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집은 '학원'…" 법 사각지대 놓인 대학생들

머니투데이 송학주 기자 2014.10.06 06:02
글자크기

[나몰라라 '스튜던트푸어']<1>대학가 주변 임대수익 올리기 위한 '불법건축물' 기승

편집자주 '스튜던트푸어'(Student Poor)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저물었다. 월 100만원에 달하는 방세와 생활비를 해결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보니 학점은 포기한다.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쌓기 위해선 수천만원이나 들어간다. 결국 '스튜던트푸어'로 시작해 헤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빈곤층으로 들어설 수밖에 없는 현실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우리사회는 이들에 대해 여전히 '나몰라라'한다. 우리청년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빚으로 시작하지 않도록 세심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때다.

방 쪼개기는 비일비재
교육시설 원룸 둔갑도

불법 탓 전입신고 막아
보증금 보호도 못 받고
사고 나도 세입자 부담


"내가 사는 집은 '학원'…" 법 사각지대 놓인 대학생들


대학가 주변 원룸 임대사업이 안정적 수입원으로 각광받으면서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의 대학 근처 다세대·다가구주택의 방을 늘리는 일명 '방 쪼개기' 등 불법건축이 기승을 부린다. 심지어 주택이 아닌 학원이나 고시원으로 허가받아 원룸으로 개조한 후 임대수익을 올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문제는 이 같은 불법의 피해가 고스란히 세들어 사는 대학생들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불법건축물은 월세 소득공제나 보증금 보호도 받을 수 없을 뿐더러 주거환경도 열악해 화재 등 안전사고 발생시 심각한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

하지만 단속이 거의 이뤄지지 않다 보니 최근 들어선 건축주들도 거리낌이 없다. 정부가 건축 인·허가를 내주고 현장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결과다. 게다가 불법개조한 원룸은 건축법상 불법건축물에 해당되지만 적발돼도 고발이나 이행강제금 부과 등 단순처벌에 그치다보니 좀처럼 근절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임종철@임종철
지난 2일 찾은 서울 서대문구의 한 대학가 주변 원룸 밀집지역. 인근 다른 건물과 달리 최근에 신축한 듯 외관이 깔끔한 5층짜리 건물이 눈에 띄었다. 출입문도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들어갈 수 있도록 보안이 잘 돼 있다.

내부엔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을 겨냥한 듯 에어컨, 드럼세탁기, 냉장고, 옷장, 컴퓨터책상이 갖춰져있다. 다만 보일러는 층마다 한켠에 마련된 공간에 2~3개 설치돼 있다.

층마다 많게는 10개의 방이 있고 지하 1층부터 5층까지 모두 55가구나 마련돼 있다. 방 내부를 직접 들여다 볼 순 없었지만 최근 직거래카페에 올라온 방 구하는 글을 보면 15㎡ 남짓한 면적에 화장실과 부엌 등이 있는 전형적 대학가 원룸이다. 6층 옥탑방은 건물주인이 직접 거주한다.


임대조건은 지하층부터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로 35만~50만원가량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월 임대소득만 2000만원 이상. 지하 1층엔 차량 4대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고 1층 출입문 쪽에도 4~5대의 차량을 주차할 수 있지만 55가구에 비해선 턱없이 부족했다.

이곳에 사는 한 주민은 "주변에서 이만한 조건에 이렇게 깨끗한 집 찾기가 쉽지 않다"며 "건물 2개층마다 정수기도 마련돼 있고 맨 꼭대기 층에 주인이 살고 있어 공과금 납부 등 관리가 잘 돼 살기 좋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대학가 주변 원룸. 건축대장에는 '교육연구시설'로 등록돼 있지만 실제론 55가구가 거주하는 주거용 건물이다. /사진=송학주기자서울 서대문구의 한 대학가 주변 원룸. 건축대장에는 '교육연구시설'로 등록돼 있지만 실제론 55가구가 거주하는 주거용 건물이다. /사진=송학주기자
서울 서대문구의 한 대학가 주변 원룸에 마련된 보일러실. 여러 가구가 공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진=송학주기자서울 서대문구의 한 대학가 주변 원룸에 마련된 보일러실. 여러 가구가 공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진=송학주기자
◇'교육연구시설'을 원룸으로 바꿔 수억원 임대소득…'법 사각지대'에 놓인 대학생들

하지만 해당 건물의 등기부등본을 떼보니 주택이 아닌 '교육연구시설'로 등록돼 있었다. 교육연구시설은 학교나 학원, 연구소 등을 세울 수 있는 건축물로 주택으로 사용하기 위해선 용도변경을 신고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해당 건물은 엄연히 불법이다.

이처럼 원룸으로의 불법 용도변경이 성행하는 이유는 대학생과 직장인의 임차수요가 많아서다. 어떻게든 방을 구해야 하는 학생들의 처지를 악용해 해마다 수억원의 임대소득을 세금 한푼 내지 않고 올리는 것이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대학가 주변 원룸에 전력 계량기가 설치돼 있다. 계량기는 8개에 불과하지만 실제론 55가구가 거주하는 있다. /사진=송학주기자서울 서대문구의 한 대학가 주변 원룸에 전력 계량기가 설치돼 있다. 계량기는 8개에 불과하지만 실제론 55가구가 거주하는 있다. /사진=송학주기자
일반적으로 월세를 놓고자 하는 집주인은 관할구청에 주택임대사업 승인을 신청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등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학가 월세 임대업자들의 소득세 탈루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때문에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세입자인 대학생들이 볼 수밖에 없다. 전입신고·확정일자 등을 받을 수 없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함은 물론 월세소득공제를 신청하려 해도 불법건축물로 들통날까봐 주인들이 이를 신청하지 못하도록 미연에 막는다는 것이다.

이영진 고든리얼티파트너스 대표는 "건축주들이 일단 적법하게 해서 준공검사를 받고 나중에 용도변경하거나 가구수를 늘리는 따위의 편법이 만연한다"며 "불법건축물이 경매에 넘어가면 세입자로서 보호를 받을 방법이 없고 또 화재가 발생했을 때도 온전히 세입자의 부담으로 남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