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성폐기물 저장소 2024년 포화 '원전의 시한폭탄'

머니투데이 세종=정진우 기자 2014.06.03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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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자 4·16" - '안전이 복지다' <2부>"안전은 시스템이다">]<5-1>사용후핵연료

사용후핵연료 처리공정사용후핵연료 처리공정


#2011년 3월11일 오후 2시46분 일본 동북부 지방. 비상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인근 해역에서 일본 역대 최고 수준인 규모 9.0의 대지진이 발생, 쓰나미가 몰려온 것이다.

해안가 도시들이 물에 잠기고 인명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후쿠시마 제1원전(후타바군 소재) 전원도 차단됐다. 전원이 중단된 탓에 원자로를 식혀주는 긴급 노심냉각장치의 작동이 멈췄고 다음날 1호기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났다. 이후 2~3호기에서도 수소폭발이 일어났고 방사성물질이 외부로 누출됐다.




이 사고는 전세계 국가의 원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줬다. 환경단체 등을 중심으로 원전이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고 각 나라는 원전 안전성을 위해 각종 대책을 쏟아냈다.

우리나라 역시 내진설계 강화와 지진 대비 설비 구축 등 각종 정책을 수립했다. 지난 3년간 원전안전 대책은 그렇게 마련됐지만 더 시급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바로 '사용후핵연료' 관리시설 건설문제다. 원전 사용 여부는 우리 사회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지만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원전을 단 1기라도 가동하는 이상 피할 수 없는 '과제'여서다.

경주 방사성폐기물장. 원전에서 사용된 옷이나 부품 등 중저준위 폐기물들이 보관된다./사진= 한국원자력환경공단경주 방사성폐기물장. 원전에서 사용된 옷이나 부품 등 중저준위 폐기물들이 보관된다./사진= 한국원자력환경공단
3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국내 23기 원전에 임시저장 중인 사용후핵연료는 올해 1분기말 기준 39만6884다발에 달한다. 매년 새롭게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만도 약 1만3000다발이다.

사용후핵연료란 원자로에서 연료로 사용된 뒤 배출되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말한다. 방사성폐기물은 방사성물질이나 방사성에 오염된 물질을 말하는데 원자력발전소 등에서 사용된 작업복과 장갑, 부품 등 방사능 함유량이 미미한 중·저준위 폐기물과 사용후핵연료와 같은 고준위 폐기물로 구분된다.


중·저준위 폐기물은 경북 경주에 들어선 방사성폐기물장에 모인다. 현재 일부 원전에 보관하던 4000드럼 정도 옮겨졌고 이달 중 착공이 완료되면 앞으로 10만드럼의 폐기물이 이전된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은 앞으로 80만드럼까지 보관토록 3차에 걸쳐 방폐장을 확장할 방침이다.

문제는 2년 후부터 순차적으로 임시저장소가 포화되는 고준위 폐기물이다. 2016년 고리원전을 시작으로 2018년 월성원전, 2019년 영광원전, 2021년 울진원전 등의 순으로 이 임시저장소가 줄줄이 포화상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보관 간격을 줄이는 등 각종 보완책을 동원해도 2024년에는 완전 포화된다.

방사성폐기물 저장소 2024년 포화 '원전의 시한폭탄'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식은 크게 3단계로 구성된다. 사용후핵연료는 강한 방사선과 높은 열을 방출하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임시저장소에서 1~5년간 냉각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 다음 냉각한 사용후핵연료를 물 또는 콘크리트에 넣어 창고 같은 곳에 50년간 보관한다. 이를 2단계인 '중간저장'이라고 한다.

현재 세계 원전 가동 31개국 중 22개국은 이처럼 완전 처분 전까지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관리하는 중간저장시설을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임시저장이 끝난 사용후핵연료를 땅 속 깊이 묻어서 보관하는 '최종처분' 단계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1단계인 임시저장 단계에 머무른다. 하지만 임시저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2단계, 3단계 관리방식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는 "원전에서 사용하고 나온 사용후핵연료는 특수용기에 넣어 원전 내부의 저장수조로 옮겨서 보관한다"며 "임시저장소 용량 확충을 통해 원전별 포화시기를 조금씩 연장할 수는 있지만 임시방편"이라고 지적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86년 이후 무려 9차례에 걸쳐 사용후핵연료 관리시설 건설에 나섰지만 모두 실패했다. 겨우 지난해 10월 공론화위원회만 발족한 상태다.

위원회는 올해 2월 '공론화 실행계획'을 수립, 세부 의제를 정하고 전문가 토론회와 여론조사 등 국민 의견수렴에 나섰다. 지금까지 모두 15차 회의를 열었고 분주히 논의했다. 6월 초 1차례 회의를 열 계획인 위원회는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에 대한 권고안을 올 연말까지 산업부에 제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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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재 위원회에 환경단체는 불참한 상태로 국민들의 제대로 된 의견수렴이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위원회는 당초 위원장 1명을 포함해 인문·사회과학계, 기술공학계, 원전지역, 시민단체 등 분야별 전문가 13명으로 출범했다.

공론화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과연 위원회가 활동 개시 1년여 만인 올해 말까지 국민들이 수용할 만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실제 경주에 중·저준위 방폐장을 건립하는데 28년이 소요됐다. 정부는 1986년부터 중·저준위 방폐장 건설을 추진했지만 충남 안면도, 전남 영광, 전북 부안 등 전국 곳곳에서 갈등이 극에 달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중간저장시설과 최종처분장(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에 대한 오해가 생기면서 갈등이 증폭됐다. 실제 2003년 정부가 부안에 건설하려던 것은 중간저장시설이었지만 주민들은 최종 처분장으로 인식하고 극렬히 반대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원전에 대한 부정적 인식까지 더해져 당장 몇년 후부터 시작될 사용후핵연료 포화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민적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론화위원회가 지금보다 적극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 원전에 대한 무차별적 반감과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진 국민 수용성을 높이는 게 위원회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사용후핵연료 처리는 누구 하나만을 위한 문제가 아니다"라며 "우리나라 에너지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선행조건인데, 국민들의 반감이 심해 앞으로 문제해결 과정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올해 말까지 대안을 내놓기로 했는데, 이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돼야 한다"며 "위원회가 좀 더 국민들의 의견을 많이 듣고, 합리적인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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