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유치한 조어 방식에 피식 웃었다.
'관피아'의 원조인 '모피아'는 MoF(Ministry of Finance:재무부)와 'Mafia'라는 영어단어의 첫 음절들을 묶은 거지만, '관료+Mafia'의 결합은 국적불명 원칙파괴의 기형적 단어이다.
오래전 후배 기자가 '금융위원회+마피아'의 조어라며 '금피아'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써 왔길래 아예 지워버렸다. 무슨 되지도 않는 조어냐고.
그런데 이제는 사석은 물론, 언론, 심지어 대통령의 국무회의 공식 발언에서까지 '관피아'라는 단어가 '공공의 적'을 의미하는 공식 명칭의 지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래도 이 단어를 볼 때마다 불편하다. '원칙에 안 맞으면 어때, 남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 이런 우리 사회의 무원칙이 '관피아'라는 말에도 녹아 있는 것 같아서다. '원칙'대로라면 '고피아(Government + Mafia)'정도가 될 것이다.
더 불편한 것은 관피아라는 조어 자체보다는 그 뒤에 놓인 '축소형 타깃팅'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세월호 참사에서 우리가 돌아봐야 할 '고피아'는 관료 사회에 국한되지 않는 '거버닝 클래스(Governing Class)+마피아(Mafia)'가 돼야 한다.
규제의 목적을 망각한 행정부가 20년으로 규정된 여객선의 선령 제한을 완화한 이유는 "기업들의 비용이 연간 200억원 절감될 것"이라는 공무원의 말 속에 담겨 있다. 승객들은 '객체'일 뿐, 정부-기업의 동업자적 이해관계 앞에서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입법부'는 필수적인 안전규정을 빠뜨리고 이익단체의 편익에 봉사했다.
부도덕한 기업주 유병언 전 세모 회장은 3000억원대의 부도를 냈으면서, 100억원 남짓한 돈으로 다시 그 기업을 사들여 또 다시 그 보다 더 많은 부를 일궜다. 보통사람들에겐 한 푼이라도 갚지 않고서는 못살게 만드는 금융권은 1000억원이 넘는 빚을 탕감해주고, 100억원이라는 거액의 돈까지 빌려줬다. 법정관리를 맡은 사법부는 부도덕하고 의혹투성이의 경영진이 다시 기업을 사들이게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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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기업을 되찾은 기업주는 경영에 직접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도 억대 연봉을 받았다. 컨설팅비, 예술품 구입비, 심지어 '이름 값'에 이르기까지 창조적인 방법으로 회사에서 '삥'을 뜯으며 예술가로서 우아한 삶을 살았다. 그 밑에서 겨우 입에 풀칠해온 선장과 선원들에게 숭고한 직업의식을 기대하고 우리 아이들을 먼저 살려내기를 바라는 건 애초부터 무리였을지 모른다.
유 전회장이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그리고 다시 재기하는 과정에서 늘 든든한 밑바닥은 신도들의 헌금이었고, 믿음을 담보로 한 노동착취였다. 종교라는 이름의 영리집단이 우리 사회에 구원파 뿐일까.
이렇듯 입법-사법-행정-금융-기업-종교의 결속 고리 속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고피아'들은 순진하게 겉으로 드러난 '공식' 룰을 믿고 따라선 안 된다는 걸 잘 안다. 세상엔 항상 '뒷면'이 있고, '비공식'을 따라야 하고, 서로 서로 권력을 품앗이해야 견고한 '고피아'로 살아남는다는 걸 체득하고 있다. 독점적 '지대'를 사이좋게 나눠갖는 공동체는 그렇게 해서 형성돼 왔다.
그런 고피아의 생존 노하우를 사회가 공유했더라면 선실에 대기하라는 선내방송에 '네~'하고 입을 모아 얌전히 대답했던 착한 아이들의 운명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른바 '국가 개조'라는 명분으로 '관피아'만을 난도질해서야 그 자리를 또다른 어색한 조어의 '~피아'들이 채울게 분명하다.
사회 곳곳에 도사린 위험요인을 찾아내며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목소리가 높지만 우리사회가 찾아야 할 '기본'은 안전을 넘어선다.
세월호 희생자들이 온 몸으로 우리 사회에 던진 물음은 정권이나 정부, 혹은 관피아 차원이 아니다. 몰염치하고 기막힌 '고피아' 고리가 유지되는 한, '4.16 이후'에도 대한민국은 달라지기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