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라이프]집 나가는 톡? vs 도둑잡는 톡?

머니투데이 최광 기자 2014.10.18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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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 감청 논란이 남긴 것]사이버 망명 러시…수시기관 불신 정당한 법집행조차 신뢰못해

[디지털 라이프]집 나가는 톡? vs 도둑잡는 톡?


선생님이 자리를 비운 야간자율학습 시간이면 이 교실 저 교실마다 자유를 만끽하는 학생들의 소란으로 어수선해진다. 하지만 교실마다 CCTV를 설치해 놓으면 학생들은 CCTV 앞에서는 얌전히 공부를 하지만 CCTV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다시 고삐풀린 망아지가 돼버린다. CCTV 앞에서 선생님이 이를 계속 지켜볼리는 없지만 누군가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학생들의 행동을 제약하는 것. 야간자율학습 시간에는 학생들은 조용히 공부해야한다는 교사들의 생각과 조금이라도 자유를 누리고 싶은 학생들의 생각이 교실의 CCTV에서 충돌하는 것. 교사들은 학생들이 얌전해졌다고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방심해서는 안된다. CCTV로 볼 수 없는 교실 밖에서 학생들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니 말이다.

학생과 교사간의 CCTV를 두고 벌어진 일이 국가와 국민들 사이에서도 빈번히 발생한다. 국가는 범죄자를 잡기 위해 국민을 감시하려고 하고, 국민은 국가의 감시가 자유를 침해한다며 감시가 없는 곳을 찾아간다.



'실시간 모니터링'으로 대표되는 검찰의 사이버 명예훼손 근절대책이 발표되자마자 국민들은 정부의 감시가 시작됐다며 걱정을 시작했고,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가 카카오톡 대화내역 압수수색 사실을 폭로하자 우려가 현실이 됐다며 텔레그램으로 사이버 망명을 떠났다. 급기야 국가정보원이 카카오톡의 대화내역을 감청했다는 사실마저 폭로됐고, 다음카카오는 처음에는 감청 사실을 부인하다 뒤늦게 이를 시인하게 됐다. 결국 많은 이용자들이 카카오톡을 떠나게 되고 텔레그램의 인기가 치솟자 이석우 다음카카오 대표는 '감청영장 불응'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됐다.

◇ 신뢰를 잃은 '대한민국 헌법 17조'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했다. 내가 누군가와 하는 대화는 사생활에 속하는 것으로 그 비밀과 자유는 침해받지 못하는 헌법적인 권리인셈. 그래서 통신비밀보호법에는 그 제한을 엄격하게 정하고 있다.

형법상 내란이나 외환, 국가보안법 위반 등이 주 감청대상 범죄. 실제 감청영장을 신청하는 수사기관도 국정원이 주를 이룬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사찰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우리 사회는 국정원의 감청은 어두운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게 한다. 그시절의 기억이 없는 사람들도 자신의 대화를 누군가가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축되고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전제는 국정원의 선거개입, 검찰의 간첩 조작사건 등으로 국가 권력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 상황이다. 이런 조건에서 검찰이 박근혜 대통령의 한마디에 사이버 검열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힌다. '수사기관의 감청은 곧 사찰이다'라는 인식이 강하게 뿌리내린 상황에서 이용자들이 국내 서비스를 버리고 해외서비스로 옮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 정작 수사해야할 범죄대상은 어찌하오리까

하지만 이는 역으로 오히려 정부와 수사당국이 지어야할 부담이다. 정작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해서라도 해야하는 범죄수사는 오히려 불가능해질 수 있다.

흉악한 범죄자들이 이번 사건으로 오히려 다른 해외 메신저를 이용하면서 범죄를 모의하지 말란 법이 없다. 이는 다음카카오가 감청영장에 협조를 거부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이다. 국가의 신뢰가 붕괴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더 자유로운 공간을 찾아 사이버 망명을 떠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카카오톡의 가입자는 서비스 시작이래 처음으로 감소로 돌아섰고, 독일산 망명메신저 텔레그램은 국내 가입자만 160만명을 넘어섰다. 텔레그램의 세계가입자가 5000만명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성장이다.

텔레그램에서도 한국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서둘러 한국어 지원에 나서면서 국민을 배신한 카카오톡과 이들을 보듬은 텔레그램의 대비가 명확해진 것이다.

한상기 소셜컴퓨팅연구소 대표는 "법률에 입각한 감청영장을 기업이 거부하고, 국민들도 수사기관을 신뢰하지 않는 상황"이라며 "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유언비어로 인한 혼란을 신속히 줄일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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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 라덴 vs 유병언

빈 라덴 체포 사건을 예로 들만 하다. 미국이 오사마 빈 라덴의 체포작전을 벌이면서 미국 정보기관은 빈 라덴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통신수단을 감청했다. 결국 휴대폰에서 빈 라덴의 통화를 찾아냈고, 체포작전에 성공하게 됐다. 반면 휴대폰 감청이 불가능한 국내에서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검거작전을 펼치는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통신사들이 감청 설비를 설치하지 않아 휴대폰 감청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통신비밀보호법은 헌법이 보장한 사생활의 비밀을 엄격하게 지키기 위해 감청 대상 범죄를 280여개로 엄격히 구분했고, 법원의 통제에 의해서만 실행하도록 했다. 그 결과 최근 4년간 감청영장의 청구는 연평균 120건에 불과했고, 구속영장은 4만3000건에 달했다. 감청영장 기각률은 4%에 머물고 있지만 이는 감청영장의 청구가 더욱 엄격하게 청구됐고, 법원에서도 감청의 필요성을 인정했다는 의미다.

카카오톡이 불안하다고 해외 메신저로 망명을 떠나는 일은 자신의 정보를 전세계 해커들과 정보기관에 제공하는 일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미국은 영토 밖 외국인은 영장없이 감청을 할 수 있게 됐으며, 독일, 벨기에 등은 정보기관이 PC와 스마트폰을 해킹해 수집한 자료도 범죄증거로 인정한다.

보안이 뛰어나다는 텔레그램의 암호화 수준도 실상은 수학자들이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정도로 보안업계에서 요구하는 엄밀한 수준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망명메신저라는 이미지에 정작 안전한지는 검증도 하지 않고 텔레그램으로 갈아타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국내에서는 휴대폰은 감청자체가 불가능해 산업기밀 유출이나 공안사건, 국제 테러조직 사건, 조직폭력 사건 등을 수사할 때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감청은 범죄사실을 증명하는 것도 목적이지만, 발생될 우려가 큰 대형 범죄를 사전에 막기 위해서도 필요 정작 인터넷 감청은 앞으로의 범행 계획을 탐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 감청 저항감 극복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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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과 수사기관에서는 인터넷 감청은 물론 휴대폰 감청도 의무화 해야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인터넷 감청도 사업자들에게 감청설비 장착을 의무화하고 법원의 허가만 나오면 사업자들의 협조 없이도 수사기관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 과거 야당도 참여정부 시절에는 합법적인 휴대폰 감청의 필요성을 인정해 통신비밀보호법 개정 발의에도 참여했다.

2005년 국가정보원의 불법감청 사실이 드러난 이후 국회에서는 여야의원 7명이 불법감청은 막고 지능화된 범죄를 수사하기 위한 휴대폰 감청을 위해 통신사업자에게 감청설비 구축 의무를 부과하는 법안을 발의했으나 회기 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세계 각국은 지능화된 국제 범죄로부터 자국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정보기관의 감청을 비교적 자유롭게 혀용하고, 대신 엄격한 통제를 받도록 하고 있다. 반면 '감청이 곧 사찰'이라는 등식이 오랫동안 지배해온 현대 역사 때문에 반감이 크다.

통신사업자는 물론 인터넷 사업자들도 감청설비 부착이 이용자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큰 상황이라 이를 법제화하기에는 어려움이 클것으로 예상된다. 인터넷 업계 관계자는 "메신저 감청조차 국민적인 저항에 휩싸이는 나라에서 휴대폰 감청을 하겠다고 하면 불신이 더욱 깊어질 것"이라며 "해외에서는 첨단범죄와 테러를 막기 위해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저항감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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