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칼럼]'9시 등교'…우리를 사람으로 본다면

머니투데이 김경빈 경기도 수원, 중학교 3학년.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 2014.08.28 06:32
글자크기
[이슈칼럼]'9시 등교'…우리를 사람으로 본다면


나는 아침 잠이 많아서 학교에 지각을 자주 하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기도 교육청의 '9시 등교' 추진이 반갑다. 아마 내가 딱히 학원 같은 데를 다니지 않고 있기 때문에 오후 시간이 빡빡해질 일도 없어서 더 그렇기도 할 것이다. 사실 다른 학생들도 '9시 등교'만 놓고 보았을 때는 반대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가뜩이나 8시 10분이라는 등교시간 때문에 아침 잠이 부족하고 밥 먹을 새도 없이 학교에 가는데, 등교시간이 늦춰진다는 것을 싫어할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잠도 좀 더 잘 수 있고, 여유롭게 밥을 먹고 등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학생들이 '9시 등교'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하교가 늦춰지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오후가 없는 삶'에서 한 조각 남은 오후 한 때마저 학교에 빼앗겨야 하고, 학원 등도 늦게 끝날 것을 학생들은 우려한다. 그러나 이는 '9시 등교' 자체의 문제가 아니고, 너무 긴 수업시수가 줄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업시수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학습시간은 너무 길고 학습부담이 너무 큰 게 현실이다. 주5일제를 도입하면서 방학이 줄어들었던 모습과 꼭 닮은꼴이다. '9시 등교'로 등교시간에 대해 사회적 가이드라인을 만들듯이, 학습시간 전반에 대한 상한선과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지키도록 할 필요가 있다.



책상 앞에 앉혀 놓으면 공부가 될 것이라 믿고 학원과 학교를 뻉뺑이 돌리는 걸로 모자라 집에서도 못 쉬게 하는 학부모들의 모습은 때론 가학적으로까지 보일 때가 있다. '9시 등교'를 반대한다는 학부모들의 주장도 종종 그런 논리를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수능에 생체리듬을 못 맞춰서 시험 망치면 책임질 거냐', '늦게 가면 애들이 공부를 덜 한다, 어차피 애들은 늦게 잔다' 등의 말을 들어보면 그렇다. 하지만 묻고 싶다. 청소년의 수면권을 위해서라며 게임셧다운제를 도입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정말 우리의 수면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잠도 줄여가며 공부를 시키는 게 우리를 위한 거란 말인가. 아침 시간 30분 내지 1시간을 돌려주는 것에 질색을 하는 모습은 씁쓸할 뿐이다. 그렇게 공부를 시키도록 강요하는 교육현실은 암담하고.

'9시 등교' 정책은 원래 이재정 교육감 등의 공약이 아니었다. 이것이 이슈가 된 것은 학생들이 목소리를 낸 덕이다. 선거 직전 전국 학생 1600여명의 설문조사에서 '9시 등교'는 필요정책 1위로 꼽혔다. 의정부여중 학생들도 교육청 게시판에 요구하는 글을 올렸다. 학생들이 이를 지지한 것은 딱 '9시'를 고집하는 것이라기보단 이른 등교시간을 좀 늦추자는 소망을 담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9시 등교'에는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저 선심성 조치가 아니라, 학생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참여를 보장하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얼마 전, 학교에서 '9시 등교'에 대해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지를 돌리면서 교사들이 웬만하면 반대를 찍으라고 했다. 학생들이 제안해서 나온 정책인데, 그에 대한 설문조사도 반대를 찍으라고 하는 교사들. 정책을 논의한 지 얼마 안 돼 급하게 추진하는 교육청도 마음에 들지 않는 면이 있지만, 이런 교사들과 성적 걱정하며 반대한다는 학부모들은 더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쩐지 이질감을 느낀다. "아, 이들은 정말로 우리를 '사람'이 아닌 '학생', '공부기계'로만 보고 있구나" 하고.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의견도, 행복도 이렇게 쉽게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행 과정에서 말도 많은 제도이지만, 나는 내심 이런 하나하나의 변화들이 우리를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는 변화의 초석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