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회사 내 제품, 카테고리를 재정의할 수 있다면, 새로운 시장

머니투데이 유병률 실리콘밸리 특파원 2014.01.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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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5년, 마지막 성장판을 열자] '머신데이터' 대중화, 고프리 설리반 스플렁크 CEO

편집자주 다수 전문가들은 앞으로 5년을 우리나라의 '성장판'이 열려있는 마지막 시기로 보고 있다. 이 '마지막 5년' 동안 우리나라의 성장동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것은 기업들의 치밀하면서도 과감한 '혁신'없이는 불가능하다. 이에 머니투데이는 국내 기업들에 적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혁신 전략을 찾기 위해 혁신에 성공한 독일 중견기업(미텔슈탄트)을 비롯한 유럽, 미국, 일본 등 전세계 100대 기업을 심층 취재, 분석한다. 현지에서 이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을 비롯한 고위 임원들을 만나 깊이있는 경험을 끌어내고 한국 기업에 활용할 수 있는 혁신의 '정수'(精髓)를 뽑아낼 예정이다. 산업연구원, IBK기업은행경제연구소, 독일 드로기그룹, 롤랜드버거 스트래티지 컨설턴츠 등과 공동연구를 통해 한국기업들을 위한 '혁신의 황금법칙'도 찾아내 제시할 계획이다.

고프리 설리반 스플렁크 CEO 겸 이사회 의장은 "상품과 회사에 대한 새로운 포지셔닝은 우리가 만든 새로운 전쟁터에 적들이 오게 하는 것과 같다. 퍼스트 무버가 되어서 전쟁을 벌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포브스로부터 구글의 래리 페이지 등과 함께 '2013년 10대 기업인'으로 선정됐다.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유병률 기자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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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프리 설리반 스플렁크 CEO 겸 이사회 의장은 "상품과 회사에 대한 새로운 포지셔닝은 우리가 만든 새로운 전쟁터에 적들이 오게 하는 것과 같다. 퍼스트 무버가 되어서 전쟁을 벌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포브스로부터 구글의 래리 페이지 등과 함께 '2013년 10대 기업인'으로 선정됐다.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유병률 기자






전 세계 1만여 개 매장을 가지고 있는 도미노피자에는 비밀병기가 하나 있다. 바로 고객들을 실시간으로 꿰뚫고 있다는 것. 지금 현재 각 매장에서 어떤 피자가 어떤 사이드 메뉴와 함께 주문이 되고 있는지, 어떤 쿠폰이 사용됐는지, 모바일로 주문이 됐다면 그것이 아이폰인지, 안드로이드폰인지 아니면 킨들인지까지도 분초 단위로 파악한다. 그래서 디바이스 종류에 따라 가장 효과적인 쿠폰으로 마케팅할 수 있다.

도미노피자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머신데이터(machine data)’ 검색엔진을 제공하는 ‘스플렁크(Splunk.com)’라는 회사 덕분이다. 머신데이터란 웹사이트, 애플리케이션, 서버, 네트워크, 모바일 디바이스 등 ‘머신’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모든 장치들이 만들어내는 데이터를 말한다. 스플렁크는 이런 머신데이터를 모으고, 분류하고, 검색하고, 분석할 수 있는 엔진을 제공하는 업체이다. 산더미 같은 데이터를 생성하는 기계들과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대화하면서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스플렁크가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에는 마치 구글 초기화면의 검색창 같은 것이 있다. 그래서 IT보안에 관한 것이든, 아니면 비즈니스에 대한 것이든 그 회사와 한번이라도 연결된 모든 장치들이 만들어 내는 데이터를 쉽게 검색하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가치를 만들 수 있다. 스플렁크 고객사들이 “마치 구글을 처음 사용했을 때와 같은 경험”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회사의 시스템과 비즈니스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검색하면 죄다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스플렁크는 머신데이터 검색부문에서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는데 애플, 페이스북, 징가, 컴캐스트, 뱅크오브아메리카, 미 국방성, 하버드대 등 90개국 6400개 기업 및 기관이 스플렁크 소프트웨어를 통해 자사의 모든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 추정액은 약 2억9000만달러(약 3078억원). 머신데이터라는 용어를 세계 처음으로 보급시킨 장본인인, 이 회사 고프리 설리반(Godfrey Sulivan) CEO 겸 이사회 의장을 만나 스플렁크의 성공비결을 들어보았다.



내 제품 내 회사, 카테고리를 재정의하라
고프리 의장은 지난해 말 세계적 경제매거진 포브스로부터 래리 페이지(구글), 제프 베조스(아마존),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잭 도시(스퀘어) 등과 함께 ‘2013년 10대 기업인’에 선정했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통한다.

2001년 매출 5억달러(약 5307억원)이던 기업용 소프트웨어회사 하이페리온(Hyperion) CEO를 맡아 2007년 10억달러(1조615억원)로 끌어올려 오라클에 33억달러(3조5000억원)에 매각했다. 스플렁크도 그가 CEO를 맡았던 2008년만해도 매출이 900만달러(95억원) 정도로 기술력 있는 스타트업(초기기업)에 불과했다. 하지만, 5년여 만에 해외 10개 지사를 두고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가 작은 기술기업을 세계적 기업으로 바꾼 첫번째 비결은 스플렁크가 만들고 있던 제품을 새로운 카테고리로 재정의했고, 회사의 미션에 대해서도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그는 ‘머신데이터’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대중화시켰고, 스플렁크에 대해서도 ‘운영지능(operational intelligence)’을 제공하는 회사로 새로 개념화했다. 무엇을 하는 제품인지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고, 고객들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하는 회사인지 새로운 개념을 지어줌으로써 직원은 물론, 고객들에게 새로운 시장을 선보인 것이다.


그는 “CEO로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상품과 회사의 포지셔닝에 관한 것이었다. 새롭게 포지셔닝한다는 것은 적들이 설정한 전쟁터에 우리가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든 새로운 전쟁터에 적들이 오게 하는 것과 같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어서 전쟁을 벌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CEO로 취임할 때만 해도 스플렁크는 그냥 IT검색회사로 불리고 있었다. 스플렁크만의 어떤 가치나 의미를 담고 있는 이름이 아니었다.

“스플렁크의 소프트웨어는 사실 IT를 넘어서는 것이다. 고객사들은 IT시스템, 보안뿐 아니라 비즈니스에 관한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IT검색?, 검색엔진(search engine)? 색인엔진(indexing engine)? 분석엔진(analytics engine)? 이 모든 용어가 우리 제품이 하는 일의 일부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협소한 포지셔닝인 것이다. 그래서 모든 네트워크, 모든 장치들이 만들어내는 모든 데이터, 즉 머신데이터라는 용어에 착안했다. 우리는 머신데이터라는 용어를 보급했고, 우리 제품을 ‘머신데이터 검색엔진’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다음은 회사의 포지셔닝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는 고객들이 스플렁크를 통해 어떤 가치를 얻을 수 있는지 다시 고민했다. 자사의 모든 데이터를 종합해서 실시간으로 새로운 정보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 그래서 새로운 레벨의 인사이트를 얻고 가치를 부여하는 것, 과연 이것을 무엇으로 불려야 할지 말이다. 고객관계관리(CRM)? 비즈니스 인텔리전스(비즈니스 의사결정을 위해 사용되는 데이터 수집 및 관리 기술)? 이 또한 협소한 개념이었다. 우리가 만드는 가치는 현재의 정형화된 데이터를 활용하는 비즈니스 인텔리전스를 뛰어넘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정형, 비정형의 모든 데이터를 가지고 미래까지 예측할 수 있는 것, 회사운영(operation)에 관한 모든 분석을 포괄하는 것. 그래서 우리는 이를 운영지능(operational intelligence)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스플렁크의 미션은 운영지능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처럼 스플렁크의 성공비결은 데이터에 대한 개념을 재정의하고, 고객들에게 데이터를 보는 시각을 바꿔주고, 고객들이 데이터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가치 역시 새롭게 개념화했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 제품이 하고 있는 일, 그리고 고객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에 대해 새로운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단숨에 새로운 시장의 퍼스트 무버가 된 것이다.

머신데이터란 웹사이트, 애플리케이션, 서버, 네트워크, 모바일 디바이스 등 모든 기계장치들이 만들어내는 데이터를 말한다. 스플렁크는 머신데이터를 분류하고, 검색하고, 분석하는 엔진을 제공하고 있다. 머신데이터란 웹사이트, 애플리케이션, 서버, 네트워크, 모바일 디바이스 등 모든 기계장치들이 만들어내는 데이터를 말한다. 스플렁크는 머신데이터를 분류하고, 검색하고, 분석하는 엔진을 제공하고 있다.
스플렁크는 컴퓨터언어를 모르는 사람도 머신데이터를 분류하고, 분석하고, 시각화해서 새로운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고 있다. /스플렁크 제공 스플렁크는 컴퓨터언어를 모르는 사람도 머신데이터를 분류하고, 분석하고, 시각화해서 새로운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고 있다. /스플렁크 제공
고객들로 하여금 스토리를 만들게 하라
스플렁크는 매년 대규모 컨퍼런스를 개최한다. 그런데 애플, 구글 등 다른 실리콘밸리 기업들과 다른 것은 대부분 고객들이 발표하고 고객들끼리 배우는 자리라는 것. 각 기업마다 생성되는 머신데이터가 다르기 때문에 이를 통해 각 기업들이 만들어내는 가치 역시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3일 내내 고객들이 발표하고 정보를 나눈다. ‘스플렁크를 그렇게 사용할 수도 있군요’라면서 서로 자극을 받는 것이다. 고객들은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스플렁크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 역시 고객들이 스플렁크를 사용하는 사례를 들으며 영감을 받는다. 고객들이 우리를 혁신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해말 컨퍼런스에서 발표됐던 두 가지 사례를 들려주었다. 하나는 일본의 한 대형 빌딩관리업체가 스플렁크를 통해 각 빌딩의 임대 경기를 예측하고 있는 것. 이 회사는 모든 빌딩의 엘리베이터에 입주사 직원 등이 카드를 끍도록 했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수는 물론, 몇층, 몇호에 몇명이 드나드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방문자들이 줄어드는 곳은 임대 재계약률이 낮은 것을 확인했고, 이런 엘리베이터 데이터를 통해 빌딩 소유자들에게 임대경기를 정확하게 예측해줄 수 있게 됐다는 것.

또 미국의 철도운영회사인 버링턴 노던은 모든 열차에 센서를 부착해서 실시간으로 열차운영상황를 확인하고 있다. 어떤 속도로 가고 있는지, 너무 빨리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코너에서의 속도는 규정에 맞는지, 브레이크가 너무 뜨겁지는 않는지 등 모든 정보를 스플렁크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확인하고 있다.

그는 “모든 머신의 세계가 디지털화하고 있고, 머신들끼리 상호 소통하고 있다. 자동차, 기차, 빌딩, 모바일 디바이스 이 모든 것이 머신데이터를 만들어 내고 있고, 이 데이터에 대한 창의적 활용이 우리 삶을 더 낫게 만들고 있다. 스플렁크의 혁신은 한편으로는 우리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고객들이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어 주면서 진행한다. 그런데 이 두가지는 별개가 아니다”고 말했다.



새로운 미션; 데이터 격차를 줄이는 것
고프리 의장은 향후 스플렁크의 포지셔닝에 대해 또 하나 새로운 이름을 만들었다. 바로 ‘데이터 디바이드(data divide, 데이터 격차)’. 즉 스플렁크 플랫폼을 개발자 혹은 IT운영자 뿐 아니라, 비즈니스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확대하는 것, 그래서 데이터 격차를 줄이는 것.

스플렁크가 지난해 말 출시한 ‘엔터프라이즈6’의 모토도 데이터 격차를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데이터를 다루는 각 기업의 기술수준과 상관없이, 혹은 한 조직내에서도 컴퓨터 언어 습득 유무와 상관없이, 많은 기업 많은 사람들이 쉽게 데이터를 다루고, 조작하고, 시각화하고, 분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 제조업체이든, 미디어회사이든 모두가 데이터 컴퍼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이제 막 빅데이터 시대에 접어들었고, 데이터가 ‘빅(big)’해진 것은 바로 머신데이터 때문이다. 많은 회사들이 좋은 상품 만들어 팔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상품이 데이터를 만들어낸다는 것이고, 기업들은 이런 데이터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데이터 컴퍼니가 되기 위해서는 조직의 누구나 이런 데이터에 접근해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머신데이터라는 용어를 보급해서 데어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고, 운영지능이라는 용어를 만들어서 데이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개념화한 스플렁크가, 데이터 디바이드라는 개념을 통해 스플렁크의 미션을 더 확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취재지원: KOTRA 실리콘밸리 무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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