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에서 시작된 혁신의 힘이 실리콘밸리까지

머니투데이 유병률 특파원 2013.11.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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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률의 체인지더월드] <68> 공대출신 주부 강미선씨

분유메이커를 개발해 미국 유명 체인에 공급하기 시작한 강미선 피에나 대표. /새너제이=유병률기자 분유메이커를 개발해 미국 유명 체인에 공급하기 시작한 강미선 피에나 대표. /새너제이=유병률기자


청계천 부품상가를 헤매고 다니던 한 주부가 있었다. 부품을 사고 회로를 설계하고 납땜을 해서 시제품을 만들어보는 과정에서 수없이 실패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은 남들도 불편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 불편을 해소하는 것이 바로 혁신 아닌가. 혁신이 별건가?’ 청계천에서 시작된 그의 꿈이 드디어 미국시장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분유메이커를 개발해서 미국 유명 매장에서 판매를 시작하는 강미선(39)씨 이야기이다. 출발은 “엄마들이 분유를 만들 때 불편함을 해결하는 제품을 만들고 싶어서”라고 했다. 강씨는 출산 후 몸이 아파서 한달 동안 남편이 아기를 키웠다. 아기가 배가 고파 울고 보채던 기억이 생생하다. “문득 내가 이 불편함을 해소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버튼 하나만 누르면 아이에게 바로 먹일 수 있는 분유가 만들어져 나오는 기계가 있으면 되지 않겠나 라는 생각. 커피머신처럼 말이죠.”



물론 강씨는 공대를 졸업했고 한때 삼성전자에서 반도체를 설계한 엔지니어 출신이다.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IT회사에 잠시 다니기도 했다. 남편도 엔지니어 출신이다. 하지만 강씨는 “사실 공대가 아니라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아이디어"라며 "차이는 불편을 계속 감수하면서 살 것인지, 아니면 한번 해결해볼 것인지, 그것"이라고 말했다. 사업을 결심한 강씨는 한국으로 돌아와 청계천과 종로, 문정동, 구로, 용산 등의 부품상가를 2년여 동안 샅샅이 훑으며 분유메이커 개발에 성공했다.

강미선 대표가 개발한 분유메이커. 정식명칭은 ‘텐더 터치 베이비 포뮬러 메이커(Tender Touch Baby Fomula Maker). 강미선 대표가 개발한 분유메이커. 정식명칭은 ‘텐더 터치 베이비 포뮬러 메이커(Tender Touch Baby Fomula Maker).
분유메이커의 작동과정은 단순하다. 메이커에는 통이 두 개 있다. 가루분유를 부어놓으면 4주 동안 신선하게 밀봉 저장되는 통과 물을 넣어두는 통. 커피머신의 원리와 똑같다. 젖병을 밑에 받치고 버튼을 한번 누르면 물이 팔팔 끓여졌다가 다시 식혀지고, 이 물에 분유가 녹여져 젖병에 담긴다.



제품의 정식명칭은 ‘텐더 터치 베이비 포뮬러 메이커(Tender Touch Baby Fomula Maker)이다. 강씨는 한국에서 제품개발을 완료한 후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피에나’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자신은 대표로, 남편은 이사로 일하고 있다. LA의 벤처캐피탈로부터 투자를 받았고,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과도 협상을 진행 중이다.

판매는 지난달부터 홈페이지(www.mypiena.com)를 통해 시작했고, 이달 말부터는 미국의 대표적인 생활용품체인인 ‘베드배스앤드비욘드(Bed Bath & Beyond)’와 아기용품 체인인 ‘바이바이베이비(buybuybaby)’에서 판매된다. 개발은 청계천 부품으로 하고, 생산은 중국에서 하지만, 판매는 미국에서 먼저 시작해서 내년 이후 아시아와 유럽에도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가격은 149.99달러(약16만원)이다.



강 대표는 분유메이커 이외에도 5개 제품을 개발 중이고, 다른 아이디어들을 계속 쌓아놓고 있다. 가습기, 스팀청소기, 진공청소기, 공기청정기, 푸드메이커, 제빵기, 토스터, 선풍기, 비데, 냉장고, 세탁기 등 주부들이 집에서 사용하는 가전 가운데 자신이 이노베이션을 넣을 수 있는 제품은 다 만들어보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엄마들이 집에서 늘 사용하는 소형가전에서 대표브랜드가 되는 것이 목표”라면서 “피에나에서 제품이 나오면, 사람들이 ‘분명 신기한 것일 거야’라고 생각할 정도로 혁신을 넣고 싶다”고 말했다. 생활 속에서 느낀 불편함을 그냥 묻어두지 않고 해소해보자는 것. 그것이 혁신이라는 것.

엔지니어링이 아니라 생활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그의 혁신이 더 와 닿는 것 같다. 분유메이커도 개발과정에 참여했던 2명의 엔지니어는 LCD 디스플레이도 넣고, 여러 기능의 버튼도 넣고, 앱과 연동될 수 있도록 하자고 고집했지만, 그는 한사코 반대했다. “엄마가 되면 그런 것들은 절대 안 쓰게 되지요. 매뉴얼도 안 읽어봅니다. 몇 번 눌러보고 되면 그냥 씁니다. 그래서 버튼 하나로 다 해결한 거지요.” 모두가 새로운 기능을 추가할 때 기능을 하나씩 없애는 것도 큰 혁신인 셈이다. 소비자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혁신.

혁신은 꼭 소프트웨어를 통해서만 하는 것도 아니고, 스티브 잡스만 하는 것도 아니다. 청계천 상가의 부품들 속에서, 공업사의 베테랑 사장들한테서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청계천과 실리콘밸리가 통하는 것처럼, 세상 모든 혁신도 결국엔 통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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