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1등' 한국최초 학습지 팔아 800억 떼돈 벌었지만 …

머니투데이 최중혁 정봄(대학경제) 기자 2014.09.03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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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현대직업전문학교 김남경 이사장 인터뷰

/사진=조영선 기자/사진=조영선 기자


"한국경제가 세월호를 타고 인천항을 떠나가는 모습 같아요. 그만큼 심각합니다."

직업교육의 현 주소와 과제에 대해 물으려고 했지만, 김남경 서울현대직업전문학교 이사장(58)은 대뜸 경제 얘기부터 꺼냈다.

"소득 2만불 시대가 10년 동안 이어지고 있어요. 국민 실질 가처분소득은 오히려 감소했습니다. 대기업 의존형 경제가 나라를 망치고 있어요. 삼성이 지금 베트남에 종업원 10만명 규모의 조립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LG는 5만명 규모구요. 이게 금년 말 완공됩니다. 15만명의 후방 고용효과는 150만명은 족히 될 겁니다. 하청업체, 협력업체들이 베트남으로 따라가지 않을 수가 없어요. 지금 안산 공단 부지 가격이 폭락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서 직업전문학교 졸업생들이 취업이 잘 안 된다는 얘기를 하려나 보다 짐작하는 순간, 또 뜻밖의 얘기가 들려왔다.

"노키아가 무너지는데 3년이 채 안 걸렸어요. 능력 있는 정부라면 '삼성 없는 대한민국'을 대비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관료들이 무능해요. 국영수 잘한 사람들만 모여 있지요. 청소년기는 사회문제, 이성, 인생에 눈을 뜨는 시기에요. 이 때 제대로 방황을 해야 가치관이 적립되고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 엘리트 관료들은 '공부만 잘한' 이들이 대부분이에요. 이들은 자신들이 가장 똑똑한 집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대 의견을 얘기하면 적으로 간주하지요."



경제가 위기이니 대비를 해야 하는데 진정한 인재들이 없어서 큰 문제라는 얘기였다. 필부 수준의 얘기가 아니었다.

"국영수 점수로 인재를 구분하는 기준이 바뀌어야 합니다. 대한민국 청년들이 유능합니다. 적어도 요리·음식, 아트, 미용, 패션, IT 이런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나올 수 있어요. 이런 민족이 없습니다. 그런데 교육은 아직도 '국영수'예요. 진정한 인재를 키우려면 개개인이 갖고 있는 자질과 특성을 최대한 발휘하게 만들어줘야 합니다. 다양한 가치관, 다양한 문화, 다양한 개성을 인정해주는 창의적 교육으로 가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미래가 없어요."

김 이사장이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아니라고 했다. 한 때는 본인도 '엘리트 교육' 신봉자였다고.


"제가 대입학습지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만든 사람입니다. 중앙교육입시연구원이라고 그 때 돈을 정말 많이 벌었지요. 명문대를 많이 보냈거든요. 학습지 시장에서 최고가 될 수 있었던 게 제가 꼴찌에서 1등을 해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부산중앙중학교 2학년 학기말 고사에서 588명 중 587등을 했어요. 육상 운동선수였는데 그만두고 중3부터 공부를 시작해서 정말 독하게 했어요. 그래서 고2 월례고사에서 전교 1등을 했습니다. 이 노하우를 살린 게 고3 대상 학습지였어요."

김 이사장은 교육사업에서 번 돈으로 섬유, 의류, 기계, 정수기 등 사세를 확장시켰다. 돈 버는 게 제일 쉽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고. 1980년대 말 PC가 보급될 때 '전산을 모르고서는 그 어떤 사업도 할 수 없겠구나' 싶어 전산학교를 만들었다.(계열사 직원들에게 전산을 가르치려는 목적에서 만든 이 학교가 현재의 서울현대직업전문학교의 모태가 된다.) 그리고 1990년대 초 정치에 뛰어들었다. 회사는 전문경영인들에게 맡겼다.

"정치에 한눈 판 사이에 외환위기(IMF)가 닥쳤어요. 당시에 제가 운영하고 있던 회사가 10개였는데 자산이 800억원 정도 됐어요. 그런데 전부 다 망한 겁니다. 그 때는 인생을 마감할까 생각까지 했어요. 제 인생에 가장 참혹한 시기였습니다. 그래도 신용불량자는 안됐어요. 빚을 다 갚았습니다. 제가 넉넉할 때 형편이 딱한 분들에게 무이자로 돈을 많이 빌려줬는데 그 분들이 저를 도와주더군요."

김 이사장은 IMF를 겪으면서 인생관, 인재관이 바뀌었다고 했다.

"우리나라 잘 나가는 기업들 외국자본이 다 가져갔지요. 검은머리 외국인들 중에 매국노들이 많습디다. 국영수 잘 하는 엘리트 관료들을 믿었는데 똑똑하기만 했지 인성이 없더군요. 자기 먹을 것만 찾아다니고. 후손들이 잘 살고, 세계적으로 행복한 국가를 만들려면 진정한 엘리트가 필요합니다. 그 뜻을 저는 현대직업전문학교를 통해 펼치고 있습니다."

1990년 설립된 서울현대직업전문학교는 서울 2호선 당산역 인근에 밀집해 있다. 관광산업관, 디자인아트관, 정보산업관, 외식산업부, 벤처창업관, 식문화세계화관 등 건물만 10여개에 달한다. 외식산업, 웹디자인, 프로그래밍, 건축·기계, 세무회계, 패션미용예술 등의 분야에서 첨단 시설을 갖추고 실용 중심의 직업교육을 실시, 의지를 가진 학생은 거의 전원 취업을 시키고 있다. 노동부 주관 훈련기관 및 과정평가에서 평가제도 실시 이래 11년 연속 A등급을 받을 정도로 교육과정이 탄탄하다. 억대 연봉을 받는 젊은 쉐프 에드워드 권을 교수로 영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에드워드 권이 해외 일류호텔에서 요리로 30대에 연봉 6억원을 받았습니다. 대한민국 요리사가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지요. 그래서 요리학부장에게 무조건 모시고 오라고 했습니다. 제가 만나서 '당신 만나는 게 대통령 만나는 것보다 더 기쁘다'고 얘기했어요. 요리를 가르쳐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해외취업, 세계 1등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 교육이 확 바뀌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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