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1300조' 일본 공적연금 "주식·해외채권 공격 투자"

머니투데이 도쿄(일본)=심재현 기자 2014.07.31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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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금·국부펀드 600조시대 선진국에서 배운다] <3-1>세계 최대 규모 '사무라이', 유례없는 자산배분 조정…아베노믹스 지원 사격

GPIF가 위치한 일본 도쿄 건물. 가운데 하얀 빌딩(17층)의 2층에 GPIF가 입주해 있다. /사진=심재현 기자.GPIF가 위치한 일본 도쿄 건물. 가운데 하얀 빌딩(17층)의 2층에 GPIF가 입주해 있다. /사진=심재현 기자.


일본 도쿄시 도라노몬역. 두사람이 나란히 걷기 빠듯한 좁은 계단을 올라 지상으로 나오면 일본 재무성, 외무성 등 19세기에 건축된 고풍스러운 정부 부처 건물과 대기업의 현대식 빌딩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우리로 치면 서울 세종로나 세종시 정부청사 거리일 이 곳에 세계 최대 공적연금펀드인 GPIF(연금적립금관리운용독립행정법인·Government Pension Investment Fund)가 있다.

지난 6월 찾은 GPIF 사무실은 운용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소박했다. 지하 1층, 지상 17층의 빌딩에서 GPIF가 사용하는 공간은 2층 한 개뿐. 빌딩 외관에서도 GPIF의 존재를 알 수 있는 간판이나 표식을 찾을 수 없었다. 빌딩 로비의 안내판에 다른 입주사와 다를 바 없이 간단한 안내가 붙은 게 전부였다. 2층 사무실 출입구는 한창 점심시간인데도 드나드는 사람이 많지 않아 한적했다. GPIF의 직원은 80명이 채 안 된다.



겉으로 보기엔 평온하지만 GPIF는 올 들어 유례없는 변화를 겪고 있다. 공적연금펀드의 핵심인 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자산배분 조정 작업이 한창이다. 현지에서 만난 요네자와 야스히로 GPIF 운용위원장은 "유례없는 변혁의 시기"라고 말했다.

2001년 독립행정법인으로 독립한 GPIF는 128조엔(약 1300조원)을 운용하는 세계 최대의 기관투자자다. 운용자금이 한국의 GDP(국내총생산)와 맞먹는다. GPIF의 자산배분 조정 움직임이 일본은 물론,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도 실시간으로 전파를 타는 이유가 여기 있다. 막대한 자금력을 보유한 GPIF의 자산배분 조정 결과는 곧 글로벌 투자 트렌드 변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산 1300조' 일본 공적연금 "주식·해외채권 공격 투자"
◇ 채권에서 주식으로 자산배분 변화 = GPIF가 지난달 초 발표한 새로운 자산운용계획 잠정안에 따르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던 일본 자국 채권투자 비중이 60%에서 40%로 줄어든다. 주식투자 비중은 24%에서 34%로, 그 중 국내주식과 해외주식이 각각 17%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해외채권 투자 비중도 11%에서 16%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요네자와 위원장은 "인프라 같은 대체투자도 새로운 자산배분 계획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GPIF는 퇴직자에 대한 안정적인 연금 지급을 최우선 목표로 그동안 해외 인프라스트럭처와 헤지펀드 등 대체투자를 철저하게 금기시해 왔다. 하지만 자산배분 조정 논의가 시작되면서 최근 몇 개월 동안 이미 두드러진 변화를 보였다. 지난 2월 첫 인프라 합작 투자 프로그램을 개시할 것이라고 밝힌 데 이어 내부에도 인프라, 사모펀드, 부동산과 같은 비상장 자산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부서를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운용위원회는 현재 진행하고 있는 최종점검단계를 거쳐 올 가을 최종안을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요네자와 위원장은 "운용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일부 수치는 변경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지 언론은 GPIF의 자산배분 조정 시기를 이르면 오는 9월로 예상하고 있다.

GPIF의 자산배분이 잠정안대로 이행되면 전체 자산배분 전략이 한국의 국민연금보다 공격적으로 수정되게 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5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현재 30.1%인 국민연금의 주식 비중을 앞으로 5년 동안 35% 이상으로, 채권 비중은 60.4%에서 55% 미만으로 조정하기로 의결했다. GPIF의 운용자산이 국민연금보다 3배 이상 많은 점을 감안하면 변화의 폭은 더 크다.

건물 로비에 있는 안내판. 2층에 '연금적립금관리운용독립행정법인'(GPIF)이 있다. /사진=심재현 기자.건물 로비에 있는 안내판. 2층에 '연금적립금관리운용독립행정법인'(GPIF)이 있다. /사진=심재현 기자.
◇ 아베노믹스 영향, 수익률 제고로 전환 = GPIF 변화의 주요 배경에는 '아베노믹스'가 자리 잡고 있다. BOJ(일본은행)에 이어 GPIF가 아베노믹스의 첨병으로 나서는 분위기다. 아베노믹스의 기본 방침인 '세가지 화살' 중 마지막인 성장전략 추진에 공적연금 재원을 활용하겠다는 게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복안이다.

세가지 화살이란 '무제한 화폐 공급(양적 완화)→경기 부양(재정지출 확대)→성장 전략 추진(구조 개혁)'을 말한다. 일본 주식투자 비중 확대는 아베노믹스의 첫번째 화살인 양적완화와 비슷한 효과를 낸다. 양적완화를 통해 엔저를 유도함으로써 기업실적이 개선되고 주가가 뛰었다.

최근 수익률 저하 우려도 GPIF 개혁의 명분이다. GPIF는 지난해 주식자산 가격이 오르면서 운용자산이 늘긴 했지만 2010년부터 이미 연금지급 규모 증가에 따라 운용자산이 줄어드는 단계에 접어든 상태다. 한마디로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지는 시기에 들어선 만큼 수익률 제고가 시급하다는 얘기다.

요네자와 위원장은 "중장기 지급률 목표가 '임금상승률+1.7%포인트'인데 일본 국채 10년물의 금리는 15개월째 0.6%를 밑도는 상황"이라며 "국내채권 투자비중이 60%에 달하는 자산배분으로는 더 이상 감당이 안 된다"고 말했다. GPIF가 단기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한 도구로 쓰여서는 안 된다는 일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공격적인 자산배분 조정론이 먹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 국민연금에 시사하는 점도 크다. GPIF는 2013 회계연도(지난해 4월~올해 3월) 수익률 9.5%를 기록했다. 국민연금의 지난해 수익률(4.2%)의 2배가 넘는다. 글로벌 국부펀드 중 캐나다연금펀드의 경우 2013 회계연도 수익률이 16.5%에 달했다.

요네자와 위원장은 "몇몇 국부펀드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상황이 낫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판단"이라며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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