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이 된 고위직 금융당국자, 보험설계사 교재보며 열공?

머니투데이 박종진 기자 2014.08.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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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출범 1주년 김근익 금융위 금융소비자보호기획단장 "생활밀착형 관행개선, 이제 시스템 만들 때"

김근익 금융위원회 금융소비자보호기획단장/사진제공=금융위원회김근익 금융위원회 금융소비자보호기획단장/사진제공=금융위원회


"정말 민원 자료를 있는 그대로 다 달라고요?" "원본 데이터부터 살펴보려 합니다. 그냥 다 주세요" 2013년8월 출범한 금융위원회 금융소비자보호기획단 관료들은 직전 3년간 각 금융협회와 금융감독원 등에 접수된 민원을 그렇게 전수 조사했다. 무려 70만 건이 넘었다. 처음 자료를 받았을 때는 파일을 여는 데만 30분이 넘게 걸렸다.

밑바닥부터 작업을 시작한지 1년을 맞았다. 김근익 금융소비자보호기획단장은 "시쳇말로 '맨땅에 헤딩’이었다'"며 "정부 내에 금융소비자보호 과제를 발굴해 개선방안까지 만드는 상설조직으로서는 기획단이 사실상 처음이라 정해진 체계가 없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산더미 같은 민원 중에 의미 있는 관행 개선 과제를 찾는 게 어렵다. 김 단장은 "쉬워 보이지만 구석구석 박혀 있는 손톱 밑 가시를 발견하는 시스템 자체가 없었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직하게 일하면서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일단 금융관행 중 개선이 필요한 과제로 150건을 추려냈다. 이중 37건은 이미 개선을 끝냈다.



증권투자에서 신용거래를 할 때 담보를 설정토록 하고 있는데도 굳이 계좌설정보증금 100만원을 받던 규정을 폐지(2015년 시행)했다. 소비자가 금융회사 점포를 방문하지 않고도 홈페이지에서 부채증명서, 잔고증명서 등 각종 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는 서비스도 4분기부터 실시한다.

역시 은행 영업점 방문 없이 가계 신용대출을 전화 한통으로 연장할 수 있는 방안(4분기), 인터넷으로 자기앞수표 도난 분실 신고할 수 있는 서비스(2015년) 등도 모두 기획단의 작품이다. 사소해보이지만 소비자의 돈과 시간을 바로 절약해주는 생활밀착형 개선방안들이다.

책장도 달랐다. 법령이나 규정집이 잔뜩 꽂혀 있어야할 자리에는 보험설계사나 은행 말단 직원들이 승진시험을 볼 때 공부하는 실무 책자가 가득했다. 김 단장은 "실제 업무를 알아야 관행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정책을 주무르며 폼을 내는 자리는 아니다. 김 단장은 "모든 정책은 양면성이 있어 비난도 감수해야하고 고민도 많을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기획단은 오직 소비자만 생각하면 되니까 또 다른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목표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김 단장은 "그동안은 몸으로 뛰었다면, 이제는 소비자의 목소리를 신속히 파악해 정리하고 과제를 도출하는 시스템을 고민해야한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1991년 당시 동력자원부(산업통상자원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으며 2000년 금융감독위원회 기업구조조정팀에 합류하면서 금융관료의 길을 걸어왔다. 금융구조개선과장, 은행과장, 금융정보분석원(FIU) 기획행정실장 등을 두루 거쳤으며 보이스피싱법(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을 만든 주역이기도 하다.

김 단장은 의리파로서 정의감이 강해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을 위해 누구보다 발 벗고 나서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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