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성찬
몇 번 집어 먹고선 너무 매워 혼났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정확한 순서는 모르지만 불닭 전후로 매운 떡꼬치가 있었다. 매운맛·중간맛·순한맛 등 매운 정도를 대개 3등급으로 나눠 팔았다. 최근엔 매운 음식 타이틀을 'Y'떡볶이가 가져갔다. 회사 여직원들을 보면 일정 주기로 날을 정해 'Y'떡볶이를 먹을 정도다.
단박에 드는 생각은 스트레스 해소 때문이다. 실제로 주변 동료 여직원들에게 물어보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이 들어 자주 먹는다는 대답이 많았다. 다음으로 자꾸 생각나서 찾게 된다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의외로 배가 고파서 먹는다는 말은 없었다. 허기를 채우려고 매운 음식을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음식이 생존을 위해 만족시켜야 할 1차적 욕구 대상에서 벗어난 것일 테다.
대기업 임원 비서로 일하는 한 후배는 어이없는 일을 시킬 때면 'Y'떡볶이가 생각난다고 한다. 거듭 매운 게 당긴다는 여선배는 육아에 지쳤다. 매운 걸 먹으면 화장실에 들락거려야 하는데도 꼭 먹고야 마는 동기 여직원은 연애 사업이 시원찮다. 이들이 매운 음식을 섭취하는 건 배고픔을 해소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보다 정서적 허기를 달래려는 이유가 더 크게 작용한다.
매운 맛은 통각이다. 맛있다고 계속 찾아 먹기에는 너무 고통스럽다. 정서적 허기를 채운다고 하면 으레 달달한 음식을 찾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새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기 깃털을 뽑는다. 소도 도살되기 직전 극도의 불안감에서 자신의 머리를 바닥에 짓이긴다. 사람 역시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기에게 육체적 고통을 줌으로써 심리적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본능적인 욕구가 있는 게 아닐까. 마약 복용혐의로 기소된 프랑스와즈 사강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고 말한 것도 이러한 인간의 본능을 존중하도록 요구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시각 인기 뉴스
/사진=김성찬
프로이트는 죽음의 충동을 설명하면서 어머니의 부재를 재현하는 갓난아기 사례를 든다. 어머니가 없는 불쾌한 경험을 장난감을 감췄다 들춰내는 행위로 치환한 뒤 반복하면서 놀이로 승화한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정말로 심리적 만족감이 달성되는지와는 별개로 자해 욕구의 공통된 특성은 '통각'과 '반복'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녀들이 종류만 다를 뿐 매운 음식을 정기적으로 찾는 건 우연이 아니다.
다른 쪽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그것은 그들이 여성이기 때문이지 아닐까 싶다. 남성들이 불만족스러운 심리상태를 해소하려고 1차적 욕구 대상을 다른 용도로 바꾸는 사례는 다양하다. 진탕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도박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 여성들은 이같은 욕구를 해소하려 해도 사회적 제약 때문에 선택지가 한정적이다. 매운 음식에 열광하는 여성들을 호들갑스럽다고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조만간 동료 여직원들이 매운 찜닭을 먹으러 간단다. 바야흐로 매운 맛 계보에 식단 하나가 추가될 것인가 보다. 이번엔 나도 초대 받았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지도 잘 먹지도 못하지만 따라가 보련다. 마침 스트레스가 임계점에 다다른 시기다. 스트레스가 풀리길 기대해 본다. 그래도 너무 매우면 곤란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