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가득 행복주택, '행복그라운드 제로'

머니투데이 지영호 기자 2013.12.08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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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후']박근혜정부의 '행복주택', 공약에서 지정보류까지

4일 서울 양천구 목동 고층건물에서 내려다본 목동 행복주택 시범지구 부지 전경./사진제공=뉴스14일 서울 양천구 목동 고층건물에서 내려다본 목동 행복주택 시범지구 부지 전경./사진제공=뉴스1


 박근혜 대통령의 서민주거안정 공약인 '행복주택' 개발사업이 첫 삽도 뜨기 전에 당초 계획에서 후퇴하고 있다. 목표였던 20만가구는 14만가구로 축소됐고 연내 1만가구를 공급한다던 계획은 착공도 못했다.

 지구지정을 앞둔 5개 행복주택 시범지구 주민들의 반발은 어느 때보다 강하다. 주민들은 "정부가 충분한 주민의견 수렴과정 없이 사업을 강행하려 했다"며 주무장관 퇴진운동까지 벌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동안 박근혜정부의 행복주택 공급계획은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왔다. 높은 인공데크 비용으로 인한 사업성 부족과 그에 따른 재원마련 문제가 꾸준히 제기된데다 시범지구 주민들의 강한 반발로 좀처럼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전 정권에서 추진한 비슷한 유형의 임대사업과 박 대통령의 사업구상부터 최근 지정보류까지 일련에 벌어진 행복주택의 추진과정을 되짚어봤다.



신정차량기지 상부에 조성된 양천아파트나 프랑스 릴역사에 조성된 대규모 업무·상업·주거시설은 지금까지 우리정부의 임대주택 공급확대 방안으로 검토된 사례가 많다. 사진은 서울 양천구 목동 신정아파트./사진=지영호 기자신정차량기지 상부에 조성된 양천아파트나 프랑스 릴역사에 조성된 대규모 업무·상업·주거시설은 지금까지 우리정부의 임대주택 공급확대 방안으로 검토된 사례가 많다. 사진은 서울 양천구 목동 신정아파트./사진=지영호 기자
 ◇역대 정권에서도 고민했던 행복주택

 철도 위 인공데크를 활용하거나 유수지 등 국·공유지를 활용해 서민형 임대주택을 짓겠다는 계획은 이번 정권에서만 진행된 것은 아니다. 보금자리주택을 서민주택 공급의 핵심으로 뒀던 이명박정부는 2009년 도심이나 도심 근교 유휴 철도부지에 소형임대주택을 짓는 사업을 계획했다.

 대중교통과 연계한 TOD(고밀복합개발) 방식을 적용, 시범사업지로 중랑구의 망우역을 선정할 정도로 가시적이었다. 선로 위에 데크를 설치하는 방식이나 입주대상을 신혼부부, 1~2인가구, 도시근로자로 정한 것도 행복주택과 비슷했다.


 망우역 철도부지에 1200가구를 우선 공급하고 10개지역에서 2만가구까지 확대하겠다던 계획은 결국 경제성문제로 용도폐기됐다. 당시 용지조성에만 3.3㎡당 600만원이 소요될 것이란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저비용으로 추진해야 할 임대주택 공급에는 부적합하다는 결론이었다.

 철도역사나 유휴부지를 활용한 임대아파트 건설계획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제기돼왔다. 현 국토교통위원장인 주승용 의원(민주·전남 여수을)은 철도부지에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주장한 인물 중 하나다.

 주 의원의 2008년 정책자료집에 따르면 '철도역사 위 임대아파트'를 짓는 정책의 효과에 대한 분석이 있다. 추진 배경은 지금의 행복주택 건설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명박정부의 임대주택 공급정책인 보금자리주택의 한계, 즉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로 인한 녹지손실문제와 도심 외곽에 위치한 직주거리문제를 철도부지 임대주택으로 해결하자는 것이었다.

 도심 내 임대주택에 필요한 최소 면적인 2만㎡를 충족하는 서울 노원구 월계동 성북역(현 광운대역)에 2만5070가구, 주거지역으로 용도변경이 필요한 월계동 석계역 부지에 5346가구 등 29개 철도역사에 18만5881가구를 건설할 수 있다는 세부 공급방안까지 나왔다.

 국민임대주택 100만가구(고 노무현 전 대통령 임기내 50만가구) 건설을 목표로 한 참여정부 역시 철도부지 등 유휴지를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당시 국민임대주택 건설기획단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홍인옥 도시사회연구소장은 "임대주택 공급 확대를 고민하면서 양천아파트 사례가 논의됐는데 도심 근처에 부지확보가 필요하다는 논리와 기존 거주자들과의 위화감 문제가 팽팽했다"며 "기술적 문제는 크지 않았던 반면 주민간 갈등과 고립에 대한 우려가 높아 추진하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그래픽=강기영 디자이너그래픽=강기영 디자이너
 ◇후보 시절부터 애착, 취임 3개월 만에 후보지 7곳 발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5월 당시 후보시절 '집 걱정 덜기' 종합대책을 대선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철도부지에 인공대지를 조성하고 아파트와 기숙사를 짓는 신개념 복합주거타운 계획을 발표했다. 가격 수준은 파격적이었다.

 서울의 행복주택과 수도권의 기숙사는 주변 시세의 3분의1, 수도권 임대주택은 2분의1 수준에서 각각 공급하겠다고 했다. 임대주택은 여전히 부족한 반면 전세가격은 수시로 폭등해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더욱 궁핍해졌다는 것이 이같은 주택보급계획을 내놓은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공공임대주택이 5~10년 임대 후 분양하는 것과 달리 행복주택은 40년간 장기임대 후 리모델링해 재임대하는 방식으로 설정했다. 6년간 14조7000억원이 드는 재원은 국민주택기금 융자로 총당한다는 계획이었다. 2013년 하반기부터 5개 시범지구에서 1만가구 공급을 시작으로 50개지구, 20만가구 공급이 목표였다.

 당선인 시절에도 박 대통령은 행복주택 프로젝트에 대한 애착을 내비쳤다. 박 대통령은 인수위 경제2분과 업무보고에서 "내가 행복주택에 입주하려고 한다는 마음으로 만들면 현실에 와닿을 것"이라며 "면밀한 준비를 통해 추진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새정부 출범 후 행복주택 프로젝트는 발빠르게 추진됐다. '행복주택지원특별법'(현재는 보금자리주택건설특별법의 명칭을 바꾼 공공주택건설특별법으로 변경) 제정을 추진하는 한편 '행복주택사업추진단'(현 공공주택건설추진단)을 꾸리고 시범사업 후보지 선정에 나섰다.

행복주택 시범지구로 지정된 서울 구로구 오류동역 철도부지 전경./사진제공=뉴스1행복주택 시범지구로 지정된 서울 구로구 오류동역 철도부지 전경./사진제공=뉴스1
 대통령 취임 3개월 만인 5월20일 국토교통부는 △오류 △가좌 △공릉 △목동 △잠실 △송파 서울지역 6곳과 경기 안산·고잔을 더한 수도권 7곳을 행복주택 시범지구로 선정했다.

 지역마다 테마가 주어졌다. 오류동지구는 노인 일자리 창출과 사회적기업 유치에, 고잔지구는 외국인이 다수 거주하는 것을 고려해 주민 교류공간에 주안점을 뒀다.

 잠실과 송파는 스포츠시설과 현대식 오픈마켓이 포함됐다. 가좌와 공릉지구는 대학생 주거공간으로 꾸미기로 했다. 목동은 물테마홍보관 등을 만드는 등 친수공간 조성으로 색깔을 입혔다.

 ◇'반대의 연속'…민심 돌려세울 방법은?

 서민임대주택 공급이란 기치를 내건 행복주택사업은 정부의 공식 발표 열흘도 안돼 후보지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의견 수용 없는 일방통행식 행정이 빚은 결과였다.

 반대의 선봉에 선 건 양천구 목동지구였다. 양천구는 국토부와의 행복주택 면담에서 교육·교통·주차·환경문제 등을 이유로 행복주택 건립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식 전달했다. 이후 목동에는 '결사반대'라는 현수막이 곳곳에 나부끼기 시작했고 주민들은 '지정철회'라고 쓴 어깨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왔다.

 4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행복주택 시범지구 인근에서 행복주택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궐기대회를 열고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행복주택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이날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과 약 1시간 동안 대화를 이어갔지만 장관 사퇴와 행복주택 불가피론 등 서로의 이견만 확인한 채 면담을 마쳤다./사진제공=뉴스1 4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행복주택 시범지구 인근에서 행복주택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궐기대회를 열고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행복주택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이날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과 약 1시간 동안 대화를 이어갔지만 장관 사퇴와 행복주택 불가피론 등 서로의 이견만 확인한 채 면담을 마쳤다./사진제공=뉴스1
 공릉지구가 있는 노원구는 7년간 추진한 경춘선 공원화사업을 행복주택 부지로 선정하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을 저버리는 행위라며 반대했다.

 잠실지구와 송파지구를 후보지로 둔 송파구는 생활체육시설로 활용된다는 이유로 반대의견을 표했다. 안산시 단원구의 고잔지구 역시 녹지훼손과 주택보급 과잉문제를 들어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이에 정부는 8월22일 반대 목소리가 적은 오류지구와 가좌지구만 먼저 행복주택지구로 최종 확정하며 부분 시범사업으로 전환했다. 나머지 5개 시범지구는 주민의견을 수렴해 추진한다는 방침도 내놨다. 이미 사업은 계획보다 한 달 가까이 늦어진 상태였다.

 "주민 설득 없이 후보지 선정은 없다"던 국토부는 지난 3일 부동산 대책 후속조치에 행복주택 지구지정 계획을 슬그머니 집어넣었다. 반발이 표면화됐고 반대지역 주민들은 서승환 국토부장관 퇴진운동으로 공세수위를 높이고 있다.

 신정호 목동행복주택건립반대 주민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3일 장관과의 첫 면담약속이 있었는데 돌연 약속을 취소하더니 지구지정 계획을 발표했다"며 "협의는 그저 그림을 만들려는 명분일 뿐 이곳에 행복주택을 짓겠다는 각본은 이미 짜여져 있었다"고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서승환 국토부 장관(오른쪽)이 4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행복주택 시범지구를 찾아 행복주택 건립을 반대해온 주민대표들과 대화했지만 별다른 합의점 없이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했다./사진제공=뉴스1서승환 국토부 장관(오른쪽)이 4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행복주택 시범지구를 찾아 행복주택 건립을 반대해온 주민대표들과 대화했지만 별다른 합의점 없이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했다./사진제공=뉴스1
 이에 국토부는 5개 사업지를 '지정보류'키로 하고 중앙도시계획위원회에 안건 상정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설득이나 논의 과정이 충분치 않았다는 비판에 한발 물러선 셈이다.

 대신 적극적인 설득작업에 장관이 나서기로 했다. 결론은 아직도 유보적이다. 서 장관은 지난 4일 목동주민과의 대화에서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한 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하지만 국토부의 의지도 강하다. 국토부 관계자는 "주민들의 합리적 요구사항은 추후 지구계획이나 사업계획 승인시 적극 반영할 예정"이라며 "어떤 경우에도 지구지정 철회 등 사업포기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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