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체인지업]박찬호와 박지성 ‘전설들’의 은퇴 방식

머니투데이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2014.05.24 10:05
글자크기
지난 2006년 12월14일 미(美) 보스턴 레드삭스의 홈구장, 팬웨이파크에서 일본인 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의 입단식이 열렸다.

박찬호와 함께 메이저리그에서 ‘아시안 투수 시대’를 개척한 노모의 일본 야구 출신 투수 계보를 이은 차세대 주자가 마쓰자카이다.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구단 보스턴은 일본인 투수 마쓰자카에게 포스팅 입찰액 5,111만달러, 계약금 포함 6년간 연봉 총액 5,200만달러까지 총액 1억311만달러를 투자했다. 현재 환율로 약 1057억원(1달러 1024원 환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당시 보스턴의 테오 엡스타인 단장은 “오늘 우리는 ‘국보(國寶)’와의 계약을 발표한다.”고 밝혔다. 물론 일본의 국보를 말하는 것으로 마쓰자카를 ‘내셔널 트레저(national treasure)’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마쓰자카는 메이저리그에서 일본의 ‘국보’급 투수의 위용을 길게 보여주지 못하고 오랜 기간 부상과 재활을 거쳐 30대 중반인 34세의 나이에 올시즌 뉴욕 메츠의 릴리프 투수로 메이저리그에 돌아왔다.

테오 엡스타인 단장도 2011시즌 후 시카고 컵스로 자리를 옮겼다. 엡스타인 단장은 1973년 생으로 박찬호와 동갑이다. 선수 보다는 구단 프런트의 정년이 훨씬 길다.

글쓴이는 재기에 나선 마쓰자카의 도전을 지켜보며 과연 언제 그가 은퇴를 선언할지 궁금해졌다. 일본 야구의 ‘국보’ 명예를 메이저리그에서 회복하고 유니폼을 벗을 수 있을 것인가?


한국축구의 영웅 박지성(33·PSV 에인트호벤)이 지난 14일 오전 경기도 수원 박지성축구센터에서 은퇴를 발표했다. /사진=뉴스1한국축구의 영웅 박지성(33·PSV 에인트호벤)이 지난 14일 오전 경기도 수원 박지성축구센터에서 은퇴를 발표했다. /사진=뉴스1


한국 축구의 ‘국보’이자 ‘전설(legend)’로 영원히 남을 박지성이 14일 은퇴와 함께 결혼을 발표했다.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 개막(6월13일)이 불과 한 달 남은 시점에서 이뤄진 박지성의 은퇴 발표여서 팬들은 모두 그가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골을 넣은 뒤 히딩크 감독에게 ‘아이’처럼 달려가 안기던 장면을 떠올리며 안타까움을 더했다.

박지성은 브라질 월드컵 대표로 뽑혀 그냥 벤치에 앉아만 있어도 우리 국가대표팀에 힘을 불어 넣을 수 있는 마력(魔力)을 지닌 선수이다.

‘일간스포츠’의 기사에 의하면 박지성이 소속돼 있던 영국 런던 연고의 퀸즈파크 레인저스(QPR) FC의 토니 페르난데스 구단주는 40억원에 달하는 연봉을 그냥 줄 테니 팀에 있어만 달라고 은퇴를 만류한 바 있다.‘놀아도 좋다’고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글쓴이가 박지성은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에 합류해 벤치를 지키며 후배들을 격려만 해도 한국의 전력 상승 효과가 분명하게 나타날 전설적인 선수라고 주장한 것과 같은 배경일 것이다.

주니치의 태양으로 일본 프로야구를 호령했던 선동렬 KIA 감독은 1999년 11월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 /사진= OSEN주니치의 태양으로 일본 프로야구를 호령했던 선동렬 KIA 감독은 1999년 11월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 /사진= OSEN
이 부분에서는 선동렬 현 KIA 감독의 현역 은퇴 발표를 떠올리게 했다. 일본 프로야구 시절 소속팀, 주니치 드래곤스를 센트럴리그 우승으로 이끈 후인 1999년 11월 선동렬 감독은 은퇴를 선언했다. 모두들 의외였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가 돌연 유니폼을 벗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선동렬 감독은 구단의 우승 축하 여행으로 미국 애너하임과 LA를 방문했을 때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2년 계약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1년만 더 해도 최소 300만달러(약 30억원)를 보장해주고 자녀들의 학업 등 모든 것을 제공하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이후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간 선동렬감독은 고민하다가 결국 은퇴를 단행했다.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자리를 거쳐 메이저리그에 도전한 위대한 투수로 역사에 기록되고 싶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1년 만 더해도 큰 돈을 벌 수 있었지만 자신이 이미 발표한 것을 번복하지 않고 명예롭게 은퇴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일본프로야구에서 한국의 국보 투수 선동렬이 개척한 길은 삼성으로 복귀한 임창용에 이어 현재 한신 타이거스의 오승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히딩크 감독과 함께 PSV 아인트호벤으로 이적하고 마침내 세계 최고의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산소 탱크’로 불리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웨인 루니와 그라운드를 누비던 박지성의 투혼은 이청용, 기성용, 손흥민 등의 계보를 이루며 오는 브라질 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8강 도전의 기대를 부풀리게 하고 있다.

부친 박성종씨에 따르면 박지성은 "90분을 뛸 수 있을 때 물러나고 싶어요. 벤치에 있는 시간이 많아질 때 나오는 것은 물러나는 게 아니라 밀려나는 거예요" 라고 했다.

이 역시 ‘국보’ 투수 선동렬 KIA 감독의 은퇴와 같은 맥락의 결단이었다. 명예로운 자리에서 아름다운 은퇴를 한 선수로 팬들의 기억에 남고 싶다는 꿈을 담았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는 19년간의 야구인생을 마무리 하며 2012년 11월 은퇴를 발표했다. /사진= OSEN'코리안 특급' 박찬호는 19년간의 야구인생을 마무리 하며 2012년 11월 은퇴를 발표했다. /사진= OSEN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41)는 LA 다저스, 텍사스 레인저스, 뉴욕 메츠, 필라델피아 필리스, 뉴욕 양키스 등을 거치며 메이저리그에서 무려 17시즌을 버텼다. 그는 마침내 아시아 투수 출신 메이저리그 최다승인 124승 신기록을 세웠다.

이후 박찬호는 일본 프로야구 1시즌을 거쳐 고향팀 한화 유니폼을 입고 한국프로야구에 데뷔해 1시즌을 치렀다. 그가 보여준 야구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 마이너리그로 떨어지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결코 잃어 버리지 않았던 야구에 대한 열정을 감안할 때 적어도 한국프로야구에서 한 시즌을 더 할 것으로 글쓴이는 예상했다.

당시 한화는 김응룡 전 삼성 사장을 감독으로 영입해 팀 재건에 나선 시점이었는데 박찬호는 2012시즌 후인 11월29일 기자회견을 열어 눈물을 흘리며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박찬호가 떠난 후 한화는 2013시즌 최하위에 처졌고 올 시즌도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선동렬감독, 박지성과는 다른 시점과 상황에서 박찬호는 은퇴를 했다. 박찬호는
눈물을 흘린 반면 박지성은 애써 웃으려고 한 것을 볼 때 무엇인지 차이가 느껴
진다.

가정이지만 박찬호가 한화에 기여할 부분이 분명히 남아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에 그의 은퇴는 뒤늦게 아쉬움을 더한다. 현재 어떤 일에 열중하고
있는지 팬들이 궁금해 하고 있다.

그들이 은퇴 후에도 한결같이 팬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겸손하고 누구나 배려하는 따뜻한 인간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의 ‘국민 타자’ 이승엽이 그라운드 안팎에서 지금도 잘 보여주고 있다. ‘전설(legend)’로 기억될 선수들은 스스로 물러날 때를 알고 떠난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