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경상흑자, 마냥 달가워할 수 없는 이유

머니투데이 권다희 기자 2014.08.28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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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개월 연속 경상흑자...내수부진형 경상흑자 논란 '왜'

우리나라 경상수지가 29개월 연속 흑자를 이어갔지만 최근의 흑자행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장기간의 경상흑자가 수출 증가보단 민간소비와 설비투자 등 내수부문의 부진으로 발생해 우리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어서다.

◇경상흑자 29개월...수출 잘 돼서 보다 내수 약해서?



2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상흑자는 7월 79억1000만 달러로 29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29개월은 지난 1980년대 후반 38개월(1986년 6월~1989년 7월) 이후 최장기다. 7월까지 누적 흑자액은 471억 달러로, 이변이 없다면 올해 경상수지 흑자는 사상 최대였던 지난해 799억 달러를 뛰어 넘을 전망이다.

늘어나는 경상흑자, 마냥 달가워할 수 없는 이유


경상수지가 흑자라는 건 상품이나 서비스를 팔아 우리나라 거주자(내국인이나 1년 이상 국내에 거주한 외국인)가 번 돈이 쓴 돈보다 더 많다는 의미다. 번 돈이 많아서 흑자가 늘어난 게 아니라 안 써서 남긴 돈이 많다는 게 이른바 최근 '불황형 경상흑자', 또는 '내수부진형 경상흑자' 논쟁의 요지다.



실제로 수입은 올해 들어 소폭 회복되긴 했지만 최근 이례적으로 감소했다. 2012년 0.7% 줄었던 상품수입(한은 집계 기준)은 지난해에도 3.2% 감소했고 올해 7월까지는 전년 동기대비 0.2% 늘어나는 데 그쳤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었던 2009년(-24.9%), 미국 IT 버블이 터졌던 2011년(-11.3%), 아시아 외환위기가 있었던 1997년~1998년(각각 -1.8%, -36.5%)을 제외하고 수입이 감소했던 건 1980년대 중반 이후 처음으로 나타나는 추세다.

최근 유가 등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이 수입 둔화로 이어진 측면이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박성욱 한국 금융연구원 거시국제금융연구실장은 "원자재 가격 안정이 수입 둔화에 절반의 영향을 미쳤다면, 나머지는 내수 부진 때문"이라며 "내수부진에 기인한 경상수지 흑자 부분이 상당히 있다"고 설명했다.


최성근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역시 "기본적으로 소비가 침체되는 등 내수가 살아나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가 경상흑자로 이어지는 형태가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수출의 구조가 달라진다...'수출 성장→내수 회복' 연결고리 약해져

아울러 최근 경상흑자가 오랜 기간 많은 폭으로 늘어난 데에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해외 생산이 증가해 수출 형태가 구조적으로 달라진 점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즉 우리나라 기업의 투자와 생산이 해외에서 이뤄져 내수 성장 속도가 과거보다 둔화됐지만, 해외생산에서 발생한 소득은 우리나라에 귀속되면서 경상수지 흑자가 늘어나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는 최근 중계무역 순 수출이 늘어난 데서도 드러난다. 중계무역이란, 우리나라 기업의 해외 법인이 생산한 물건을 우리나라 기업 본사가 들여와 전 세계에 판매하는 형태의 무역이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베트남 법인이 만든 스마트폰 100을 한국 삼성전자 본사가 글로벌 공급 망을 통해 130에 팔 경우, 이 30만큼이 중계무역 순수출로 잡힌다. 중계무역 순 수출은 2009년까진 연간 20억 달러에 불과했지만, 2009년 50억 달러로 늘어난 뒤 2012년 100억 달러, 작년 130억 달러로 급증했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이 전 세계에서 팔리는 등 국내기업들의 세계화가 본격화된 시점과 맞물린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수출증가의 상당부문이 중계무역에서 발생하고 있다"며 "우리나라 경제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전통적인 수출과는 달라 수출 증가가 고용창출이나 내수 확대로는 연결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최성근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도 "우리나라 기업의 해외생산과 해외 투자 증가 등 구조적 변화로 수출 회복이 내수 회복으로 연결되는 고리가 약해졌고 이로 인해 경상흑자가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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