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장남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사진 왼쪽)과 3남인 이건희 삼성 그룹 회장.
삼성 창업자인 고 호암 이병철 회장의 생일을 엿새 앞둔 6일 오전 10시. 50명 정도가 방청할 수 있는 서울고등법원 412호 법정은 100여명의 취재진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원고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과 피고인 동생 이건희 삼성 그룹 회장간의 항소심 재판에서도 원고가 제기한 지분권 확인 청구소송은 각하되고,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주식 인도청구 소송, 금전 지급청구 등이 각각 기각됐기 때문이다.
피고 측 변호인은 정통성을 다시 한번 인증받은 판결이라며 환영하는 분위기였지만, 원고 측 변호인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원고와 상의 후 대법원 상고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재계는 이번 소송의 핵심을 아버지(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로부터 선택받은 아들(3남 이건희 회장)과 그렇지 못한 아들(장남 이맹희 전 회장)간의 파워게임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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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장 없이 구두 유언만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차명주식'이 공개되면서 파워게임이 시작된 것. 유언장이 없으니 숨어있던 차명주식을 나누자는 것이었지만 소송에서 정작 원고 측의 발목을 잡은 것은 원고 본인의 과거 기록이었다.
이맹희 전 회장이 1993년 발간한 자서전인 '묻어둔 이야기, 이맹희 회상록' 내의 상속유언 부분이 유언의 실체를 드러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
선대 회장의 유지는 장남은 못미더워 유산을 물려주지 않는 대신 큰 며느리(손복남 CJ 고문)와 장손(이재현 CJ 회장)에게는 일정 재산을 나눠주고, 나머지 한솔, 신세계 등 자손들에게 상속을 하는 한편, 3남에게는 그룹의 주요 계열사의 지분을 포함한 경영권을 물려줬다는 내용이다.
쟁점이 됐던 차명주식(삼성생명 425만 9057주와 삼성전자 33만 7276주)에 대해 재판부는 공동상속인들이 알고 있었고, 이를 양해하거나 묵인했으며, 상속회복청구를 할 수 있는 기간 동안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경영권을 인정했다고 봤다.
그 근거로 선대회장이 해당 주식을 차명으로 보유해 이건희 회장에게 그룹 경영권과 함께 넘겼고, 나머지 공동상속인들도 각각이 받은 그룹의 차명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을 들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차명주식에 대해 승계 후 25년간 이의를 제기하지 않다고 뒤늦게 한 것은 법률적으로 효력이 없다는 얘기로 결론 지었다.
재판부는 그동안 형제간 진정성 있는 화해를 권고했으나, 소송 취하 없이 한쪽이 일정 부분의 몫을 요구하는 조정을 주장하면서 화해는 이뤄지지 못했고 결국 사실심의 마지막 단계인 항소심까지 왔고, 결국 동생의 승리로 끝났다.
이번 항소심 판결로 726일간의 상속 소송이 호암의 생일 엿새를 앞두고 일단락되고 법률심인 대법원 상고심의 여부만 남았다. 상고심 여부는 원고의 결정에 달려 있다.
오는 12일은 호암 탄생 104주년이다. 이제 더 이상의 논란을 끝내고 호암의 유지에 따라 형제간의 진정한 화해가 이뤄지기를 바라는 게 '하늘에 있는' 호암이 바라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