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 사태와 어윤대의 발빼기

머니투데이 김진형 기자 2013.12.05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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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국민은행 사태와 어윤대의 발빼기


"도쿄지점 부실은 내가 감사팀 파견을 지시해서 밝혀낸 것이다."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이 최근 한 언론사와 만나 했다는 발언이다. 이 발언에 대한 금융권 사람들의 공통된 이야기는 "왜, 굳이, 지금, 저런 말을 했을까"였다. "겸허히 책일질 각오가 돼 있다"(민병덕 전 국민은행장) 정도의 발언이 순리라고 봤기 때문이다.

'내가 감사팀을 파견했다'는 어 전 회장의 말도 국민은행과 금융감독당국의 이야기와는 다르다.



어 전 회장은 지난해 10월 도쿄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총회에 참석했다. 당연히 이번에 사고를 친 그 도쿄지점장이 영접했다. 같이 갔던 KB금융 관계자는 '도쿄지점장이 너무 준비를 잘했더라. 당시 어 전 회장도 크게 만족해했다'라고 전했다. 도쿄지점은 실적도 좋았다. 어 전 회장은 도쿄지점장의 포상을 지시했다.

국민은행 본점에서는 정말 포상 받을만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도쿄지점을 검사했다. 검사 결과는 충격이었다. 대출실적이 좋았던 것은 불법대출 때문이었고 숨겨진 부실도 엄청났기 때문이다. '내 지시로 감사팀이 갔다'는 어 전 회장의 주장 앞에는 '내가 포상을 지시했다'는 말이 빠져 있는 셈이다.



어 전 회장의 최고책임자 답지 않은 모습은 이뿐이 아니다. 그는 퇴임 전 사석에서 "라이언 일병을 구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라이언 일병은 박동창 전 KB금융 부사장이다. 어 전 회장이 KB금융으로 영입했고 재임기간 총애했던 측근이다.

박 전 부사장은 지난해 ING보험 인수를 무산시킨 사외이사들의 재선임을 막기 위해 미국의 주주총회의안분석회사인 ISS에 내부 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금융감독원의 징계를 받았다. 부하 직원 관리를 못한 어 전 회장도 함께였다.

같은 건으로 제재 대상에 올랐지만 제재심의 과정에서 두 사람의 논리는 달랐다.


박 전 부사장은 ISS에 정보를 제공한 것은 적법한 절차에 따른 것이라며 제재 자체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어 전 회장은 사전에 보고를 받지 않아 알지 못했다는 논리를 폈다. 한쪽은 '죄가 없다'고, 한쪽은 '죄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몰랐다'고 한 셈이다.

어 전 회장과 달리 박 전 부사장은 '어 전 회장에게 3월4일 또는 5일경 구두보고했다'고 밝혔다가 어 전 회장이 이를 부인하자 그는 "상급자가 보고받지 않았다고 하니 상급자의 진술이 더 타당할 것 같다"며 오히려 어 전 회장을 감쌌다.

어 전 회장이 그렇게 구하고 싶었던 라이언 일병은 결국 중징계를 받아 금융권 재취업의 길이 막혔다. 반면 본인은 중징계에서 경징계로 제재 수위를 낮췄다.

"외부에서 온 고상한 CEO가 큰 그림만 그리려다 보니 내부 단속을 제대로 못한 탓이다." 국민은행에서 잇따라 터진 사고들을 보며 금융당국의 고위 관계자가 내린 원인분석이다. '큰 그림만 그리던 외부에서 온 고상한 CEO'가 누군지는 모두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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