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우리은행 패러독스

머니투데이 성화용 더벨 편집국장 2013.09.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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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은행은 무식하고, B은행은 교활하며, C은행은 지독해요. 그래도 거래할만한 시중은행은 우리은행이죠."

4개 시중은행과 모두 거래해본 경험이 있는, 그것도 드라마틱한 부침을 거치며 22년간 기업을 하면서 은행의 생리를 깨우쳤다고 자부하는 한 중소기업 오너가 말을 이어갔다.

"우리은행을 매각한다고 하는데, 걱정입니다. 다른 시중은행이 인수하게 되면 중소기업들은 힘들어질 거예요. 은행 대출을 써야하는 기업이라면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이 기업인이 주장하는 요지는 은행마다 정책과 컬러가 현저히 다르다는 것이다. 그 차이는 상대적 약자인 대출거래 기업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고, 그 중에서 그나마 기업이 가장 편하게 거래할 수 있는 곳이 우리은행이라는 주장이다.

'무식한 은행'은 기업을 잘 모른다. 정확히 표현하면 기업금융과 기업경영의 생리를 잘 이해하는 뱅커의 숫자가 현저히 적다는 의미다. 거래가 불편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잘 개척만 되면 속여먹기도 쉽다.



'교활한 은행'이나 '지독한 은행'은 정도의 차이일 뿐, 비슷한 유형인 듯 보인다. 기업이 어려워지면 영악하게 또는 단호하게 발을 뺀다. 아예 그런 조짐이 의심되기만 해도 대출 회수에 들어간다. 좋게 보면 '영리한' 또는 '단호한' 은행이다. 이해타산이 빠른 것이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잔인무도한 대금업자나 다름없다.

그의 눈에 비친 우리은행은 기업을 잘 이해하고, 그래도 상대적으로 기업 입장을 고려해 대출 관리를 하는 은행이다. 미화하자면 '전문성'과 '온정'을 함께 갖춘 은행이요, 반대쪽 시각으로 보자면 '느슨한' 은행이다. 사실 기업을 잘 알기 때문에 그만큼 기업 입장에 서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분류가 옳은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은행의 대출 관리 정책이 기업의 흥망을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가 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최근 몇 년새 넘어지고 자빠진 기업의 경영자들로부터 "주채권 은행이 다른 곳이었다면 상황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텐데"라는 푸념을 여러 번 들었다. 변명이면서, 사실이기도 하다. "있는 부동산을 다 팔아서라도 이 은행 대출은 갚아버리고 싶다"는 얘기도 들었다. 결정적 상황을 맞았을 때 '교활한' 또는 '지독한' 은행이 기업을 어떻게 죄는지 생생한 증언들이 수두룩하다.


우리은행 매각을 매도자와 매수자가 아닌, 제 3의 시각으로도 한번쯤 봐야 한다는 당위를 말하고자 한다. 은행이 기침하면 감기에 걸리는 중소기업들이 아직도 수십만이다. 금융서비스의 질과 방향에 매우 예민한 수요자들이다. 우리은행의 주인이 바뀌고, 대출 정책도 무식, 교활, 지독한 방향으로 달라진다면 이 중 수천, 수만개 기업의 운명이 갈릴 지도 모른다.

여기서 어떤 은행이 좋은 은행인지 한번쯤 고민해볼 필요도 있겠다. 철저한 부실관리로 연체율 낮은 은행이 그만큼 이익도 많이 낸다. 그렇게 돈을 많이 버는 은행이 우리 모두의 이익에 부합하는가. 주주에 대한 기여와 사회 전체에 대한 기여는 그 몫을 온전히 공유하는가. 시중은행은 오롯이 사유재인가 아니면 공공재인가. 영리하면서 비정한 쪽이 옳은가. 느슨하거나 따뜻한 쪽이 우리에게 유리한가.

어느 한 쪽 손을 들어주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느슨하거나 따뜻해 보이는 은행의 성과는 단기적으로 부진할 가능성이 있고, 역설적으로 그 부진이 어떤 기업에게 재생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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