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일선경찰서에서 근무하는 여경 A씨는 경찰이 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자랑스럽게 생각할 때가 더 많다. 하지만 남성적인 경찰문화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가정까지 꾸리다 보면 '왜 하필 경찰이 됐나'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들 때가 있다.
술 취한 시민이 여경을 무시하는 태도로 대하거나 시위·집회 현장에서 신체적으로 민감한 부분을 밀치거나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여성이기도 하지만 경찰이기에, A씨는 이런 정도는 이제 웃어넘길 수 있게 됐다.
서울의 한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여경 B씨는 아이 셋을 둔 '워킹맘'이다. B씨는 아이들을 조금이나마 돌보기 위해 경찰서 대신 4교대로 근무하는 지구대를 자원했다.
B씨는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는 동시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집안일을 시작해야 한다"며 "쉬는 시간에 쉴 수 없고 집안일까지 해야 하니 몸이 열개라도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갑자기 야간에 긴급 소집이 떨어져 한밤 중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른 적도 많다. 자는 아이를 들쳐 업고 출동해 우는 아이를 숙직실에 맡겨놓고 현장으로 출동을 한 사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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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과 직장생활을 모두 챙기려면 그야말로 '슈퍼맘'이 돼야 하니 형사 등 업무 부담이 큰 핵심 파트에서는 버티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아이 몇 키우다보면 어느새 변두리로 밀려나 있더라", "오기로 버텨야 한다"는 이야기는 농담이 아니다.
종로구 창신동 여자경찰기동대/머니투데이DB
집회나 시위에 동원될 때도 여경이 나서면 자칫 충돌로 치달을 수 있는 분위기를 좀 더 부드럽게 만들 수 있다. 여성을 제압하거나 검거해야 하는 상황에도 여경이 나서야 추행과 같은 논란을 미연에 차단할 수 있다. 외국인 관광객, 거주자, 유학생 등이 늘면서 우수한 외국어 능력을 가진 여경들이 업무에 기여하는 바도 적잖다.
무엇보다 섬세하고 꼼꼼한 여성의 특성은 경찰의 다양한 업무 분야에서 빛을 발할 수 있다. 그렇다고 여경이 '여성'에 적합한 업무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남자 경찰과 똑같이 경쟁하고 경찰이 해야 하는 의무를 다해야 한다. 최근엔 경찰 조직 내 여경에 대한 '유리천장'을 뚫고 나오는 여경들도 줄을 잇고 있다.
현재 경찰 내에서 경찰청장(치안총감) 바로 아래 치안정감 다섯 자리 중 하나인 부산지방경찰청장은 '고졸 출신 여경'으로 유명한 이금형 청장이 맡고 있다.
지난 9일 발표된 경찰 인사에선 김해경 경찰청 보안1과장이 경무관으로 승진, 네 번째 여성 경무관에 올랐다. 10일에는 김숙진 경찰청 경정, 김경자 서울 영등포경찰서 경정, 이광숙 충북경찰청 경정 3명이 '경찰의 꽃'으로 불리는 총경 승진예정자로 내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