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가 그렇다. 운이 없어 100살까지 살면서 험한 꼴 보게 될지도 모르지만 대략 평균수명보다 좀 더 버틴다고 치면 40대는 인생의 절반을 살고 내리막으로 접어드는 나이다. 이제부턴 '죽음'을 접하게 되는 기회도 많아진다. 주변 사람들 부모님들의 부고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 까진 그렇다 치는데, 동료나 친구의 이름을 듣게 되는 건 아직은 뒤통수를 맞는 충격이다.
지난 일요일, 언론사 입사 동기인 허귀식 중앙일보 부장의 장례식을 다녀왔다.
영정사진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머금은 고인의 모습이 금방이라도 어깨를 툭툭 치며 "요즘 어때?"할 것 같았다. 며칠이 지났지만 인터넷에 올라 있는 그의 사진 속 얼굴은 더 생생하다.
뜬금없이 메신저로 '띵동'해선 이런 저런 말을 걸어오던 그. 버릇처럼 입에 올렸던 "한번 봐야지"가 정말로 지킬 수 없는 헛인사가 됐다.
주인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그가 마지막 남긴 글이 유복자처럼 세상에 나와 사람들을 을 맞고 있다. '금융사기냐 정상거래냐'라는 제목의 칼럼 마지막에 "필자의 급서로 칼럼연재를 마칩니다"라는 안내문이 서글프다.
산을 좋아했으니 산에서 잠든 걸로 위안 삼아야 할까. 칙칙한 병원에서 생을 마감해야 할 대다수 사람들과 달리 깊고 푸른 가을 하늘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 간 게 그가 누린 마지막 행복일까.
40대 후반, 요즘은 10살을 뺀다니 생물학적으로는 과거 30대 못지 않다. 그렇게들 믿고 싶은 40대들은 마라톤 철인경기 암벽등반 같은 격한 현장의 가운데서 버티고 있다. 20~30대들과 어울려 홍대 이태원 같은데서 젊음을 발산하긴 뭣하지만, 심신은 아직 '살아 있네'라는 말을 듣고픈 나이다. 이제는 그 자신감과 그 패기를 조금씩 놓아 가며 살아야 하는 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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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꺾어진 나이'여서 그러는 건지, 전에는 흘려듣던 '죽음' 이야기들이 오래 머문다.
얼마 전엔 어머님 장례를 치르고 무덤에 벤츠승용차 모형을 순장(?)해드렸다는 40대 회사원 이야기를 들었다. "좋은 차 태워서 좋은 구경 많이 시켜 드린다"고 약속했는데 지키지 못한게 한스러웠단다.
모 금융회사 사장은 은행원 시절부터 매달 부모님을 찾아가 용돈을 빳빳한 1000원짜리로 직접 드렸다. 평소엔 표현이 없으시던 아버지였지만 기력이 쇠잔해진 어느 날 "네가 새 돈으로 용돈 주는 마음을 늘 고맙게 생각해왔다"고 하셨다. 그리고선 한 달이 채 안 돼 돌아가셨고, 그게 유언처럼 돼 버렸다.
듣는 말, 건네는 말...어떤 게 마지막이 될 지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