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진 전 증권업협회(현 금융투자협회) 회장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빙딩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자신과 증권업계의 역사를 담은 자서전 '증권 반세기 강성진 회고록' 출판기념 및 미수연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격동의 증권 반세기를 보낸 증권업계의 '산 역사' 강성진 전 증권업협회장이 88세 미수를 맞이했다. 20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강 회장의 '증권 반세기' 회고록 출판 기념 및 미수연에는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 정영의 전 재무부 장관, 이종찬 전 국정원장,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정우택 국회 정무위원장, 변양호 보고펀드 대표, 김한 JB금융 회장, 최경수 한국거래소 이사장, 박종수 금융투자협회장 등 각계각층 인사 600여명이 참석해 강 회장을 축하했다.
강 회장이 증권업계의 리더로 자리매김한 것은 1964년 삼보증권을 인수해 국내 1위 증권회사로 키워내면서다. 강 회장은 "인수 전에는 중위권이었던 삼보증권의 영업실적이 인수 1년 만에 1위로 올라왔다"며 "예전부터 나와 거래해왔던 고객들의 믿음 덕분이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다만 회사 이윤보다 업계 선두 유지와 외형 확장에 경영 목표를 둔 것이 예기치 못한 화를 불러일으켰다. 삼보증권은 1982년에 시재금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검찰과 증권감독원의 조사를 받게 됐다. 강 회장은 "당시 부족한 시재금 규모는 20억원 정도라 회사 내부에서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정치권에서 '삼보증권 사태'로 부를 정도로 문제가 부풀려지자 수습하기가 불가능해졌다"고 회상했다. 회사 경영에 대한 책임을 느낀 강 회장은 강경식 당시 재무부 장관과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을 만나 먼저 합병 이야기를 꺼냈다. 부족한 시재금은 갖고 있는 전 재산을 팔아 메우기로 했다. 삼보증권은 그렇게 1983년에 대우증권에 흡수합병됐다.
하지만 고난의 시기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1989년 말부터 증시가 폭락하자 증권업계는 다시 강 회장의 리더십을 필요로 했다. 1989년 3월에는 종합주가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1000포인트를 돌파했지만 IPO, 유상증자 등 주식 발행이 남발하면서 증시가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1990년 9월17일 종합주가지수는 566.27을 기록해 1년 반 사이에 지수는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강성진 전 증권업협회장(가운데)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증권 반세기 강성진 회고록' 출판기념 및 미수연에서 가족들과 함께 케이크를 커팅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사위), 강성대 전 삼보증권 부사장(강 전회장의 동생), 강신애 따뜻한재단이사장(장녀), 강 전회장, 강완구 일동여행사 회장(장남), 강흥구 (사)태평양시대 이사장(차남) 부부.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강 회장은 1990년 3월 증권업협회장으로 선출돼 '증시 안정'을 위한 구원투수로 나섰다. 강 회장은 주가 하락세를 막기 위해서는 증권시장 안정기금(이하 증안기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우선 25개 증권사가 2조원을 출연하고 업계 밖에서도 도움을 얻기 위해 주요 상장기업들을 직접 찾아다녔다. 정부도 적극 지원하기로 해 기금을 4조원으로 크게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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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회장은 증안기금 조성에 그치지 않고 정부에 깡통계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력히 건의했다. 증권회사는 고객이 보유한 주식을 담보로 주식 매입결제대금을 빌려줄 수 있는데 이 때 담보로 잡은 주식의 평가액은 융자금의 130%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담보 주식의 주가가 떨어지면 주식을 다 팔아도 증권회사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소위 '깡통 계좌'가 된다. 당시엔 전산화 미흡으로 어느 계좌가 깡통계좌인지조차 수작업으로 일일이 찾아내야 했다.
강 회장은 '깡통계좌는 하루빨리 도려내야 할 '암 덩어리'라고 판단하고 과감하게 깡통계좌를 정리하도록 했다. 또 이런 일을 재발하지 않도록 담보 평가액이 부족해지면 자동으로 반대매매를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야말로 격동의 세월에 증권업계의 중심에 있었던 강 회장은 증시가 안정을 되찾자 1993년 4월 협회장에서 물러났다. 이후 삼보증권 출신 사우가 설립에 참여했던 B&G증권 명예회장으로 재직하다 2013년 12년 물러나 반세기만에 증권업계에서 공식적으로 은퇴했다.
강 회장과 함께 증권업계를 일군 이들은 그를 '겸손하고도 강직한 증권인'이라고 기억한다. 1990년 당시 증안기금을 함께 만든 정영의 전 재무부장관은 "강 회장은 강인한 의지로 일을 열정적으로 밀어붙이는 한편 정책 당국 입장도 역지사지로 생각해주는 훌륭한 지도자"이라고 평가했다.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도 "강 회장은 일찍이 우리나라에 증권업이 태동할 무렵부터 증권산업의 부침과 더불어 평생을 증권인으로 살아온 분"이라며 "그동안 간직해온 소중한 경험을 책으로 펴내 후배들에게 교훈을 준 데 대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백규 머니투데이 사장은 이날 축사 연사로 참석해 "강 회장은 회고록에서 자본시장의 상징과 같은 주식시장이 우리나라에 어떻게 뿌리내리고 성장할 수 있었는지 당신의 경험담을 토대로 생생하게 전해준다"며 "일반 투자자들에게도 시장을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을 선사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강 회장의 사위인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자본 없이 사업이 이뤄질 수 없는데 그 자본시장을 이끄신 분을 장인으로 모시고 있어 개인적으로 영광"이라고 밝혔다.
강 회장의 회고록 '증권 반세기'는 우리나라 증권시장이 지나온 길에 관한 매혹적인 이야기이자 솔직한 회고담이며 잘 알려지지 않았던 수많은 일화들을 읽을 수 있는 보물창고 같은 책이다. 우리나라 증권업계 1세대로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한눈 팔지 않고 줄곧 증권시장에 몸담아온 강 회장은 지금 회고록을 발간한 목적을 이렇게 말했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그저 잘 넘어간 것 같지만 절체절명의 순간을 기억하지 않으면 반드시 똑같은 시련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증권시장이 주는 교훈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굳이 과거의 일을 끄집어 내 그 과정과 전말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이유도 시장이 주는 교훈을 알려주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