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셰이브클럽 로고./로고=달러셰이브클럽 웹사이트
외래 침입종은 시장에도 존재한다. 경영학에서는 이들의 생존전략을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기존 시장과 가치를 무너뜨리고 새 것을 만들어 내는 혁신 전략이다. 기존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선해 틈새시장을 만든 뒤 저가 전략으로 세를 불리는 식이다.
달러셰이브클럽의 성공이 놀라운 것은 무엇보다 면도기 시장이 폐쇄적이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인 유로모니터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세계 면도기(여성용 제외) 시장은 한해 128억달러(약 13조7088억원) 규모다. 세계 최대 생활용품업체인 프록터앤드갬블(P&G)의 질레트가 전체 시장의 66%를 차지하고 있고 배터리로 유명한 에너자이저홀딩스의 쉬크와 프랑스 소비재기업 비크(Bic)가 각각 12.5%와 5.2%씩 점하고 있다. 신생기업이라면 그야말로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달러셰이브클럽이 동영상 공유사이트인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광고 동영상은 1주일도 안 돼 300만여명이 시청했고 상품 출시 48시간 만에 1만2000명의 고객을 끌어 모았다. 달러셰이브클럽의 모토처럼 시간과 돈을 깎고(Shave Time. Shave Money.) 싶어 하는 이들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달러셰이브클럽이 내세운 가격 전략이 고객들에게 큰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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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셰이브클럽이 한참 세를 불리기 시작했을 때 세계 최대 온라인 장터인 아마존에서 5중 날 카트리지 8개가 들어 있는 질레트의 '퓨전' 면도기는 28.99달러에 팔렸다. 질레트의 추산대로 카트리지 8개 세트의 교체 주기가 6개월이라면 한 달에 4.8달러가 드는 셈이다.
이에 비해 달러셰이브클럽의 4중 날 면도기를 쓰려면 한 달에 6달러를 내야 한다. 물론 달러셰이브클럽은 한달에 6달러를 내고 4중 날 카트리지를 5개 갖게 되지만 이 카트리지 5개를 한달 안에 다 쓰지 않는다고 보면 한달 치 비용으로는 '퓨전'보다 품질이 낮은 달러셰이브클럽의 면도기가 더 비싼 셈이다.
알렉산더 체르네프 미국 노스웨스턴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사정이 이런데도 질레트가 달러셰이브클럽에 위협받게 된 것은 가격모델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질레트의 가격 모델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이 카트리지 하나당 가격에 주목하게 되면서 달러셰이브클럽이 내세운 가격에 혹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퓨전'의 5중 날은 하나에 3.6달러 꼴이지만 달러셰이브클럽에서는 이보다 좋은 6중 날 카트리지를 개당 1.8달러에 살 수 있다.
체르네프는 사람들이 체감하는 가격에 주목한 달러셰이브클럽의 가격 전략을 파괴적 혁신의 대표 사례로 꼽고 이는 고객들의 의사 결정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행동 경제학에 주목한 결과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