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나의 '삼성사용설명서'를 택한다는 건 삼성을 어떻게 이해하느냐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삼성을 이해한다는 건 우리나라만 사용하는 '재벌'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고 그 단어가 내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궁극적으로 한국 경제정책의 문제로 이어진다.
저자는 이처럼 '삼성사용설명서'를 쓴 경제학자 30여명을 '가장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나열한다. 그리고 이중 대표 7인을 선정해 그들의 주장을 풀어줬다.
그렇게 보니 좌우라고 해도 재벌에 대한 여러 시선은 일직선에 놓여있지 않다. 앞서 예로 든 장하준 교수와 김상조 교수는 주주를 중심으로 한 접근법에선 일맥상통하나 장하준 교수가 재벌시스템이 주주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는 반면 김상조 교수는 소액주주(기관투자가 포함)의 역할을 더 강조하는 차이가 있다. 김상조 교수의 주장이 기업 총수의 전횡에 맞서야 하는 논리로 이어지는 이유다.
이병천 교수는 장하준 교수의 주주자본주의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재벌시스템이 신자유주의와 결탁해 문제가 심각하다는 차이를 보인다. 이 교수는 재벌은 주주가치 따위엔 관심이 없다며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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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가장 왼쪽에 둔 김성구 교수는 국가가 자본에 종속돼 있으니 재벌을 통제해야 사회개혁이 된다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그가 주장하는 재벌통제의 방법이 '재벌 해체'는 아니다. 독점화는 자본주의의 필연적 경향이니 반독점행위를 근절하는 정부의 강력한 개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상봉 교수는 '주식회의 주인은 누구여야 하느냐'는 다소 다른 차원의 접근법을 제시한다. 이사회가 주주를 대표할 수 없으니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자는 주장이다. 주주에겐 배당과 기업자산에 대한 잔여청구권을 주는 대신 경영권을 노동자에게 주자는 제안을 한다. 이론적으로 보면 삼성전자 노동자들이 투표로 이사회를 구성하고 이사회에서 대표이사를 선출하는 식.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주주며 경영권은 노동자들의 투표로 가능해진다.
장하성 교수는 김상봉 교수의 이 같은 접근법과 정반대다. 주주라면 무조건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촌지간인 장하준 교수와의 입장 차는 이미 잘 알려진 화젯거리다. 맨 오른쪽에 있는 김정호 교수는 '제발 그냥 내버려두자'는 접근법이다. 총수가 이 정도로 했으니 이만큼 성공했고 국가가 하지 못한 책임을 성공한 대기업에 전가하려 한다는 비난이다.
'나의 재벌개혁 유형'이 궁금한가. 완독 후 '7지 선다형' 중 하나를 택하는 방법이 있지만 '삼성매뉴얼'(www.samsungmanual.co.kr) 사이트에서 퀴즈로 풀어보고 답을 확인하는 건 또 다른 재미다. 여러 경제관련 용어의 정의에 대해서도 이해가 필요하니. 늘 그렇지만 매뉴얼은 또 다른 '공부'다.
◇ 한국의 경제학자들 - 이건희 이후 삼성에 관한 7가지 시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