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노벨상 수상자의 경고 "배당은 환상"

머니투데이 미래연구소 강상규 소장 2014.08.03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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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재무학]<68>근거없는 '배당 구원론' 외치는 증권사

편집자주 행동재무학(Behavioral Finance)은 시장 참여자들의 비이성적 행태를 잘 파악하면 소위 알파(alpha)라 불리는 초과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림=임종철 디자이너/그림=임종철 디자이너


때는 1960년대 초반. 미국의 증권가는 고(高)배당이 주가에 유리한지 반대로 저(低)배당이 유리한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한쪽에서는 "배당성향이 높은 기업의 주가는 당연히 밸류에이션이 높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반해, 다른 한쪽에선 "말도 안되는 소리, 배당을 많이 하면 내부유보가 적어 기업은 투자를 위해서 비싼 외부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고 반론을 펼치고 있었다.

기업의 경영자에게도 배당정책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주가 성적이 경영자의 능력을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로 사용되는 만큼 경영자는 배당정책을 건드려서 주가를 '조작(manipulate)'할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학계에서도 수년째 여러 실증 연구 논문들을 발표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딱히 컨센서스를 도출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때 재무학계의 떠오르는 별인 머튼 밀러(Merton Miller)와 프랑코 모디글리아니(Franco Modigliani) 교수는 1961년 배당이 기업가치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그 유명한 배당 무관련 이론(irrelevance of dividend)을 발표한다.



모디글리아니와 밀러 교수는 이미 1958년 부채비율이 기업가치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유명한 부채-자본구조 무관련 이론(irrelevance of debt-equity structure)을 발표하면서 재무학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인물.

재무학을 공부한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MM의 배당 무관련 이론은 모든 게 동일한 상태에서 기업이 배당을 인위적으로 늘린다고 해서 주가가 오르거나 주주의 부(富)가 늘어나지 않는다는 걸 증명했다.

배당 무관련 이론은 주식 투자수익은 배당수익과 자본이득의 합인데 배당수익을 올리면 자본이득이 그만큼 줄어들어 결과적으로 주식 투자수익엔 아무런 변동이 없다는 걸 분명히 보여줬다.


주식 투자수익=배당수익+자본이득

따라서 기업이 배당을 가령 1000원 만큼 늘리면 주가는 정확히 1000원 만큼 떨어져 주주입장에선 부에 하등의 변동이 생기지 않게 된다. 즉 배당소득 증가는 자본이득 감소와 정확히 상쇄되고 마는 것이다. 즉 기업이 배당을 늘리게 되면 주주 입장에선 왼쪽 주머니의 돈(자본이득)이 오른쪽 주머니(배당소득)로 옮겨 간 것에 불과하게 된다.

머튼과 모디글리아니 교수는 인위적으로 배당을 늘려 주가를 올릴 수 있다는 생각을 '재무적 환상(financial illusion)'이라 불렀다. 그들은 기업가치는 이익창출 능력(earning power)이나 투자정책(investment policy)와 같은 실질적인(real) 요소에 의해 결정될 뿐, 배당과 같은 재무적인 요소를 조절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분명히 일깨워줬다.

배당 무관련 이론이 증권가와 기업 경영자에게 던진 메시지는 강력한 것이었다. "배당을 가지고 주가를 조작할 수 있다는 허튼 생각을 버려라"

MM의 배당 무관련 이론이 발표된 이후 배당정책에 대해선 더 이상 논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개콘의 인기 코너인 '깐죽거리 잔혹사'의 유행어를 빌자면 "배당정책을 빡! 끝!"

모디글리아니와 밀러 교수는 자본구조 이론과 배당 정책, 자산가격결정 모형 등 재무학에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1985년과 1990년에 각각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MM의 배당 무관련 이론이 나온지 5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 증권가에는 배당을 늘이면 주가가 오른다는 얼토당토한 얘기가 나오고 있다. 증권사들은 저마다 배당성향을 올리면 주가가 크게 오를 것이라는 리포트를 연일 쏟아내며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언론들도 가세하여 증권가의 '배당 띄우기' 작업에 동참하고 있다.

"배당(증액)만으로도 코스피 지수는 3000선에 도달할 수 있다(노무라증권)"거나 "배당수익률이 2배 개선되면 밸류에이션(PBR: 주가순자산배율)이 20% 상승한다(현대증권)", "배당성향이 30%로 높아지면 PER(주가수익배수)이 20% 올라간다(대신증권)" 등등 마치 배당이 한국 증시를 구원할 '수퍼 히어로'인양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리포트와 기사를 계속 접하는 주식 투자자들은 이러한 주장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세뇌당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주립대학에서 5년 넘게 재무학을 강의했던 필자로서는 어안이 벙벙해지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재무학 연구 어디를 찾아봐도 지금 한국 증권가에서 말하는 배당 구원론을 입증하는 실증 결과를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높은 배당소득 세율 때문에 배당이 자본이득에 비해 불리하다는 주장이 주류이다.

'도대체 이 얘기는 어디서 나온 걸까?' '배당이 주가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MM의 배당 무관련 이론은 증권사 애널리스트라면 누구나 다 알 텐데, 왜 이런 근거없는 리포트로 여론을 호도하는 걸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재무학계의 두 거장은 분명히 말한다. "배당으로 가지고 주가를 조작(manipulate)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재무적 환상(financial illusion)일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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