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모뉴엘 '작심사기'에 당했다"…'자성' 목소리도

머니투데이 변휘 기자 2014.10.3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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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관리를 신청한 가전회사 '모뉴엘'의 사기 대출 수법이 31일 관세청 조사 결과를 통해 드러나면서 은행권도 충격에 빠졌다.

"작정하고 속이면 방법이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의견과 함께 안일한 대출 관행과 수출금융에 대한 구조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당국은 27일부터 시작한 은행권에 대한 검사를 계속할 계획이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은 모뉴엘의 대부분 사업이 해외에서 이뤄진 탓에 여신 심사의 현실적 한계가 있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서류를 위주로 기업의 상황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실제 사업 현황에 대한 심사 수단이 지나치게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해외 매출 비중이 높지만 국내 은행에 여신을 의존하는 경우, 매출 상품의 현물을 상시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수출보증·보험구조에선 기업들 입장에서 '매출 부풀리기'를 통한 여신 확대의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금융권 안팎에선 여신 심사에서 현장 방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은행권은 단순히 현장 방문 여부보다는 전문 인력이 문제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실제로 다수 은행들이 모뉴엘의 홍콩 공장에 방문했었지만, 문제점을 찾아내지 못한 것"이라며 "작심하고 현지인들을 동원해서 공장이 잘 돌아가는 것처럼 연출을 하면, 현지 사정에 밝지 않은 은행 입장에서는 여러 제약으로 인해 문제점 파악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모뉴엘이 구형 홈씨어터PC의 가격을 250배나 부풀린 것 역시 "무역보험공사 보증에 대한 맹신, 기업의 기술적 영역에 대한 무지가 합쳐져 발생한 황당한 일"이라며 "단순히 현장 점검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해외 소재 기업의 경우 현지 사정에 밝은 사람, 기술 기업의 경우 전문 지식을 갖춘 사람 등 각 분야에 특화된 인재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겉핥기식 관행적 대출 연장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우리은행이 대출을 빠르게 회수한 것과 비교하면, 이상 징후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는데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대출을 연장한 적당주의가 문제 아니었겠나"라고 지적했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지난 27일부터 기업, 산업, 수출입, 외환은행 등 10개 은행에 40여명의 검사역을 투입해 모뉴엘 관련 검사를 벌이고 있다. 금감원이 파악한 모뉴엘의 은행권 여신은 총 6768억원(9월말 기준)이다. 담보대출이 3860억원이지만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한 신용대출도 2908억원에 달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각 은행의 과거 모뉴엘 여신 취급 내역, 현재 여신 잔액 등을 취합하고 여신 취급 과정에서 규정을 준수했는지 등을 점검하고 있다"며 "검사 결과, 규정 위반 등이 확인되면 제재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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