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마의사를 밝히고, 덕담이 오가고, 고향이야기로 분위기가 부드러워지자 묵직한 가방을 건넸다. 컨설팅을 통해 들은 '적정가격'은 3억원이었지만, 기왕 쓸 거 확실하게 5억원을 담았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그는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출마 벽보를 붙이기도 전에" 5억이 사라졌다고 했다. 300개에 가까운 자연부락에 1명씩 핵심 운동원을 만들고, 생판 불모지에 조직을 꾸리려니 돈이 돈도 아니었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박상은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6월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 앉아 있다(왼쪽). 60대 재력가 청부살해 사건과 관련해 살인교사 혐의로 구속된 김형식 서울시의회 의원이 3일 오후 서울 강서경찰서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뉴스1
실제로 정치권을 오가는 전형적인 '공천 돈다발'들은 지금도 여기저기서 삐져나온다. 박상은 새누리당 의원의 운전기사가 의원 자동차 뒷좌석에서 3000만원의 돈다발을 들고 나와 불법 정치자금이라며 검찰에 고발했다.
돈이 나온 뒤의 해명과정은 더 가관이다. 이미 세상에 없는 기업인이 차명계좌를 통해 '격려금'으로 줬다는 게 박의원의 설명이다. 설명이 사실이라고 해도 재산공개에서 이를 밝히지 않은 것만으로도 공직자 윤리법이나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것이고, 세금을 탈루한 것이다. 이를 알면서도 그렇게 주장한 것은 그보다 심각한 '범죄행위'를 가리기 위한 것이라는 의심을 갖는 게 상식적인 사람들의 생각이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다운 해명이라도 기대했던 게 민망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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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어물전 망신시키는 '한 마리 꼴뚜기'일 리가 없다. 바로 얼마 전에는 새누리당 유승우의원의 부인이 이천시장 출마를 희망하는 후보자에게 1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국회 주변에서는 "운 나쁘게 걸렸다"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여당만의 문제라고 생각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른바 '386'으로 분류되는 김형식 서울시의원은 사업가 살해를 사주한 혐의로 구속됐다. 수억원의 현금과 향응을 받고 사업가 소유 토지의 용도변경을 위해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현찰이 든 봉투를 만지고 있을 의원들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지만, 국회 안에서 일어나는 모습들도 억장이 무너지긴 마찬가지다.
어렵게 열린 세월호 진상조사 특별위원회에서는 자식을 잃은 부모들 앞에서 국회의원들이 "그렇게 잘 났냐" "나이도 어린 게" 이런 막말들을 주고받다가 기어이 회의장 문을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차라리 국회가 문 닫고 있는 게 보는 사람들 속은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검은돈과 막말이 오가는 '민의의 전당'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의레기(의원 쓰레기)'라는 말을 입에 올리기 시작한다. 국민들이 보내는 치욕적인 경고의 메시지인 셈이다.
물론 정치불신이 어제오늘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입법권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강화된 만큼, 이전과 다른 모습을 의원들에게 기대했던 사람들에겐 연일 들려오는 막장드라마가 주는 실망감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먼저 '~레기' 대열에 합류한 '기레기(기자 쓰레기)' 집단 입장에서 보기에도 딱할 정도다.
아무리 잘 만든 음식이라도 상한 재료 하나만 들어가면 전체가 쓰레기가 된다. 아까워 할 거 없이 건져내고 도려내는 게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