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연기된 규제개혁 장관회의

머니투데이 세종=정혁수 기자 2014.08.2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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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정말 알고 싶어요. 갑자기 연기된 이유가 뭡니까. (대통령의) 뜻을 알아야 어떻게든 해 볼텐데 참 답답하네요"

요즘 정부 세종청사 복도에서 만나는 경제부처 공무원들에게서 듣는 소리다. 무표정한 얼굴에, 목소리에는 피곤함이 역력하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살리기 정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핵심부처(국무총리실,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의 모습이다.

[광화문]연기된 규제개혁 장관회의


20일로 예정됐던 대통령 주재 제2차 규제개혁장관회의가 돌연 연기되면서 공무원들 사이에 이른바 '멘붕'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규제개혁이 주요 국정 아젠다가 되면서 맨 앞에서 실무작업을 벌여오던 부처 관계자들은 갑작스러운 청와대의 결정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새로 고쳐오라'고 하든지, 또는 '이런 내용은 어떤 식으로 바꾸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명확히 지시해주는게 낫지, 선문답 하듯 하면 깊은 속을 어떻게 헤아리란 말이냐" 이게 피곤함의 요체다.
하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규제개혁의 실상에 대해 국민들이 느끼는 '피로감'은 공무원들의 피곤함을 넘어선다.

지난 3월20일 제1차 규제개혁장관회의로 돌아가 보자. 당시 회의에서 각 부처 장관과 기업인, 학계 관계자 및 자영업자 등 160여명은 장장 7시간 동안 뜨거운 토론을 벌였다. 말 그대로 '끝장토론' 이었다.



"식품접객업자 준수사항을 보면 뷔페 영업자는 영업 신고 행정관청의 관할 구역 5㎞ 이내에 있는 빵집에서 당일 제조한 빵을 사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한 상황에서 거리 제한은 무의미 하다"(제갈창균 한국외식업중앙회 회장)

처음 열리는 타운홀(town-hall) 미팅 형식의 토론회이다 보니, 해당 기관장이 즉석에서 '모범답안'을 제출하기도 했지만 장관이 오히려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우리 부에서 하는 관광·콘텐츠·게임은 다 규제와 척결 대상이라 일하기가 굉장히 힘들다. 저희도 정말 미치겠다. 우리 사회의 인식을 바꾸는 일부터 시작해 각 부처도 연관된 규제를 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유진룡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박 대통령의 작심 발언도 쏟아졌다. '시대 현실에 안맞는 규제로 청년 일자리를 막고 있는 것은 거의 죄악이라고 본다' '국민이 모르면 없는 정책이나 같다' '물건 빼앗는 것만 도둑질이 아니라 일자리를 규제로 빼앗는 것도 도둑질'….

당시 토론회 현장에 참석한 이는 물론, 이를 TV로 시청한 국민들의 머리 속에는 아마 그동안 기업들의 활동에 걸림돌이 돼 온 각양각색의 규제들이 곧 사라질 것이라는 희망이 강하게 자리 잡았을 지도 모른다. 박 대통령의 목소리에는 그만큼 강한 의지가 실려 있었다.

제2차 규제장관회의가 준비된 건 이같은 열기를 이어가기 위해서였다. 지난 5개월간 대통령의 규제개혁 철폐 의지와 그 결과물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자리였다. 헌데 청와대가 스스로 '밥상'을 뒤로 물렸다. 정부 부처의 성과물이 기대치에 한참 부족했기 때문이다.

정부부처의 기존 규제 감축률을 보면, 전체 17개 부처중 15개부처가 30% 미만에 머물렀다. 규제 건수는 오히려 1만5300여건으로 1년 전보다 270여건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로서도 국민들 앞에 '끝장토론'을 하겠다고 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규제개혁의 '소리'는 높았는데, 이를 실행해야 할 부처의 '의지'는 빈약했다는 걸 수치는 보여주고 있다. 시늉만으로는 국민 앞에 제대로 된 성과를 보여줄 수 없다.

명량해전을 하루 앞두고 이순신 장군은 장병들에게 온 힘을 다해 싸울 것을 요구하며 '必死卽生 必生卽死(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를 강조했다. 박근혜 정부의 규제개혁 전쟁에 나서는 공무원들에게도 이 말은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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