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여객선 참사 100일을 하루 앞둔 23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 실종자들과 희생자를 기리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뉴스1
세월호 참사 100일째를 하루 앞둔 23일, 진도는 여전했다. 텅 빈 체육관 매트 위엔 여전히 몇몇 가족들의 묵은 짐과 주인 잃은 이불이 쌓여있다. 한산해진 팽목항 조립식 주택은 세 가족이 지키고 있다. 방파제 위 실종자 10명의 이름이 적힌 노란 리본은 여전히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목탁소리와 찬송가 소리마저 그대로다.
◇참사 100일째 가족 찾으러 바지선에
세월호 여객선 참사 100일을 하루 앞둔 23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해경선이 사고현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스1
몸이 약해 수시로 링거에 의지하는 허다윤양(17) 어머니는 주변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이날 아침 결연한 마음으로 바지선에 처음 올랐다. 한 실종자 어머니는 "걱정돼 전화해보니 벌써 울먹이더라"라며 "나도 처음엔 바지에 타자마자부터 울었다. 그때만 해도 사고지점 근처에 어선과 해경 경비정 구조정이 정말 많았는데 가라앉는 걸 가만 보고만 있었다고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졌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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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갔다 나오면 감정적으로 힘들어. 바지에 뭐 하러 가? 애 데리러 가는 거 아니야. 근데 그냥 나와 봐. 힘들지." 다윤양 아버지가 거들었다. 이곳 가족들은 이걸 100일째 반복하고 있다.
가족들 사이에서는 '멀미가 나야' 아이가 나온다는 얘기가 돈다. 한 유가족은 "바지선도 부족하다. 난 헬기타고 멀미하니 딸래미가 '오늘 나갈 건데 왜 왔냐"며 나왔다"라고 말했다. 안중근군(17) 아버지도 사고 54일째 날 바지선에서 그런 '신호'를 느끼곤 아들을 찾았다고 했다. 멀미라도 느껴야 찬 바다 속 가족에게 덜 죄스러운 마음이다.
세월호 여객선 참사 100일을 하루 앞둔 23일 전남 진도군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자녀들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스1
100일. 눈물도 말랐다. '슬픔'이란 말로는 이들의 심정을 설명할 수 없다. 충격과 공포, 찰나의 기대와 절망, 분노와 슬픔을 넘어 이제 초조함과 외로움의 감정마저 초월한 실종자 가족들은 차라리 웃으며 이 상황을 견디고 있다.
사고 한 달 째부터 아들이 (실종된 남학생 중) '탑 쓰리(Top-three)'에 들었다고 말하던 남현철군(17) 아버지는 이날도 "다 꺼내고 나 혼자 남으려 한다"고 '농'을 쳤다. 실종자 가족들이 100일간 배운, 거짓말 같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적응 방식이다.
다윤양 아버지도 "다 끄집어내고 난 천천히 올라가려고…"라며 능청맞게 웃었지만 야위어가는 몸과 덥수룩한 수염, 늘어가는 담배는 마음고생을 증명하고 있다. 사고 초반엔 한 달 넘게 입을 열지 않을 만큼 내성적인 그였다. "깨끗하니까 안 나오더라고. 우리 딸이 아빠 지저분한 거 못 보니까 면도기 들고 나올 거 아니야?(웃음)"
양승진 교사(57) 부인은 "남편이 옷을 한 번 더 입겠다길래 '여름인데 냄새 나, 빨아야 돼'라고 말했는데 눈을 뜨니 꿈이었다"며 웃었다.
100일. 충분히 슬퍼한 후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시간이지만, 이들의 마음 속 시계는 고장 난 지 오래다. "100일간 이러고 있을지도 상상을 못했지만 죽은 것도 상상이 안 돼요. 나오지 않았으니까. 어디서 살고 있는 것만 같아. 믿을 사람 누가 있어요. 자기 자식이 죽었다는데, 나오지도 않았는데?"
세월호 여객선 참사 100일을 하루 앞둔 23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 실종자들이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뉴스1
진도는 그대로지만 진도를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졌다. 실종자 가족들은 자신들이 '유족당'이라고까지 불리는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함께 슬퍼하던 국민 대다수는 어느새 '그만 하라 지겹다'고 이들을 비난하고 있다.
"나도 우리 애가 잘못됐다는 게 실감이 안 나는데 당연하죠. 가끔씩 울컥울컥해서 힘든 거지. 나도 지금 실체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닐 거란 생각도 들고 실감도 안 나고. 그런데 일반 국민들이 아직도 이런 이 상황을 얼마나 실감을 하겠어요."
100일이라고 새삼스레 찾아오는 관심도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 급격히 건강이 악화된 현철군 아버지는 "그냥 애만 잘 찾아주면 좋겠다. 할 말이야 많지만 지쳐서 할 수도 없다. 다들 지금 힘들다"고 말했다. 다윤양 아버지는 "찾지도 못했는데 100일이 무슨 의미가 있나"며 "100일이니 49재니 여긴 아예 생각도 안 한다. 애 끄집어내기도 바빠 죽겠는데 그거 생각할 새가 어딨냐"고 한숨지었다.
최근 '나이트록스' 방식을 도입해 잠수시간이 늘고 '영상장치'와 '전자코'까지 총 동원하고 있지만 10명을 단번에 끄집어낼 뾰족한 수는 없단 걸 가족들은 안다. 사실상 '뼈'밖에 찾지 못하리란 것도 알고 있다. 차마 입 밖으로 말하지 못하지만 자칫 유실됐다면 뼈마저 흩어져 추려 갈 수 없단 것도 안다. 가족들은 그래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미 한 달 전쯤 나온 시신에 뼈가 보였어. 수온이 오르면 부패가 더 심해지겠지. 하지만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하는데, 어떡할 거야? 여기 와서 살 수도 없고. 뼈 한 조각이라도 추스려 장사 치르고 좋은 곳에 보내야 하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