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만 루저?"…'키 성형'까지 권하는 사회

머니투데이 이원광 기자 2014.09.03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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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성형' 권하는 병원, 성장 호르몬 시술 '남용' 논란

서울 강남구 압구정 일대에 밀집한 병원과 클리닉(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 사진=머니투데이 류승희 기자서울 강남구 압구정 일대에 밀집한 병원과 클리닉(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 사진=머니투데이 류승희 기자


# 주부 정모씨(33)는 딸 이모양(12)과 함께 병원을 찾은 뒤 고민에 빠졌다. '성장판 검사' 결과 이양의 기대 신장이 151cm로 나타난 것. 이양의 작은 키를 우려한 정씨는 성장호르몬 시술을 진행했다.

병원으로부터 "성조숙증이 우려되니 초경을 지연하는 시술도 병행하자"는 권유까지 받았다. 초경이 시작되면 성장판이 닫힐 가능성이 높기 때문. 정씨는 "호르몬 시술이 부작용이 있다는 얘긴 들었지만 장차 딸의 사회생활을 생각하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최근 아동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성장호르몬 시술, 일명 '키 성형'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무분별한 호르몬 시술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만큼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지나친 외모지상주의는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비급여 항목 '키 성형', 난립하는 시술 의원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일명 '키 크는 주사'에 쓰이는 호르몬제 소마트로핀의 청구 건수는 2011년 1만4166건에서 2012년 1만8658건, 지난해 2만2187건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성장호르몬 주사 부작용 신고 현황 역시 다양했다. 식약처에 따르면 2011년부터 올해 지난 6월까지 신고된 부작용으로는 주사부위통증이 28건으로 가장 많았고, 두통, 발진, 두드러기, 가려움증 등 순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일반의들이 무분별하게 성장 호르몬 시술에 나서면서 '돈을 벌기 위해' 키 크는 주사를 놓는 병원이 난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장 주사는 질환 치료가 아닌 비급여 항목에 해당해 의료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


채현욱 강남세브란스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전문의 제도가 사실상 유명무실하기 때문에 경제성이 있다면 키 크는 주사를 놓는 병원이 무분별하게 생기는 것"이라며 "성장 주사가 꼭 필요한 경우에만 의학적 판단 하에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반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전문의 자격증은 의사 면허가 있는 사람 가운데 잘하는 사람, 전문화된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라며 "비전문의가 한다고 해서 사고가 났다는 객관적인 증거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 '키 성형'까지 권하는 사회…"

전문가들은 유행처럼 번지는 성장주사의 배경에는 '키가 곧 스펙'이라는 외모지상주의가 있다고 분석했다. 어린 아이들이 '키 성형'에 노출되며 외모가 최고의 가치라는 그릇된 시각을 심어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성형수술이 취업에 도움이 되는 오늘날 키 성형 역시 키가 과도하게 작은 개인으로 보면 합리적인 선택으로 볼 수는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와 같은 집단적인 현상은 '성형수술 세계 1위'라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황미구 심리전문센터 헬로스마일 원장은 "어린 시절부터 성장 주사를 맞으면 키나 외모를 기준으로 남들을 비교하게 되고, 스스로를 평가할 때도 다른 내적 가치보다 외적인 부분을 우선시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키나 외모가 중요하지만 삶의 부가적인 요소이며, 성실함이나 책임감 등 우선하는 가치로 남들과 함께 지속가능한 인간관계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아이에게 충분히 설명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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