년 계획의 틀로 분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공기관 중간평가 결과’(10월 30일) 보도자료 앞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크게 적었다. ‘3년의 혁신, 30년의 성장’으로 디자인된 3개년 계획 로고도 찍었다. 10월의 마지막날 나온 위안화 거래 활성화 방안 자료의 핵심도 ‘3개년 계획의 중요 과제인~’이었다.
국정 책임자의 철학을 따르는 것은 국정 운영의 기본일 수 있다. 새 경제팀의 단기부양 기조로 몰아친 100일을 정리하고 체질 개선 차원의 3개년 계획으로 전환을 꾀하는 것도 괜찮은 모색이다.
하지만, 자료에 ‘3개년 계획’단어를 넣는 게, 모든 과제를 ‘3개년 계획’으로 치환시키는 게 중요한 지는 잘 모르겠다. ‘3개년 계획’을 살리라고 몰아치는 이들이나, ‘3개년 계획’ 간판을 다시 다느라 바쁜 이들을 보면 느낀 점이다. 근혜노믹스건, 초이노믹스건 정작 부활시켜야 할 것은 ‘3개년 계획’이 아니라 한국경제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