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사이트] 김우중과 새정치연합, 2가지 공통점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14.09.09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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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 이합집산으로 몸집 불리기, 과거의 '성공 방정식'에 집착

[이슈 인사이트] 김우중과 새정치연합, 2가지 공통점


# 1998년 4월 어느 날 서울 남산 힐튼호텔, 당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과 김중권 청와대 비서실장, 강봉균 경제수석이 마주 앉았다. 외환위기를 극복할 방안에 대해 서로 상의해보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지시였다.

김 회장이 열변을 토했다. "우리가 올해 수출을 조금만 더 하면 500억달러 무역흑자가 난다. 그걸로 IMF(국제통화기금)에 빌린 돈 다 갚고도 남고, 내년에 500억달러 흑자나면 리저브(외환보유고)가 된다. (중략) 옛날 박정희 대통령 때는 수출확대회의를 해서 어려운 것까지 풀어주면서 하지 않았느냐?"



그러자 강 수석은 "이제 시장경제 중심으로 하니 정부가 나서서 그런 것 못 한다"고 했다.

김 회장은 발끈하며 쏘아붙였다. "그러면 강 수석은 시장경제 하는데 무엇 때문에 거기 앉아 있나? (중략) 시장 중심이면 청와대 경제수석이고 비서관이고 필요 없겠네".




김 전 회장이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에서 밝힌 내용이다. 당시 사건으로 강 수석과 사이가 틀어졌다는 게 김 전 회장의 생각이다.

김 전 회장은 김대중정부 시절 '신흥관료'들에게 '대우 해체'의 책임을 돌렸다. DJ를 사이에 두고 자신들과 사사건건 대립하는 김 전 회장에게 신흥관료들의 감정이 상했다는 얘기다. 김 전 회장은 신흥관료들이 미국과 IMF의 '재벌 구조조정' 압력에 굴복해 대우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주장도 폈다. 과거부터 꾸준히 제기돼 온 이른바 '기획해체론'이다.

물론 김 전 회장으로선 억울할 만한 부분도 있다. 외환위기 전후로 대기업들의 부채비율이 크게 뛰어오른 건 환율 급등으로 외화부채 평가액이 불어난 탓이기도 했다. 특히 외화부채가 많았던 대우에게 부채비율을 무조건 200% 아래로 낮추라는 정부의 지침은 가혹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들은 대우가 무너진 진짜 이유를 비켜가고 있다. 김 전 회장은 국내 재계 역사상 최고의 '기업회생'(turnaround) 전문가이자 '금융'의 귀재였다. 이 장점이 김 전 회장에게는 동시에 최대 위험요인이었다.

대우는 '유기적 성장'(organic growth)보다는 주로 부실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불렸다. 김 전 회장은 금융권에서 자금을 끌어와 부실기업들을 인수하고 정상화시키는 데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했다. 이것이 바로 대우를 재계 서열 2위까지 끌어올린 김 전 회장의 '성공 방정식'이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국내 금융권은 초토화됐고, 동아시아 금융위기로 국제금융시장까지 얼어붙었다. 채무 만기연장(롤오버)이 극도로 어려워졌다.

1998년 5월 대우를 비롯한 5대 그룹은 정부에 구조조정 계획을 제출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김 전 회장은 여전히 과거의 '성공 방정식'을 고수했다. 그는 "경제성을 확보하려면 대우차 생산량을 250만대까지 늘려야 한다"며 오히려 더욱 몸집을 불리려 했다.

1999년 7월까지 삼성 현대 LG SK그룹이 구조조정 계획을 90% 이상 이행하는 동안 대우의 이행률은 고작 18.5%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해 대우는 해체됐다.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은 2가지 면에서 대우를 닮아있다. 첫째는 이합집산을 통해 '세'(勢)를 불려왔다는 것, 둘째는 과거의 '성공 방정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여정부 때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뜻을 모은 다음 그 뜻을 중심으로 '세'가 모여야 하는데, 새정치연합은 '세'부터 모았다"고 했다. '세'부터 불린 부작용은 작지 않다. 같은 철학을 공유하지 못 하다 보니 나오는 목소리도 제각각이다. 최근의 선거 결과들과 세월호 정국에서의 입지가 그 심각성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새정치연합은 "다양한 의견은 민주적 정치의 모습"이라며 스스로를 미화하고 있다.

1997년, 2002년 대선 당시 야당은 보수의 무능과 부패, 성장지상주의와 엘리트주의를 타도 대상으로 삼았고, 결국 승리했다. 보수에 대한 '안티테제'(반정립: 反定立)만으로도 당시엔 집권할 수 있었다. 심지어 계몽주의적이고 선악 이분법적인 논리도 먹혀들었다.

10여년이 지나고 시대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새정치연합의 가치와 전략은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진보의 가장 큰 문제는 사회에 던질 메시지가 없다는 것"이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14년 초가을, 새정치연합에겐 여당에 대한 단순한 '안티테제'를 넘어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자신들만의 '진테제'(합정립: 合定立)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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