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집값은 기는데..뉴욕·뉴저지는 '미친 월세값'

머니투데이 채원배 뉴욕특파원 2014.10.07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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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배의 뉴욕리포트]

미국 집값은 기는데..뉴욕·뉴저지는 '미친 월세값'


"내일 오전 10시 쇼잉(showing) 가능할까요? 수요일 쇼잉 가능하면 에이전트를 보내도 될까요?"

요즘 기자가 부동산 중개업자로부터 수시로 받는 문자 내용이다. 집주인이 집을 매물로 내놓아 임차인으로서 집을 보러 오겠다는 사람들에게 집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집을 매물로 내놓은 지난 8월 말 이후 한달여 동안 20여명이 집을 보러 왔지만 아직도 집은 팔리지 않고 있다.



기자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뉴저지 버겐카운티에서 학군이 좋기로 유명한 테너플라이 바로 옆 크레스킬이다. 뉴저지 버겐카운티는 뉴욕 맨해튼에서 다리 하나 건너 있는 곳으로, 뉴욕으로 출퇴근이 가능하다. 입지 조건도 좋고 학군도 괜찮지만 매수 희망자들이 주저하는 이유는 가격 때문이다.

뉴욕 플러싱에 거주하고 있는 집주인은 자녀 학군 때문에 대출을 받아 크레스킬의 한 타운하우스인 이 집을 샀고, 아들이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다시 플러싱으로 이사간 후 세를 주고 있다. 주인이 집을 산 시점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으로, 미국 부동산시장이 피크를 찍을 때였다.



그동안 집값으로는 손해를 본 주인은 미국 부동산시장이 회복 조짐을 보인다는 소식에 매입가격보다 조금 낮은 48만9000달러에 집을 내놓았다. 하지만 매수 희망자들은 이 가격이 비싸다고 인식하는 듯하다. 올 초에 같은 단지의 다른 타운하우스 매매가격이 46만달러 내외였기 때문이다.

주인 입장에서는 급매물이 소진된 상황이라고 판단해 매도가를 올 초 타운하우스 거래가격보다 높였고, 매수인들 입장에서는 올 초 거래된 가격 수준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기자가 장황하게 현재 살고 있는 집 얘기를 한 것은 미국 부동산시장의 현 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해서다.


회복 조짐을 보이던 미국 부동산시장이 최근 들어 다시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미부동산협회(NAR)가 지난달 말 발표한 미국의 8월 미결주택매매 지수가 104.7로 지난 7월보다 1% 감소했다. 이는 시장 전망치인 0.5% 감소보다 감소폭이 큰 것이다. NAR이 앞서 발표한 8월 기존주택판매 건수도 연환산 505만채로 전월대비 1.8% 줄었다.

부동산시장에 대한 연방준비제도(연준)의 평가도 좋지 않다. 연준은 9월 FOMC(공개시장위원회) 성명서에서 "주택부문의 회복세는 여전히 느린 속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주택시장의 회복세는 이처럼 느리지만 미국 대도시와 주변 도시의 월세값(렌트비)은 치솟고 있다.

한국에서 '미친 전세값'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듯 미국도 '미친 월세값'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뉴욕 맨해튼의 원룸 월세가 2000달러를 넘은지는 오래고, 뉴저지 버겐카운티의 월세도 매년 상승하고 있다. 뉴저지 크레스킬의 경우 방 3개짜리 45만~50만달러 집의 월세가 대부분 3000달러를 넘는다. 연 단위로 환산하면 연간 임대료가 집값의 7.5%나 되는 것이다.

영화나 TV에서 보면 미국 집들이 근사해 보이지만 대부분의 미국 주택들은 최소 30년 이상 돼 낡았다. 그런데도 월세값은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넘어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주택 구입을 원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적잖은 사람들이 은행 융자에 어려움을 겪어 실제 주택 매입에는 나서지 못한다고 한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 은행들의 대출 심사가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LTV(주택담보대출비율), DTI(총부채상환비율)규제를 완화한 한국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처럼 한국과 닮은 듯 다른 듯한 미국 부동산 시장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 글로벌 시대에 미국 주택가격 추이가 한국 집값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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