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시장] 이 부부들, 이혼시켜야 할까?

머니투데이 조혜정 변호사 2014.10.13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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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시장] 이 부부들, 이혼시켜야 할까?


원칙적으로 우리나라 이혼소송에서는 '재판상 이혼사유'의 존부를 따져 이혼사유가 없을 경우에는 이혼청구를 기각하도록 돼 있다. 이렇게 한 쪽에 잘못한 사유가 있어야 이혼판결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놓은 법을 '유책(有責)주의'라고 한다.

민법 제840조에 규정된 재판상 이혼사유를 보면 '3년 이상 생사불명, 배우자의 폭언·폭행 등 부당한 대우, 외도'등 누가 봐도 '그렇게는 못 살지'하는 생각이 들만한 이유들이다.



하지만 부부사이가 깨지는 사유가 어디 그뿐이던가. 뚜렷한 재판상 이혼사유는 없지만 부부 사이가 깨져 이미 부부라고 할 수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부부관계가 파탄됐다면 당사자들의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이혼시켜줘야 한다는 입장은 '파탄주의이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이혼소송의 판단기준은 유책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파탄주의를 보완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돼 왔다.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필자의 느낌은 이제 가정법원의 대세는 파탄주의라는 것이다. 사례들을 보자.



#1. 남편 70세, 아내 67세의 노부부. 10년 전 남편의 외도를 의심한 아내와 크게 싸운 후 남편은 살던 집을 아내에게 주고 집을 나와서 현재까지 별거중이다. 10년간 부부가 서로 연락하거나 만난 것은 몇 차례에 불과하고 장성한 자식 셋도 아버지와는 거의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이 상태로 더 이상 지내고 싶지 않았던 남편은 아내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한다. 부부관계가 회복불가능한 상태로 파탄됐으니 이혼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이혼거부하고 있다. 이유는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려왔고 이혼당하는 불명예를 안기 싫다'는 것.

#2. 남편 40세, 아내 38세, 초등학생인 아이가 둘인 부부. 결혼 직후부터 자주 다퉜던 부부는 3년 전 아내가 아이들 둘을 데리고 해외근무를 떠나면서 별거에 들어갔다. 현재까지 이혼조건과 아이들 문제를 제외하면 서로 연락하지 않은 채로 지내고 있다. 관계회복을 원하지 않는 남편이 이혼소송을 제기하자 아내는 이혼거부. 남편은 밉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가정을 지키고 싶다는 게 거부 사유다.


#3. 아이가 없는 30대 부부. 몇 년째 각방을 쓰면서 부부간의 대화도 거의 없다. 이렇게 사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낀 아내는 이혼소송을 제기했으나 남편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혼당할 만한 잘못이 없다'는 것이 남편의 입장이다.

유책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이혼을 안 하겠다는 쪽에 뚜렷한 잘못이 없어 이혼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이 나올 수도 있는 사례들이다. 그러나 실제 이 사건들을 진행해보니 가정법원은 대체로 이혼을 하지 않겠다는 당사자들에게 이혼을 강하게 권유했다. 이혼을 거부하는 당사자는 '회복가능성이 있으니 가정을 지키고 싶다'고 희망사항을 피력하지만 법원은 당사자들의 주관적인 희망보다는 부부관계회복가능성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가를 판단기준으로 삼는다.

부부 중 한쪽이 강하게 이혼을 원하고 있어서 부부관계의 회복가능성이 없다면 법률상 부부관계를 정리하고 각자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옳다는 것이 최근 가정법원의 태도인 것이다. 별거시작 시점에서 어느 정도 유책사유가 있는 배우자가 이혼을 청구한 경우에도 대체로 비슷하다. 한마디로 이혼소송에서 유책주의는 거의 사문화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판상 이혼사유가 없으면 이혼을 안 당한다고 믿었던 당사자들은 이런 법원의 태도에 상당히 놀라기도 한다. 가정은 꼭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법원의 태도변화를 수용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보수적이던 카톨릭조차도 최근 이혼절차를 정하는 위원회를 만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법원의 변화는 시대흐름의 반영이라고 이해해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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