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에너지공기업 신규 해외투자때 민간이 타당성 평가

머니투데이 세종=유영호 기자 2014.07.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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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화→부실화' 악순환 끊자 기능조정… 한전 해외사업 참여 제한은 '논란'

앞으로 에너지공기업들이 새롭게 해외자원개발 사업을 추진할 때 민간 전문가 중심으로 구성된 '해외자원개발심의위원회'(가칭, 이하 해심위)에서 사업타당성 등을 평가받게 된다. 기존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대한 통·폐합은 진행하지 않되, 한국전력 (21,250원 ▼100 -0.47%)공사 등 일부 에너지공기업의 신규 해외사업 참여는 제한된다.

29일 정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관계부처와 이해관계자 의견수렴을 거쳐 이 같은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해외자원개발 기능조정안'을 마련했다. 기재부는 조만간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고 기능조정안을 심의·의결, 최종적으로 확정할 계획이다.



정부가 마련한 해외자원개발 기능조정안은 '내실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에너지·자원 소비량의 97%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해외자원개발은 '돈 먹는 하마'라는 비난에도 멈출 수 없는 과제다. 앞선 이명박정부에서 과도한 정책드라이브로 '대형화→부실화'로 이어진 악순환이 이뤄져 왔는데, 이걸 끊어내 정상화하자는 정부의 전략이 담겨있다.

정부가 해외자원개발 사업의 내실화를 위해 새롭게 도입하는 게 해심위다. 석유공사, 가스공사 등 각 에너지공기업별로 이뤄졌던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대해 국가 차원의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반영됐다.



신설되는 해심위에는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를 비롯해 산·학·연 전문가들이 모두 참여한다. 해외자원개발 사업의 타당성 검토와 사후평가 등 전반적 사항을 모두 담당한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사항을 조율하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해외자원개발 분야에 한해 축소해 놓은 모양새다.

정부는 해심위 신설로 에너지공기업들의 마구잡이식 해외자원개발 사업의 상당 부분을 구조조정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한 프로젝트를 두고 우리 공기업끼리 출혈 경쟁하는 웃지 못 할 일도 발생해왔다"며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대해 강도 높은 사전 및 사후 평가를 통해 부실덩어리를 제거해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정부는 기존 사업에 대한 통·폐합은 진행하지 않을 계획이다. 현재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 일괄적인 자산매각이나 에너지공기업간 자산교환을 밀어붙일 경우 또 다른 부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부실자산에 한해 중·장기 사업계획에 따라 자산매각을 권고할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기능조정과 관련해서 가스공사가 진행하는 해외 사업 중 천연가스 국내 도입과 관련 없는 사업은 석유공사로 통·폐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가스공사의 해외 사업 대부분이 석유공사와 보완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일괄적 조정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실제 가스공사의 이라크 아카스·만수리아·주바이르 광구개발 사업 등은 석유공사의 입찰권이 제한된 상황에서 가스공사가 참여해 수주를 성공했던 사업이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 내부에서 제살깍아먹기식 경쟁만 없다면 서로 취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투 톱'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해외발전플랜트 분야의 기능조정을 놓고는 뜨거운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는 한국전력 (21,250원 ▼100 -0.47%)의 신규 해외사업 참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기로 했다. 한전이 송·배전 및 전기판매사업자인 만큼 해외발전플랜트 건설·운영 등 주요 해외사업과는 연관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국내서 실제 사업을 진행 중인 남동·남부·동서·서부·중부발전 등 발전자회사들을 중심으로 추진하는 게 맞는다는 게 정부의 논리다.

하지만 이런 정부의 논리는 세계 발전플랜트 시장동향과 역행하고 있다는 게 업계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해외발전플랜트 사업의 핵심역량이 발전소를 건설하고 운전·보수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규모, 브랜드 파워, 프로젝트파이낸싱 조달능력 등인만큼 오히려 한전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가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 사업과 같이 국가적 역량이 집중되는 대규모 사업에 한해 한전의 해외사업 참여를 허용하기로 한 것 자체가 한전의 탁월한 역량을 인정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고 있다.

민간 경제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은 "세계 발전플랜트 시장은 사실상 프랑스, 일본 등 세계 4대 전력그룹사가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세계 5위 규모의 전력사인 한전을 배재하기보다는 컨소시엄 구성 등 보다 효과적인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전문가들은 기능조정을 통해 지나치게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것도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영기 중앙대 명예교수는 "해외자원개발은 글로벌 메이저기업들도 성공률이 20%에 불과하다"며 "'고위험-고수익' 구조의 자원개발 구조를 고려할 때 효율성 잣대만을 강조하면 오히려 실패할 가능성이 적은 사업만 참여하는 '고비용-저효율'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에 빠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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