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인 줄 알았는데 지하가 또 있네”

머니투데이 미래연구소 강상규 소장 2014.10.2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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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재무학]<73>가격 모멘텀(price momentum), ‘주가 관성의 법칙’

/그림=임종철 디자이너/그림=임종철 디자이너


“아무리 펀더멘탈이 좋아도 최근 주가가 하락 추세를 보인다면 매수를 자제하라”

이달 들어 국내 시가총액 1위와 2위인 삼성전자 (76,700원 ▲400 +0.52%)현대차 (249,500원 ▼500 -0.20%) 모두 주가가 크게 하락하며 52주 최저가를 경신했다. 시총 18위인 LG화학 (373,500원 ▲500 +0.13%)도 이달 들어 주가가 급락하며 52주 최저가를 갈아 치웠다.

애널리스트들은 펀더멘탈에 비해 이들 기업의 최근 주가 급락이 과도(oversold)하다며 여전히 매수 추천을 저버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의 투자 전략가들은 “바닥인 줄 알았는데 지하가 또 있더라”라는 증권가의 우스갯 소리를 상기시키며 성급한 매수를 자제할 것을 권고한다.

소위 “주가가 ‘상승(하락) 추세에 있다”고 말할 때 우리는 은연중에 주가에 관성의 법칙이 작용한다는 걸 믿고 있다. 그리고 주식을 매매하기 전 반드시 차트를 보며 과거 주가 추이를 살피는 행동도 주가 변동에 어떤 트렌드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투자 전략가가 최근 주가가 크게 하락한 종목에 대해 섣불리 매수에 뛰어들지 말라고 말할 땐 주가 관성의 법칙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 된다.

관성의 법칙은 아이작 뉴턴(Issac Newton)의 운동법칙 중 첫 번째 법칙으로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모든 물체는 자기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는 것을 말한다. 즉, 정지한 물체는 영원히 정지한 채로 있으려고 하며 움직이던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고 한다.

그런데 이런 관성의 법칙이 주식시장에도 존재한다. 즉 과거 몇 개월간 주가가 올랐던 주식은 향후에도 계속 주가가 오르고, 반대로 주가가 떨어졌던 종목은 미래에도 계속 하락하는 현상이 발견되고 있다. (당연히 과거에 변동이 없던 종목은 미래에도 주가가 크게 변동하지 않는다)


행동재무학에서 가격 모멘텀(price momentum)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1993년 제가디쉬(Jegadeesh)와 티트만(Titman) 교수가 재무학 최고 학술지에 발표하면서 학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제가디쉬와 티트만 교수는 과거 최대 12개월간 상승했던 종목이 향후에도 최대 3년 동안 좋은 성적을 낼 경향이 높다고 발표했다. 특히 과거 6개월간 올랐던 종목들은 앞으로 6개월 동안에도 평균 12% 정도의 초과수익을 실현했다.

사실 가격 모멘텀은 주식 트레이더들 사이에선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졌던 현상으로 이를 활용해 ‘승자를 사고 패자를 팔아라’(Buying Winners and Selling Losers)라는 투자전략이 이미 통용될 정도였다.

이러한 배경에는 주식시장에 가격 모멘텀이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식 트레이더들은 경험적으로 이를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런던 비즈니스 스쿨(London Business School)의 딤손(Dimson), 마쉬(Marsh), 스턴튼(Staunton) 교수는 영국 주식시장에 가격 모멘텀 현상이 1900년 부터 존재하고 있었다고 발표했다. 또 이들은 전세계 18개 주요 국가의 주식시장에서도 가격 모멘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헤지펀드인 AQR 캐피탈 매니지먼트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 주식시장에서도 가격 모멘텀 효과는 1929년부터 존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주식 시장에선 트레이더들이 이미 체험적으로 가격 모멘텀 현상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격 모멘텀은 전통 재무학에서 보면 이상현상(anomaly)이다. 특히 효율적 시장가설(EMH)을 신봉하는 재무학자들에겐 과거의 주가를 보고 미래의 주가를 예측할 수 있다는 주장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얘기다. 가격 모멘텀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효율적 시장가설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전통 재무학자들은 가격 모멘텀 발견에 대해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반박하고 있다. 결국 학계에선 가격 모멘텀에 대한 연구가 더 이상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헤지펀드는 가격 모멘텀을 강하게 믿고 엄청난 연구 자원과 노력을 쏟아 붓고 있다. 소위 콴트 펀드(quant funds)라 불리는 헤지펀드들은 단기간의 가격 트렌드를 찾아내기 위해 자체적으로 깊이 있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아쉽게도 이들 헤지펀드의 연구 결과는 공개되지 않고 있어 자세한 결과를 알 수 없지만(누가 천기누설을 하겠는가?), 이들 헤지펀드들이 점차 초단기 가격 트렌드를 찾아내려고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는 상태다. 심지어 분단위 초단위 가격 트렌드까지도 찾아낸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러한 헤지펀드들을 보면 가격 모멘텀이 주식시장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이 틀림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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