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현 회장은 왜 동양그룹 해체를 못 막았나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13.10.07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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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사이트] '그룹 모태' 동양시멘트 등 심리적 오류로 끝내 포기 못해

현재현 회장은 왜 동양그룹 해체를 못 막았나


# 1982년 7월23일 오전 일본 나가사키. 비는 좀처럼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미 11일 동안 600mm의 비가 내리고 '호우경보'까지 내려져 있던 터였다. 점심 때가 지나자 마치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듯 빗줄기는 더욱 굵어졌다. 일부 주민들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오후 4시55분 정부는 이 지역에 '홍수경보'를 발령하고 긴급히 대피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밤 9시 정부가 주민 대피 현황을 점검한 결과, 대피한 주민은 고작 13%에 불과했다. 대다수 주민들은 비가 얼마나 오는지 지켜보겠다며 자리를 지켰다. 결국 3일간 쏟아진 폭우로 홍수가 나면서 이 지역에서만 265명이 사망하고, 34명이 행방불명되는 참사가 벌어졌다.



영화에서는 재난이 발생하면 즉각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지만, 현실은 다르다. 존 리치 영국 랭커스터대 심리학과 교수에 따르면 큰 재앙이 벌어졌을 때 무려 75%의 사람들이 현실을 부정하고 상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 이들의 선택은 단 한가지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심리학에서는 이 같은 현상을 '정상화 편향'(Normalcy bias)라고 부른다. 극도의 스트레스와 마주했을 때 "지금 상황도 평소와 다름없는 정상적인 상황이다"라며 애써 현실을 회피하는 것을 말한다.



한때 재계 순위 5위까지 올랐던 56년 역사의 동양그룹이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 최소한 1년 전부터 곳곳에서 위기의 신호가 감지됐지만,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은 끝내 위기를 피하지 못했다. 사실상 동양그룹이 한 것이라고는 지난해말 재무구조 개선 방안을 발표한 것 뿐이었다. 한일합섬, 동양매직, 동양파워를 팔겠다고 내놨지만 조건 등이 안 맞아 결국 매각에 실패했다. 그룹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임을 고려할 때 구체적인 조건보다는 조속한 매각이 우선시돼야 했지만, 현 회장은 끝내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현 회장은 왜 온갖 경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과감한 해법을 선택하지 못한 채 결국 파국을 맞이했을까? 심리학적으로 보면 앞서 언급한 '정상화 편향' 외에도 2가지 이유가 더 있다. 바로 '소유효과'(Endowment effect)와 '부작위 편향'(Omission bias)이다.

'소유효과'란 일단 자신의 소유가 되고 나면 객관적인 가치보다 더 높은 가치를 매기거나 좀처럼 팔지 않으려고 하는 현상을 말한다.


동양그룹 내부에서는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사양산업에 접어든 시멘트 부문을 매각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그러나 현 회장 등 오너 일가는 그룹의 '모태'인 동양시멘트를 끝내 포기하지 못했다.

'부작위 편향'이란 어떤 행동을 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다른 사람이 입을 피해보다 크게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길거리에서 누군가 폭행당하고 있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사리 나서지 않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동양그룹 임원들도 동양시멘트나 한일합섬, 동양매직, 동양파워 등을 섣불리 팔았다가 헐값에 팔았다는 비판으로 일자리를 잃을 것을 우려해 적극적으로 매각을 주장하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이른바 '68혁명'으로 불리는 1968년 독일 베를린의 '반(反) 권위주의' 시위 당시 슬로건이 귓가를 맴돈다. "만약 당신이 해결의 일부가 아니라면 당신은 문제의 일부다."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 사진=뉴스1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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