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피난처는

머니투데이 박창욱 기자 2013.11.09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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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 에세이] 영화 '세이브 헤이븐'

# 요즘 늦가을 극장가가 이상하다. 예년과 달리 외롭고 헛헛한 마음을 달래줄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팍팍한 세상살이에 사랑에 대한 열망도 싸늘하게 식어버려서다. 세상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하는 지옥인데 '웬 사랑 타령이냐'는 비아냥이 들리는 듯하다.

/포스터=영화 홈페이지/포스터=영화 홈페이지


하지만 힘든 때 일수록 사랑의 감성이 충만해야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 메마른 마음을 촉촉이 적셔줄 멜로영화도 우리에겐 여전히 필요하다. 살벌한 최근 극장가에서 지난 6일 개봉한 '세이프 헤이븐'이 눈에 띈다.



'노트북' 등 다수의 로맨스 소설로 유명한 인기작가 니콜라스 스파크스의 원작을 영화화했는데, '길버트 그레이프' '사이더 하우스' '디어 존' 등을 만든 라세 할스트롬 감독이 만들었다. 스토리의 짜임새와 영상미, 그리고 배우의 매력이 한데 잘 어우러져 있다.

# 영화에서 케이티(줄리안 허프)는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며 생명의 위협을 느끼다가 그를 칼로 찌르고 미국 남동부 작은 바닷가 마을로 숨어든다. 그 마을에서 아내와 사별한 후 홀로 두 남매를 키우는 알렉스(조쉬 더하멜)을 만나고, 그의 사랑 속에서 두려움에서 벗어나 마음을 열게 된다. 온갖 위협과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알렉스는 결국 이 영화의 제목처럼 케이티에게 '안전한 피난처'가 되어준다.



이 영화에는 스릴러와 판타지도 일부 가미돼 있지만, 이 힘든 세상에서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든다. 병으로 죽은 알렉스의 아내가 남편이 앞으로 사랑하게 될 여자에게 미리 남겨 둔 편지에는 아무리 힘든 세상에서도 사랑을 놓으면 안 되는 이유가 적혀 있다. 늘 함께 하면서 웃게 해주고, 슬플 땐 토닥여주고, 한 편이 되어 주며, 나쁜 점을 바로 잡아주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이런 사랑으로 가족이라는 안식처가 만들어진다.

# 사랑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언제 또 올지 모르는 기회도 써버려야 한다. 그러면서도 결과는 불확실하다. 설사 결실을 맺는다 해도 생계, 가사, 육아 등 현실적인 고생문이 기다리고 있다. 얼핏 사랑은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결코 살 수 없는 것들을 얻는다. 함께 하며, 웃음과 위로를 받고, 나쁜 점을 바로 잡아주는 한 편 말이다.

최근 현실적인 삶의 문제로 연인과 헤어진 한 후배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현실이 힘들수록 안식처는 더 필요하다고 말이다. 안식처는 계산하지 않고, 더 받으려 하지 않고, 더 채우려하지 않을 때 주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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