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명절 선물 딜레마

머니투데이 성화용 더벨 편집국장 2014.01.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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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을 앞두고 선물 배송 때문에 걸려오는 전화가 잦아진다. 과연 이렇게 받아도 되는 건가. 선물은 선물일 뿐 인가. 선물과 뇌물의 경계는 어디쯤인가. 5만원 미만의 선물은 괜찮은가. 10곳으로부터 받았다면? 50만원짜리 1개는 뇌물이고? 명절 때마다 곤혹과 자괴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지만 한번도 명쾌한 답을 구한적이 없다. 일종의 명절 증후군이다.

본질적으로 '완전한 선의'는 없다고 믿는다. 이해관계를 초월한 완벽한 호의라는 건 부모자식 간에도 쉽지 않은 법이다. 그렇다면 순도(純度)의 문제인데, 그걸 뭘로 측량한단 말인가. 어느 정도 순수해야 부담 없는 선물인가. 그 '부담'이란 것도 결국 정도의 차이가 아닐까.



만약 '부담 지수' 같은 게 있다면, 같은 선물이라도 주고받는 사람들의 인성과 철학, 사회적·경제적 위치와 교제의 역사, 친밀도 따위가 버무려져 건건이 다른 수치로 나타나지 않을까. 설령 그 수치를 따져 선물을 가려 받을 수 있다 해도, 거부당하는 사람의 모멸감은 어쩌란 말인가.

'골치 아픈 선물, 아예 안 받으면 그만이지'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철없는 얘기다. 그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적어도 이 사회와 직장에 몸담고 있는 '사회인'이라면 쉬운 선택이 아니다. 당장 누군가 그렇게 '선언'한다면, 주변의 동료들은 황당해질 것이다. 은밀히 선물을 거절한다 해도 그 사실이 알려지는 건 순식간이다. 나는 홀로 청렴하니, 이렇게 하겠다, 너희들은 어쩔 것인가. 이런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심하게 표현하면 동료들의 부도덕을 고발하는 유아독존의 대자보와도 같다. 섣불리 나서기 어렵다. 이해가 얽혀 있는 주변의 사람들이 같은 선택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조직을 통째로 움직일만한 권위와 역량을 갖춰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설령 그렇게 한다고 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우리 회사, 내 주변을 제외한 나머지는 또 어떻게 해야 하나. 받지 않는 건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주지도 않을 것인가.

맞물려 있는 이 2개의 문제를 풀기 위해 몇몇 기업들이 선택한 현실적 해법은 대개 비슷하다. 받는 건 철저히 금지하되, 주는 건 예전처럼 주는 방식이다. 남들은 때 되면 다 주는 선물을 나만 안 하는 건 불리하다. 그러니 오히려 주는 건 더 후하게 한다. 안으로 청렴을 규율화 해 부패와 독직을 막고, 밖으로는 베풀어 이득을 챙기자는 계산이다. 언뜻 그럴듯한 '방어적 청렴'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남들에게는 '독이 든 사과'를 권하면서 내 조직은 못 먹도록 칼을 들고 감시하는 격이다. 나는 깨끗하게 남을 테니 너희들은 계속 부패하라는 것이다. 양심과 도의를 따른 것으로 보기 어렵다. 냉혹한 셈법일 뿐이다. 묘한 우월주의가 읽히기도 하는데, 씁쓸하지만 사실이다. 강한 기업, 강한 조직이 주로 그렇게 한다.


받는 쪽 입장에서만 보면 선물 대처법들이 다채롭다. 재포장해서 또 다른 용도의 선물로 쓰는, 궁색하고 비겁한 방어법도 있고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복지시설이나 불우이웃에 전달한다는 얘기도 들어 봤다. 연휴가 지나고 단체로 선물을 모아 바자를 연다고도 한다.

물론 어느것도 온전히 깨끗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나마 위안을 삼는건 이런 과도기적 선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어서면 사회 전체가 바뀌어 있을 것도 같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너무 멀다. 힘없고, 소심하고,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는 범부들은 이번 설에도 잠깐 고민하다 마음속의 대자보를 내려놓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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