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무향' 은은한 오리로 '사람냄새' 훈훈한 사회를

머니투데이 전혜영 기자 2013.09.30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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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부자]<2-1>권태균 토성그룹 대표 "축구 꿈나무 위한 기부 평생할 것"

ⓒ이기범 기자ⓒ이기범 기자


"가진 건 별로 없지만 마음만은 당당한 부자에요. 그거 하난 최곱니다."

맨발에 오렌지색 로퍼, 가죽 패치가 덧대진 청색 셔츠로 범상치 않은 패션 감각을 보여준 60대 노신사는 '김치' 대신 '오리'라고 외치며 사진을 찍었다. '대박 오리집' 옛골토성의 수장이자 국가대표 축구팀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가 태극기 옷을 입고 아리랑 응원단을 이끄는 권태균 토성그룹 대표(사진·62) 얘기다. 그는 요리든, 축구든 누군가와 함께 할 때가 가장 즐겁다는 철학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해장국으로 시작한 기부, 함께해야 의미있죠"



권 대표는 경북 영덕에서 태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5살 때 혈혈단신으로 서울에 와 혼자 힘으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20살 때 바나나 장사를 시작한 이후 안 팔아본 것이 없을 정도다. 그가 요식업에 뛰어든 건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한 24살 때부터다.

"아내가 손맛이 좋아요. 결혼 후 포장마차로 돈을 벌면서 1990년 초에는 버젓한 건물에서 장사를 할 수 있었죠. 호프집, 장작구이 전문점, 해물탕집 등 안 해본 거 없이 다 해봤습니다."



다양한 시도 끝에 그는 1995년 청계산 자락에 고기집인 '토성가든'을 오픈했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고기를 구워먹으려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탓이다. 뒤늦게 파전과 두부 요리로 메뉴를 바꿔봤지만 고전은 계속됐다. 몇 달씩 종업원들 월급을 주지 못할 정도로 사정이 어려워지자 그는 마지막 수단으로 국밥을 팔기 시작했다.

"시골에서 마을 행사를 하면 한 500명씩 모여서 소머리를 사다가 국밥을 해 먹곤 했었거든요. 그 기억을 살려서 국밥을 팔기 시작했는데 이게 대박이 났습니다. 주말에는 손님이 2500명씩 올 정도였죠."

그가 기부를 시작한 것도 이무렵 부터다. 매년 1월 1일 '해맞이 행사'에 무료로 국밥을 제공하고, 고객들에게 밥 값 대신 자발적인 모금을 받아 그 돈을 모두 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해맞이 행사를 계기로 1년에 한번 봉사하자고 생각했던 건데 고객들이랑 함께 기부를 하게 되니까 그게 너무 좋더라구요. 손님들도 좋아해서 나중에는 3000원짜리 한 그릇을 먹고 1만원씩 넣고 가는 분도 있었어요. 9년 동안 해장국집 하면서 10회 넘게 모금 행사를 했습니다."

권 대표는 꾸준한 기부 활동 등을 인정받아 올해 초 '납세자의 날' 기념식에서 '아름다운 납세자상' 기재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이 상은 세금을 성실히 납부하면서 봉사활동 등 사회공헌을 실천한 납세자에게 주는 상이다.

그가 잘 나가던 해장국집을 접고, 지금의 옛골토성을 오픈한 건 돌이켜보면 '전화위복'이지만 당시로선 인생 최악의 시기였다. 6년을 믿고 함께 일한 해장국집 직원이 수억원의 자금을 빼돌린 것이 드러나면서 금전적인 피해는 물론 정신적인 충격도 크게 입었다. 설상가상으로 건물주도 가게를 비우라고 했다.

지병이던 골수염이 악화돼 휠체어에 앉아 오픈을 준비했다. 최악의 경우, 의족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를 악물고 장작구이 기계 개발에 매달렸다. 그렇게 탄생한 게 옛골토성의 대표 상징 중 하나인 회전식 바비큐 가마다. 기와지붕의 정자 모형 3단 회전식 가마로 참나무향이 가득히 베어 고기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결과적으로 포기하지 않고 정신력으로 버티면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죠. 오픈 한 달 만에 골프선수 애니카 소렌스탐이 우리 가게를 왔었습니다. 입소문이 무섭게 났죠. 두 세 시간씩 줄서서 먹는 오리 바비큐 집은 우리집이 처음이었을 겁니다."

옛골토성은 2005년 가맹 1호점을 시작으로 현재 50호점을 돌파했으며, 2개의 직영점을 두고 있다. 중국 북경과 상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더 오리'라는 이름으로 3개의 해외 직영매장을 열었다.

"한식 세계화를 제 방식으로 해보고 싶습니다. 더오리 외에도 자카르타 롯데백화점 푸드코트에 소형매장 6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떡볶이, 호떡, 꿀타래 같은 걸 가져다가 리어카에서 파는 컨셉트입니다. 아직 뭐가 효자가 될지는 모릅니다. 음식과 함께 한국의 시장문화를 함께 알릴 생각입니다."

권 대표의 최종 꿈은 미국 진출이다. "미국에 매장 내고 싶어서 준비를 많이 했는데 아직 성공을 못했습니다. 2년 안에는 미국에 진출할 계획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 있는 와이너리(와인제조공장)에 매장을 열고 싶습니다. 오리와 와인, 생각보다 궁합이 잘 맞거든요."

◇"아리랑응원단, 마지막 순간까지 이끌 것"

권 대표는 어렸을 때 축구선수가 꿈이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과 지병으로 접어야 했다. 못 이룬 꿈 때문이지 그의 축구 사랑은 각별하다. 그는 1994년 미국월드컵을 시작으로 이탈리아·프랑스·독일·남아공 월드컵, 광저우 아시안게임, 베이징 올림픽 등 국가대표팀이 있는 곳이라면 빠지지 않고 원정 응원을 펼쳤다.

그가 이끄는 아리랑응원단은 단순히 경기장 응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물놀이, 한복 퍼레이드 등 다양한 퍼포먼스로 한국을 알리고 있다. 권 대표는 요즘 내년에 열릴 브라질 월드컵 원정 준비로 분주하다.

"브라질에서는 '글로벌 아리랑 대축제'라는 주제로 다른 나라에 계신 분들과 함께 하는 걸 준비하고 있어요. 함께 즐기면서 그 속에서 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하는 게 뿌듯합니다. 자녀들이 처음엔 반대를 많이 했는데 지금은 좋아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해줘서 뿌듯합니다."

권 대표는 재능은 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운 축구 꿈나무들도 지원하고 있다. 홍명보 장학재단을 9회째 후원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무료 축구교실 FC토성도 출범했다.

"전세계 원정 다니면서 응원을 하는 것도 좋지만 어린이들, 특히 불우한 어린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그런 기부를 해보자는 생각에 무료 축구교실을 꾸리게 됐습니다. 다행히 프로선수 출신들과 중고교 감독들이 흔쾌히 참여해줘서 20여명 정도 팀을 꾸리게 됐고, 조만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권 대표는 체력이 허락하는 한 끝까지 해외 원정을 다닐 생각이다. "나이가 있다 보니 며칠씩 외국에 나가 있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음식이 입에 안 맞는 경우도 많고요. 하지만 이 일을 멈출 생각은 없습니다. 축구 원정은 숨이 다할 때까지 계속할 생각입니다. 스포츠와 사업의 공통점은 근성이 있어야 한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평생 함께 나누며 즐겁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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