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내 국민연금 돌려다오

머니투데이 성화용 더벨 편집국장 2014.10.24 08:06
글자크기
/사진=머니위크/사진=머니위크


만약 당신이 지난 10년간 또는 20년간 매달 월급에서 몇십만원씩을 떼어 누군가에게 잘 굴려달라고 맡겼는데, 그 결과가 형편없다면? 그래서 나중에 원금이라도 제대로 건질 수 있을지 불안하다면? 과연 이 '사태'를 그저 모른 척 잊고 지낼 수 있을까. 놀랍게도 지금, 우리나라에서 2100만명이 그렇게 살고 있다. 국민연금 가입자들 얘기다.

국민연금 기금 규모는 내년이면 500조원을 넘어선다. 세계에서 3번째로 큰 기금이 된다. 그 수익률이 지난해 4.2%, 비교할 만한 전 세계 대형 연기금들 가운데 꼴찌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젊은 가입자들이 연금을 받기도 전에 기금이 고갈 될 것이라는 무서운 전망들이 나온다.



수익률 10%를 넘는 기금들이 수두룩한데 국민연금은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들여다보면 너무도 당연한 결과여서 어이가 없을 정도다.

우선 기금을 운용하는 인력이 2류, 3류다. 이들의 평균 연봉은 8000만원 수준. 실제 경력과 연차로 비교하면, 국내 금융회사 투자전문 인력 연봉의 60~70% 수준이나 될까. 몸값이 이런데 에이스들이 들어와서 일을 할 리가 없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업무량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비슷한 규모의 해외 연기금들에 비해 운용역의 숫자가 20~30%에 불과하다. 그러니 일을 대충 하고 나머지는 외부에 맡길 수 밖에 없다. 불행히도 외부에 맡긴 운용의 결과는 더 나쁘다.



그럼 왜 좋은 인력을 획기적으로 늘리지 않느냐고? 인사권도 예산권도 기금운용본부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구조다. 정부와 공단에 종속된 본부가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최고운용책임자(CIO)인 기금운용본부장은 그저 가만히 있다가 적당히 임기 마치고 나가야 하는 자리다. 기금운용의 큰 틀을 짜는 기금운용위원회에도 CIO대신 공단의 이사장이 들어가 있다. 위원회에 자산운용 전문가는 단 1명 뿐이다.

결국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실패원인은 단순하다. 천문학적 돈을 움직여 수익을 내야 하는 고난도의 자본시장 비즈니스를 비전문가 중심의 지배구조 하에 놓아 두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세계 시장의 흐름을 거스르는 운용전략으로 전전긍긍하며, 인력난에 허덕이는 3류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해결책 역시 간명하다. 기금운용본부를 1류로 탈바꿈 시키는 것이다. 그 최소한의 요건은 조직의 독립이다. 전문가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해 수익극대화를 목표로 움직이게 하면 된다. 문제는 뻔한 답을 앞에 두고도 그 방향으로 가지 못한다는 데 있다. 여기서 이익의 충돌이 등장한다. 건강보험에 일을 넘겨 역할과 기능이 위축된 국민연금공단은 알토란같은 기금운용본부를 내놓기 싫어한다. 기금운용본부는 세계적인 '갑'이지만, 공단 내에서는 '을'도 아니고 '병'이나 '정'쯤 된다. 기금을 끼고, 휘둘러야 그나마 공단이 폼을 좀 잡을 수 있는데, 이걸 내줄 수는 없는 것이다. 정부부처간의 이해관계도 예민해질 소지가 있다. 복지부 관할이지만, 돈을 움직이는 곳이니 기재부나 금융위도 관련이 있다. 기득권을 정리하는 작업이 복잡하다 보니, 당위를 눈앞에 두고도 어물쩡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을 제외한 주요국 상위 10개 연기금의 지난해 수익률을 단순 산술로 평균치를 내면 어림잡아 8~9%는 될 것 같다. 국민연금을 '정상적'으로 운용해 이 정도 수익을 낸다면 한해 20조원을 더 벌게 된다. 역으로 보자면, 공단이 폼 잡는 비용, 정부가 방기하는 비용으로 한 해 그 만큼을 쓰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설상가상 내후년 국민연금의 전주 이전이 예정돼 있다. 기금운용본부에는 그야말로 갈 곳 없는 '3류'만 남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쯤 되면 '내 국민연금 돌려달라'고 청와대 앞에서 시위라도 해야 할 판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