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雜s]마지막이 된 말들

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 2013.10.03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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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40대 남자가 늘어놓는 잡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도 여전히 나도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40대의 다이어리입니다. 몇년 있으면 50雜s로 바뀝니다. 계속 쓸 수 있다면...

'꺾어진 나이'
40대가 그렇다. 운이 없어 100살까지 살면서 험한 꼴 보게 될지도 모르지만 대략 평균수명보다 좀 더 버틴다고 치면 40대는 인생의 절반을 살고 내리막으로 접어드는 나이다. 이제부턴 '죽음'을 접하게 되는 기회도 많아진다. 주변 사람들 부모님들의 부고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 까진 그렇다 치는데, 동료나 친구의 이름을 듣게 되는 건 아직은 뒤통수를 맞는 충격이다.

지난 일요일, 언론사 입사 동기인 허귀식 중앙일보 부장의 장례식을 다녀왔다.
영정사진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머금은 고인의 모습이 금방이라도 어깨를 툭툭 치며 "요즘 어때?"할 것 같았다. 며칠이 지났지만 인터넷에 올라 있는 그의 사진 속 얼굴은 더 생생하다.



연배는 1년 위지만, 입사 동기라 터놓고 지냈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고, 기자로서의 능력도 뛰어나 나는 모르는 이야기를 많이도 알고, 쓰던 사람이었다.
뜬금없이 메신저로 '띵동'해선 이런 저런 말을 걸어오던 그. 버릇처럼 입에 올렸던 "한번 봐야지"가 정말로 지킬 수 없는 헛인사가 됐다.

주인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그가 마지막 남긴 글이 유복자처럼 세상에 나와 사람들을 을 맞고 있다. '금융사기냐 정상거래냐'라는 제목의 칼럼 마지막에 "필자의 급서로 칼럼연재를 마칩니다"라는 안내문이 서글프다.



고인은 보통 사람들은 힘들어하는 북한산 등산길, 암벽을 오르다 사고를 당했다. 지쳐하는 동반자들을 다독여 바위 하나를 더 오르자며 앞서다가 동료들 바로 옆을 스쳐 실족했다고 들었다.

산을 좋아했으니 산에서 잠든 걸로 위안 삼아야 할까. 칙칙한 병원에서 생을 마감해야 할 대다수 사람들과 달리 깊고 푸른 가을 하늘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 간 게 그가 누린 마지막 행복일까.

40대 후반, 요즘은 10살을 뺀다니 생물학적으로는 과거 30대 못지 않다. 그렇게들 믿고 싶은 40대들은 마라톤 철인경기 암벽등반 같은 격한 현장의 가운데서 버티고 있다. 20~30대들과 어울려 홍대 이태원 같은데서 젊음을 발산하긴 뭣하지만, 심신은 아직 '살아 있네'라는 말을 듣고픈 나이다. 이제는 그 자신감과 그 패기를 조금씩 놓아 가며 살아야 하는 때인가 보다.


'꺾어진 나이'여서 그러는 건지, 전에는 흘려듣던 '죽음' 이야기들이 오래 머문다.
얼마 전엔 어머님 장례를 치르고 무덤에 벤츠승용차 모형을 순장(?)해드렸다는 40대 회사원 이야기를 들었다. "좋은 차 태워서 좋은 구경 많이 시켜 드린다"고 약속했는데 지키지 못한게 한스러웠단다.

모 금융회사 사장은 은행원 시절부터 매달 부모님을 찾아가 용돈을 빳빳한 1000원짜리로 직접 드렸다. 평소엔 표현이 없으시던 아버지였지만 기력이 쇠잔해진 어느 날 "네가 새 돈으로 용돈 주는 마음을 늘 고맙게 생각해왔다"고 하셨다. 그리고선 한 달이 채 안 돼 돌아가셨고, 그게 유언처럼 돼 버렸다.

듣는 말, 건네는 말...어떤 게 마지막이 될 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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