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강세장은 의심 속에 찾아올 것"

머니투데이 오정은 기자 2013.12.31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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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표 성장주·가치주 자산운용사 최고투자책임자(CIO)들의 2014년 증시 전망

↑왼쪽부터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부사장, 송성엽 KB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자산운용본부장, 김영일 한국투자신탁운용 CIO.↑왼쪽부터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부사장, 송성엽 KB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자산운용본부장, 김영일 한국투자신탁운용 CIO.


"나는 그 사람의 관상만 보았지 시대를 보지 못했네,
파도만 보고 바람은 보지 못했지...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이건만......"

영화 '관상'에서 주인공 내경은 시대의 격변을 겪고 난 뒤 이같이 말했다. 주식 시장의 이치도 이와 비슷하다. 주가는 파도처럼 시시각각 변하지만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이기 때문이다.



2014년 갑오년 증시 개막을 앞두고 국내 자본시장을 이끄는 4명의 최고투자책임자(CIO)에게 물었다. 한국 증시에 오랜 침체를 딛고 날아오를 '바람'이 불 것인지, 그렇다면 그 바람은 대체 무엇인지 말이다.

이들 CIO는 주식투자 경력이 20~25년 되는 베테랑 펀드매니저로 한 회사에서 다수의 펀드매니저들을 장기간 진두지휘했다. 2~3년 수익률이 부진하면 바로 퇴출되는 냉혹한 운용업계에서 실력을 검증받은 고수들이다.



◇강세장은 도둑처럼 찾아온다="파도를 움직이는 건 일단 바람이지만 실제로는 달의 인력이 작용하고 있다. 주가를 움직이는 건 기업 실적과 유동성이지만 그 뒤에 존재하는 거시경제(매크로) 변수를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송성엽 KB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지난 5년간의 부진을 딛고 선진국 경제가 본격적인 회복기에 접어들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주식시장을 움직이는 거대한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흐름을 포착해야 한다는 인사이트다.

그는 "2014년은 선진국 경기회복과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이슈가 팽팽하게 맞서는 한 해가 될 것"이라며 "하지만 테이퍼링도 결국 경기 과열 방지를 위한 조치이므로 경기회복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고 진단했다.


경기회복은 결국 수출기업의 이익 증가로 이어져 코스피가 우상향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 경제는 이머징마켓 내에서 선진국 경기회복으로 인한 낙수효과가 가장 커 수출 관련주가 각광받게 될 거란 분석이다.

특히 경기회복으로 내수가 회복되며 금융주가 유망할 것으로 전망했다. 송 본부장은 "경기회복으로 금리가 올라갈 경우 금융회사의 이익 구조가 개선될 것"이라며 "대기업의 부채구조가 은행 대출로 이동하며 정체됐던 금융기관의 자산 성장이 재개될 가능성도 높다"고 판단했다.

김영일 한국투자신탁운용 CIO는 "2013년 증시는 참담했다"고 회고했다. 기업 실적이 박살난 데다 증시 거래대금은 급감하고 투자자들이 연일 주식시장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난 3년, 길게는 5년간의 부진을 생각해보면 이제는 날아오를 때가 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며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제외한 수출 기업의 이익 개선 가능성이 높은 점이 희망적"이라고 말했다. 2013년 유난히 부진했던 건설, 유화, 철강, 은행 업종의 이익이 증가하며 주식시장에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영일 CIO는 "아직은 주식시장으로 돈이 들어올 거라고 자신있게 얘기하지는 못한다"면서도 "하지만 강세장은 의심 속에 도래하기 마련이고 바로 이럴 때 주식을 사야한다"고 언급했다.

증시를 일으켜 세울 바람은 '실적'이라고 봤다. 선진국 경기회복 수혜가 가시화되며 기업 실적이 개선될 때 주가가 비로소 오를 거란 전망이다.

◇에너지 축적한 코스피, 비상할 때 됐다=30대 중반부터 CIO를 맡았던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자산운용본부장은 "2014년 증시를 일으켜 세울 바람은 투심(투자심리)이다"고 말했다. 시중에 풀린 돈은 많았지만 코스피가 1%도 오르지 못한 것은 아직 투자자들의 마음이 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 주식을 사고 싶은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무엇, 그것이 2014년 장세의 관건이 될 것으로 파악했다.

2014년에는 코스피가 복지부동 상태를 벗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선진국의 소비, 고용, 투자지표가 개선되며 한국 수출기업 실적이 개선될 거란 논리다. 수출이 회복되면서 경기가 살아나는 물꼬가 제대로 트이면 시중 유동성이 빠른 속도로 증시로 유입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허 본부장은 "유동성이 이렇게 많이 풀렸는데도 아직 금융장세가 오지 않았다"며 "5년 동안 횡보하며 에너지를 축적한 코스피가 이제 비상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투자자의 마음을 움직일 동인은 정부의 정책 방향이나 북한 문제의 해결, 경기회복 등 다각도에서 찾아올 것으로 분석했다. 일단 방아쇠가 당겨지면 작은 에너지에도 시장이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예상이다.

◇"채권이나 부동산보다 주식이 확실히 매력적"=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은 주식시장을 움직일 바람을 수급과 패러다임의 변화로 파악했다. 그는 다른 CIO들과 달리 2014년 거시경제 환경이 생각보다 불투명하다고 진단했다. 세계 각국이 내수 부양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한국 수출기업이 예년처럼 유리한 환경이 아니라는 것. 다만 주식이 채권이나 부동산 등 다른 자산에 비해 매력적인 것만은 확실하다는 견해다.

이 부사장은 "한국 주식은 분명히 저평가돼 있고 7~8% 수준의 기대수익률이 충분히 가능하다"며 "채권을 팔아서 주식을 사는 대전환(그레이트 로테이션)이 국내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부 정책이 관건이라고 봤다. 정부의 1순위 정책과제는 경제를 살리는 것이므로 정부가 내수에 올인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유통, 금융, 내수 건설, 패션, 경기에 민감한 음식료 업종이 수혜를 볼 것이란 혜안이다.

"정부 정책이 효과를 발휘해 주택 경기가 회복되고 소비 심리가 살아난다면 올해 증시가 좋을 거란 희망을 가져봅니다. 설사 기업 실적이 크게 좋아지지 않는다고 해도 채권이나 예금보다 매력적인 주식에 돈이 몰리며 주가가 오를 가능성도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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